<인물 포커스> 국토 도보순례 전자책 낸 송경환씨

공무원 명예퇴직 후 국토순례 도전
해안선 따라 89일간 2790km 걸어
체력고갈과 폭염, 외로움과 싸우며
‘두 발로 완주’ 자신과의 약속 지켜  

[고양신문] 누군가는 비좁다고 하고 누군가는 생각보다 넓다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전국을 한 바퀴 돌아 국토의 크기를 두 발로 재고 돌아온 이가 있다. 주엽1동에 거주하는 송경환씨다.
고양시 공무원 출신으로 백석1동 동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2018년 5월, 40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명예퇴직을 하자마자 배낭 하나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두 다리로 현관문을 나가, 두 다리로 대한민국땅을 한 바퀴 돌고, 두 다리로 집에 들어오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단단히 붙들고 말이다.
2018년은 한반도에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쏟아진 해였다. 송경환씨는 석 달이 지난 8월에야 집에 돌아왔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검게 그을린 얼굴….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온전히 길 위에서 보낸 송경환씨는 지난해 연말 자신의 도보여행 체험을 정리해 『나의 걷기 예찬』(yes24)이라는 책을 e-북으로 발간했다.

두 다리만으로 국토 한 바퀴

<사진제공=송경환>

“국토 순례 도보여행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꿈꿔왔던 목표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워낙 막연한 계획이라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당장 떠나지 않으면 뭔가 주저앉을 핑계거리가 생길 것 같아 아내가 ‘평생 수고했으니 좀 쉬시라’고 할 때 후다닥 떠났지요(웃음).”

송경환씨가 걸은 코스를 하나의 선으로 이으면 고스란히 대한민국 지도모양이 된다. 휴전선이 바라보이는 김포 해안에서부터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을 걸어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를 차례로 순례한 뒤, 최북단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찍고 다시 원점으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날짜로 치면 꼬박 89일이 걸렸다. 중간에 태풍을 만나거나 지인들의 응원방문을 기다리느라 하루씩 쉰 날은 빼고 말이다. 거리로는 자그마치 2790km에 이른다. 매일매일 그날 걸은 거리를 기록한 덕분에 합산해낼 수 있었던 숫자다.
“디지털 기기인 스마트폰과 아날로그 도구인 ‘전국지도’를 적절히 활용했지요. 지도를 보며 큰 방향을 정하고, 걷기 앱을 이용해 매일매일 걸은 거리를 정확히 체크하고, 그 결과를 다시 지도의 여백에 날짜를 매겨가며 적어 넣었습니다.”

송씨가 도보여행 내내 지니고 다녔다는, 마디마디마다 투명테이프를 덧댄 지도를 펼치자 그가 걸은 코스를 표시한 형광펜의 곡선과 테두리를 따라 빼곡하게 채운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적게는 하루 20km, 많게는 하루 40km. 비록 깨알 같은 숫자로 남았지만, 그 안에는 송씨가  순간순간 밟고 지나간 자기와의 싸움이 배어있다.

힘겨움 잊게 해 준 멋진 풍경들

<사진제공=송경환>

“처음에는 호기롭게 텐트를 치며 야영도 하려고 생각했는데, 이틀째 지나고 완전히 포기했죠. 길 위에서 체력고갈과 마주하지 않으려면 여관이나 모텔, 하다못해 찜질방이라도 들어가서 최대한 편하게 쉬어야 다음날 또 걸을 수 있겠구나 싶더군요.”

송경환씨는 길 위에서 완주를 향한 노하우들을 하나하나 스스로 터득해나갔다고 한다. 우선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 딱 하나씩만 남기고 모든 짐을 줄였다. 아무리 더워도 햇빛은 최대한 가렸고, 수시로 물과 건빵, 또는 마늘빵을 섭취하며 수분과 탄수화물을 보충했다. 무엇보다도 속도나 거리를 욕심내지 않고, 그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성실하게 걷는 방식을 택했다. 마라톤 주자가 오버페이스를 가장 경계하듯, 송씨는 자신의 체력에 맞춰 3000여 km 도보여행에 맞는 페이스조절을 해낸 것이다.        

돌아보면 순간순간이 고비였단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루에 두 끼 먹으면 행복한 날이었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적당한 숙소를 잡기 위해 매일같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찜질방에서 묵느라 빨래를 못 한 날에는 전날 입었던 속옷을 대충 말려 다시 꺼내 입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걷기에는 너무 위험한 구간도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했고, 두 번의 큰 태풍을 만나 아찔한 순간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길을 나서야만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이 그의 무거운 발걸음을 응원했다. 너무 힘들어 풍경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다가도, 문득 황홀한 풍광이 시야를 가득 채울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33km에 이르는 새만금 방조제 한가운데를 걸으며 망망대해 위에 서 있던 순간, 고흥 녹동항 근처에서 그림같은 남해바다를 바라볼 때, 그리고 동해바다의 환상적인 절경이 이어지는 해파랑길 해안 데크 등등…, 잊혀지지 않는 풍경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요. 내가 집을 나오지 않았다면 그 풍경을 어찌 봤겠어요.”

마음으로 동행해 준 아내

송경환씨의 국토순례에 동행한 이가 있다. 바로 그의 아내다. 실제로 함께 걸은 것은 아니고, 염려와 응원으로 말이다. 송씨는 아내가 매일같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을 공유했다. 또한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는 걸 인증하기 위해 매일 같이 아내에게 카톡으로 셀카 사진을 전송했다고 한다.
“사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라, 나의 위치를 항상 인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되더군요. 아내에게 매일 보낸 사진과 문자는 나중에 책을 쓸 때 아주 요긴한 자료가 되었구요.”

송경환씨의 여정을 든든히 응원해 준 아내와 함께.



걷기, 나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걷기, 여러분도 한 번 도전해보세요!"

송경환씨는 스스로를 타고난 체력의 소유자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등산과는 거리가 먼 체력이었는데, 마흔 중반을 넘은 어느 날, 지인에게 끌려간 점봉산 산행을 시작으로 걷기와 등산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금씩 산과 들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며 점점 자신의 체력을 길렀고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백두대간과 국토의 주요 정맥을 꾸준히 종주했다. 한편으로는 고양시청 직장 동호회 ‘참살이산약초’라는 모임에 참가해 야생에서 자라는 식용식물을 구분하는 눈도 기르고, 조난에 대비한 독도법과 클라이밍 기술도 몸에 익혀두었다.

송씨는 조만간 또 하나의 도전을 궁리하고 있다. 해안길을 걸었으니, 강을 따라 내륙을 관통해보려는 것이다. 평탄한 자전거길을 주로 이용하면 한 달이면 고양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그는 짐작한다. 힘든 여정을 또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는 뭘까.
“걷기가 내게 준 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건강한 체력을 줬고, 아름다운 풍경과 경험을 선물해 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줬습니다. 누군가 ‘살면서 너는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열심히 걸었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길 위에 있습니다. 자신의 두 다리를 믿고 떠나보세요.” 

국토순례를 함께 한 전국지도를 펼쳐보이고 있는 송경환씨. 테두리 여백을 따라 하루 하루 걸은 날짜와 거리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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