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담부서 ‘무용지물’

 

법 적용 헷갈리는 담당 공무원
계약 체결 뒤에 엉뚱한 답변
아파트 전담부서 ‘무용지물’

구청 “관련법규 광범위한데다
3명이 하루 15건 처리, 한계”


[고양신문] 고양시 삼송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은 승강기 유지보수 사업자 선정에서 수의계약이 진행되려하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해 관할 구청 공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구청 공무원은 “법을 살펴보니 문제가 없다”며 한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구청의 행정지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민원인은 관련 법조항을 스스로 찾아내 공무원에게 내밀었고, 그제야 담당 공무원은 수의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행정지도가 필요함을 시인했다.

하지만 수의계약은 이미 체결된 상황. 담당 공무원의 불찰로 1억원에 가까운 아파트 내 승강기 유지보수계약(2년)은 특정업체의 수의계약으로 상황이 종료됐으며, 구청에서 내린 처분은 과태료 200만원이 전부였다.

해당 민원인은 “아파트 비리를 제보하더라도 담당 부서에서 법 조항을 잘못 적용해 불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렇게 될 경우 아무런 제재 없이 불법계약이 체결되고 만다”며 “1억원에 가까운 수의계약에 커미션이 오갔을 수도 있는데, 200만원 과태료가 전부라면 이런 불법계약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며 답답해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라면 지자체의 아파트 비리 전담부서가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질타했다.


계약 체결되면 되돌리기 힘들어
“입주민이 소송해 스스로 해결해야”

당시 민원인은 업체가 적법하게 다시 선정되도록 추가 조치를 구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덕양구 건축과는 공문을 통해 ‘이미 과태료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 조치가 불가합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친절하게도 ‘사업자 선정지침을 위반하여 체결된 계약이더라도 그 자체를 무효로 볼 수 없다는 법원 결정이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답변도 공문에 넣었다.

민원인은 “제보가 있었음에도 공무원의 불찰로 계약이 체결되고 말았는데, 무효로 되돌릴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고 뭐냐”며 “민원인을 약올리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무원의 답변처럼 문제가 뒤늦게 확인이 됐더라도 불법계약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수의계약을 금지시킨 법의 취지와 상관없이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 민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결국 피해자인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아파트에 알려진다 하더라도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소송에 참여하는 입주민은 거의 없다.

해당 민원인은 “만약 소송으로 간다 하더라도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해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자치권을 상당히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소송에서 입주민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내 일 아니야” 모르쇠
입주민 “누구한테 제보하나?”

담당 공무원이 아파트비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같은 아파트의 사례다. 승강기 유지보수 공사를 입찰하는데, 2개 업체가 공동으로 계약하는 ‘공동수급체(컨소시엄)’로 계약을 진행한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번에도 입주민은 문제가 있다며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인은 “관련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공동수급체로 계약하는 것이 해당 공사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며 행정처분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청 담당자는 “우리 부서는 공동주택관리법과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선정지침에 없는 내용이라면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며 “이 사안은 지자체가 아닌 행자부나 국토부 등 상위기관에 질의하라”고 안내했다. 자신들의 일이 아니니 다른 기관에 문의하라는 태도를 보인 것. 또한 담당 공무원은 “지침에 없는 사항들은 사후에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입주민들이 민·형사적으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공무원의 답변대로라면 아파트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하더라도 공동주택관리법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원인은 “공동주택관리법에 없으면 내 일이 아니라는 식의 행정이 말이 되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업자선정이 비상식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지자체 공무원들이 계도하거나 행정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인데, 아파트비리를 전담하는 부서라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에 대해서 관련법을 적용해 행정지도를 해줘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다”라고 말했다.

이어 “입주민들은 시 공무원들이 문제를 바로잡아주길 기대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업무를 스스로 제한해 놓고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하냐”며 답답해했다.

 

과태료‧시정명령 공무원 마음대로


같은 사안임에도 공무원에 따라 행정처분 수위가 달라진다는 것도 큰 문제다. 예를 들어 행정처분이 집행되어야 할 ‘계약서 미공개’에 대해 공무원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도 하고 ‘시정명령’만으로 끝내기도 하는 등 기준이 모호한 것. 공무원 마음대로 입맛에 따라 과태료를 매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례를 살펴보자. 공동주택의 관리주체(관리소장)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는 법에 따라 계약 체결일 1개월 이내에 계약서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야한다. ‘계약서 미공개’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고양시 삼송의 한 아파트는 계약서 미공개가 2건이 확인되면서 행정처분을 받게 됐다. 그런데 1건은 구청에서 시정명령을 내렸고, 다른 1건은 시청에서 과태료(200만원)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해당 입주민은 “법률에 따르면 계약서 미공개는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명확히 적시돼 있다. 그런데 구청은 관리소장에게 청구돼야 할 과태료를 시정명령으로 경감해 면죄부를 줬고, 비슷한 건에 대해 시청은 입대의에 곧바로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며 “같은 단지에서, 그것도 같은 계약서 미공개 건을 공무원들마다 이렇게 다르게 행정처분을 내린다면 누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말했다.

공무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행정처분 때문에 공무원이 비리에 연루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입주민들도 있다. 한 입주민은 “이런 사례가 빈번하다면 공무원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와 밀착해 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며 “그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담당자들이 과태료와 시정명령의 기준을 명확히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담당 공무원은 “과태료 처분이 모호한 경우엔 상부기관 유권해석이나 법률자문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 권한은 담당 공무원에게 있다. 시정명령을 한 이번 사안은 처음에는 홈페이지에 공개됐다가 사라진 건을 재공개 요청한 건이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이 과하다고 판단했다”며 “지금껏 충분한 검토를 통해 행정처분을 내렸으며, 오해를 살 만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고무줄 잣대, 특별한 기준 없어


공무원의 해명대로라면 과태료가 아닌 시정명령은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뜻인데,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민원인이 과거에 제기했던 비리 제보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은 과태료 부과 대상임에도 시정명령을 내린 사례다. 

청소용역 계약서 미공개에 대해 일산동구청 공무원은 과태료나 시정명령이란 표현이 아닌 '게시토록 통보하였음'이란 표현을 공문에 썼으며 실제로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았다(2015년 8월). 또 다른 공무원은 보안경비업체 계약서 미공개에 대해서 과태료 부과를 요청하는 민원인에게 "위반사항이 확인돼 시정하였음"이라고 알린다. 즉 과태료 처분을 내리지 않은 것(2014년 8월). 말 그대로 과태료를 매기고 안 매기고가 공무원 마음대로다.

민원인은 "내가 제기한 민원만 살펴봐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공무원들이 마치 특수한 경우에만 시정명령을 적용하는 것처럼 거짓해명을 하고 있는데, 해명을 한 덕양구청에서도 2017년 1월 계약서 홈페이지 미공개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사항임에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시정명령으로 끝낸 적이 있다. 각 구청과 시청의 아파트팀을 전수조사하면 이런 사례가 수없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덕양구청 담당 공무원은 “아파트 관련 법규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공무원이 모든 사안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구청 담당자 3명이 하루에 평균 15건의 아파트 관련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며 “사안별로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과태료나 시정명령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민원인은 “아파트 비리로 인해 관리비가 엉뚱하게 쓰이는 경우가 태반인데 아파트 도시인 고양시는 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대의 측 주민들이 비리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관리소장이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파트 비리 근절을 위해 고양시가 행정력을 더욱 집중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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