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이제 곧 봄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농사짓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농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경작본능을 일깨우는 시계가 저절로 째깍째깍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저도 모르게 텃밭으로 향하는 탓이다.

다섯 평이 됐든 스무 평이 됐든 텃밭을 일궈본 사람들은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려는 습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절친한 후배 하나는 술을 마시다말고 텃밭의 작물들이 보고 싶다며 대리운전을 해서 농장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도시농부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이심전심, 다들 빙그레 웃고 만다.

난생 처음 씨앗을 뿌렸는데 어느 날 문득 싹이 올라오고, 그 싹이 자라서 열매가 맺히는 광경은 느닷없이 첫 발을 떼는 아기를 보는 것만큼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지은 지 십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새싹이 올라오면 하, 신기해서 그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이파리 하나하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곤 한다. 무엇보다 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은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듣는 것 못잖게 크다.

도시농부들이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어 텃밭으로 내달리는 또 다른 이유는 텃밭에만 도착하면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머리 복잡한 일만 생기면 다짜고짜 텃밭으로 나가서 농기구를 든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왜 텃밭에만 나가면 머리가 맑아지는지 지금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 내 주변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농사짓기를 정말 잘 했다며 오늘도 농사철이 시작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을 둘러보면 농사의 기쁨을 아는 이는 아직까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보면 도시농부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전체 인구비율로 따져보면 한참 미약한 수준이다. 그나마 도시농업이 이 정도의 발전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오래전부터 농업의 가치를 깨닫고 희생해온 소수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도시농업이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도시농업을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나 역시도 텃밭에서 생명을 키우는 소소한 일상이 우리의 삶을 새로운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일이 더러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그 일을 해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노력만으로는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도시농업이 제대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올해는 정말로 뜻 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숙원이었던 시민농장이 드디어 고양시에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세한 진행사항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월이 되면 다양한 시민들이 농장에 모여서 텃밭을 일구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시민농장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당장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민농장을 운영하는 이나 그곳에서 농사짓는 시민들이나 모두 첫 경험이다 보니 처음에는 우왕좌왕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도시농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 생긴 고양시민농장에는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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