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프랑스 소설가 카뮈는 1941년 파리에서 기자로 재직하면서 한 권의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페스트』가 그렇게 탄생했다. 카뮈에게 페스트는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징후였다. 도처에 페스트 병균처럼 퍼지는 폭력과 부조리, 인간다움을 상실한 사람들을 고발하는 소설이 바로 『페스트』다.

이 소설은 페스트가 발생한 알제리의 오랑시를 배경으로 한다. 페스트에 걸린 오랑시에 시민들을 살리기 위한 의사 뤼와 친구 타르, 페스트를 종교적 경고로 여기며 포교를 하는 파느르 신부, 오랑시민은 아니지만 페스트로 봉쇄되어 오랑시에 남게 된 개인주의자 랑베르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페스트라는 질병 자체보다는 페스트를 바라보는 시선과 혐오현상, 페스트가 심해지자 정차 인간다움을 상실해가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인류에게 재앙은 페스트만이 아니다. 전쟁과 질병은 어느 시기에나 있었다. 문제는 그 전쟁과 질병에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번에 발생한 코로나19의 확산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불안하지만, 코로나19를 배경으로 보여지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태도와 모습에 착잡하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스크며 생필품을 대량구매하며 자기 한 몸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다. 더한 것은 이것을 자신의 정파적 이익의 기회로 삼아 사실을 왜곡하고 비난하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들을 연민과 구호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질병을 확신시키는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신천지라는 신흥종교집단이 코로나19를 급속도로 확산시키자, 마치 사이비종교집단이 질병의 원인인 양 희생양을 삼아 집단적 혐오를 부축이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신흥종교집단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고,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부주의한 삶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메르스, 조류독감, 돼지열병 등 온갖 새로운 질병은 경제와 생활이 세계화되고, 무차별적인 개발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자연과 문명사회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 누구도, 그가 선하든 악하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똑똑하든 무지하든, 정통이든 이단이든 이러한 질병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중국에 다녀온 사람도, 질병에 걸린 신천지 교인들도 모두 우리가 지켜주고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검사하고 치료해야할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도 그들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한 우리가 살뜰히 돌보아야할 귀한 인간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확산될수록 우리가 간직해야할 태도는 혐오와 경계가 아니라, 보호와 연대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워진 지역경제를 보살피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힘든 시기일수록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에게 피해가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으로 닥쳐온다. 이럴 때일수록 병자들을 위로하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며, 코로나 퇴치에 힘쓰는 사람에게 연대와 지지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길이다.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위해 경계와 격리는 불가피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아니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보호와 연대, 구호와 지원이다. 코로나19가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 역시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는 빨리 백신을 개발하여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라면, 사회적으로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 정신은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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