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Parasite, 2019)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최고의 경의를 돌린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

[고양신문] “내가 어릴 적 영화를 공부할 때 가슴 깊이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은 바로 (손으로 직접 가리키며)위대한 마틴 스콜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이 한 말이다.”

지금까지 나를 울렸던 수많은 수상소감이 있었지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소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감동의 수준을 넘어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자신이 영화 학도로서 우러러봤던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후, 함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한 다른 감독들을 잊지 않고 하나씩 언급하며 기쁨을 함께했다. 축제의 동료이지만 동시에 경쟁의 대상을 치켜세우며 진정한 상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빈부의 격차와 분배의 정의 그리고 공존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때였다. 사실 그 전부터 그는 꾸준하게 국가나 전체주의 모순, 사회의 부조리 등을 꼬집으며 정의에 대해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이야기했지만, ‘명징하게 직조된’ 방식으로 분배 정의를 보여주기는 그가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시도됐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사고로 인해 인류의 마지막 생존지가 된 ‘설국열차’는 17년째 끝없는 궤도를 달리고 있다. 열차의 꼬리칸에는 처참한 상황의 빈민, 노동자가 살고 있고 앞으로 갈수록 열차는 호화로워지며 열차는 철저하게 계급별로 나뉘어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공존해야 할, 이 기차는 절대 평등하지 않다. 결국, 가장 뒤에 있던 사람들은 혁명을 이끄는 리더와 함께 가장 앞 칸으로 나아가고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상상한다.

<설국열차>가 개봉한 지 6년 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기차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앞과 뒤라는 이미지보다 더 극명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계속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박사장네 집과 부자 동네에서 끝없이 내려가야 나오는 가난한 기택의 집은 두 가족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 위치, 계급에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두 가족은 서로에게 기생하며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기택네 가족이 박사장에 의해 고용되면서 부자에게 기생하며 사는 듯 보이지만, 사실 박 사장네는 기택네의 노동을 이용하면서 빨대를 꽂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가정은 서로의 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다. 이번에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두 가족의 삶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말이 <기생충>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한국 관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개인적인’ 두 가족 이야기가 할리우드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층에서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설국열차>가 만들어졌을 때 봉준호 감독과 우리 관객들이 박근혜 정권과 문화 블랙리스트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기생충>이 만들어진 지금 미국은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다.

그간 꾸준히 극우 정권에게 목소리를 내왔던 아카데미가 이번에는 정말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다. 작년에는 멕시코의 <로마>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트럼프 정권에게 할 말을 했다면 올해는 한국의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빈부의 격차와 분배 정의의 문제 그리고 차별과 혐오는 어느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우리나라도 아카데미 4관왕의 기쁨이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영화를 그저 영화로만 보고 끝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화의 초대에 진지하게 응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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