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낙하산 공천에 지역사회 ‘부글부글’

지역당원조차 후보 아직 몰라
지역정치인 평가기회조차 박탈
분권시대 역행 공천에 ‘실망’
지역정치인 못키우는 풍토도 문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다들 부글부글 끓고 있죠. 선거가 두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지역당원들조차 누가 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중앙의 결정만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일산서구의 한 민주당 인사는 작심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현재 중앙에서 거론되는 후보들도 사실 저희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여기에도 오랫동안 헌신하며 기반을 다져 온 훌륭한 인재들이 있는데 동등하게 평가받을 기회는 줘야할 것 아닙니까. 지역의 뜻은 전혀 반영 안 되는 이런 식의 전략공천은 지역 풀뿌리정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해당 인사는 마지막으로 “어떤 분이 올진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과연 지역현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선거를 도와야 할 입장에서 현재 상황이 답답하고 무기력감이 느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4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의 맞대결을 모두 승리했던 더불어민주당. 하지만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달라진 분위기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3기신도시 문제와 최근 민주당 ‘칼럼파문’등 외부적 악재들도 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중앙당 전략공천방침에 따른 후폭풍이다. 민주당 고양시 관계자들은 원칙없는 ‘낙하산’식 전략공천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지자들 또한 중앙당의 오만한 결정이라며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고양을마저…당 역량 모이겠나

민주당 공관위는 지난달 김현미·유은혜 두 장관이 불출마 결정을 내린 일산동서구(고양병·정)를 전략공천 대상지로 확정한 데 이어 19일 정재호 의원 등 4명의 예비후보가 나선 고양을 지역까지 전략지역으로 선정했다. 현역의원 지역구 3곳이 모두 전략공천 대상지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이로 인해 해당지역 민주당 후보들은 모두 지역활동이 전무한 외부인사들로 채워질 것이 유력하다.

가장 반발이 거센 곳은 현역의원 컷오프(공천탈락)가 발표된 고양을 지역이다. 발표 직후 고양을 민주당 시도의원 9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고양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하게 된 타당한 이유를 밝혀 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해당 시도의원들은 “고양시 네 곳 중 결과적으로 을‧병‧정 세 곳이나 전략공천으로 분류되면서 총선 실패에 대한 당원들의 우려가 크다”며 “고양시 전체를 승리로 이끌어야 할 중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심을 지켜줘야 할 고양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중앙당에 재고를 요청했다. 한 의원은 “이런 식의 납득할 수 없는 공천을 진행하게 되면 자칫 본선에서 당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워질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고양병∙정도 “시대역행” 볼멘소리

전략공천방침이 일찌감치 확정된 고양병·정 또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관 두 명이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두 곳 모두 지역 정치인들이 출마를 결심하기도 했지만, 중앙당의 결정으로 인해 모두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공천권을 가진 중앙당 힘의 논리에 지역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셈이다.

민주당 한 지역인사는 “정부는 지방분권 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당에선 선거 때만 되면 인지도를 이유로 들어 낙하산을 내려 보내려 한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공천방식에 실망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전략공천은 결국 이기기 위한 카드로 내놓는 것인데 과연 거론되는 후보들이 승리를 담보할 만한 분들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선거 임박 ‘오만한 결정’

민주당의 연이은 전략공천 결정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응 또한 곱지 않은 상황이다. 무지개연대를 통해 지역 정권교체를 이뤘던 고양시 시민단체들은 이번 총선국면에 대해서는 관망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수차례 선거에서 일찌감치 총선방침을 정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김철기 사무국장은 “올해 초 이 문제(전략공천)를 놓고 연대회의 차원에서 논의한 적은 있지만 지역정치인들이 상당수 출마를 포기했고 밀어줄 만한 후보도 눈에 띄지 않아 특별한 방침을 세우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전략공천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정부분 갖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고 엄밀히 말하면 정당 내부문제여서 입장을 내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며 답답함을 표했다.

지역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해온 한 인사는 “불가피하게 전략공천이 필요했다면 적어도 몇 개월 전부터 새로운 후보를 지역주민들에게 선보이고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선거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시간들을 헛되게 날리고 이제 와서 후보를 내려꽂는 것은 중앙당의 오만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인사는 “안 그래도 선거판세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낙하산 공천논란까지 제기되면서 민주당이 이번 선거를 매우 어렵게 치를 공산이 높아졌다”며 “결과적으로 범진보중도진영을 지지하는 시민들만 답답해진 상황”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이번 사태의 근본적 문제가 왜곡된 정당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한 지역활동가는 “정당의 지역구조가 기본적으로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시도의원 줄세우기 식의 보스정치로 이뤄지다보니 현직 국회의원 모두 출마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중앙당은 지역에 마땅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외부인사를 내려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현직 국회의원들의 권력사유화로 인해 참신하고 실력있는 새로운 인물의 참여가 봉쇄된 것 아니냐”며 “이러한 구조로는 참신한 인물이 지역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없고 결국 그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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