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이웃> 『과학의 품격』 펴낸 강양구 작가

과학저널리스트이자 친근한 고양의 이웃
과학이라는 창 통해 사회의 ‘품격’ 질문
반복될 수밖에 없는 전 지구적 유행병 예고
억압의 과학 넘어서는 ‘해방의 과학’ 고민해야

 

『과학의 품격』(사이언스북스). 강양구 과학·지식 큐레이터가 2년 동안 쓴 과학칼럼을 묶은 책이다.

[고양신문]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사태는, IMF가 그랬고, 세월호가 그랬듯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듯하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광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합리’와 ‘비합리’의 여파들이 우리사회 곳곳에 잔해처럼 쌓여있지 않을까. 합리와 비합리를 구분하는 가장 유용한 바로미터가 바로 과학이다. 집단심리나 이해관계로부터 두어 걸음 물러서서, 과학의 눈으로 이 사태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대처방법이겠다.

하지만 과학이라고 해서 항상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얼굴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이나 자본, 또는 계층의 욕망과 결합하면 무소불위의 폭력적 면모로 변신하기도 한다. 강양구 과학전문기자가 쓴 책 『과학의 품격』(사이언스북스)은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각양각색의 현상들을 ‘계층간의 정치적 힘겨루기의 장’이라는 시각에서 날카롭게 짚어낸 책이다.

강 작가는 책 전반에서 권력과 자본의 욕망에 사역하는 ‘억압의 과학’에 딴지를 걸며, 시민 모두를 위한 민주화된 과학, 인간의 숨결이 담긴 ‘해방의 과학’을 향한 열망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질문하는 기자이자 탁월한 과학·지식 큐레이터로 불리는 강양구 작가는 덕양구 행신동에 거주하며, 고양시 도서관 곳곳에서 강연도 하고 독서모임을 이끌기도 하는 친근한 고양의 이웃이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삭제된 기억 

책은 4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15년 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남긴 의미를 되짚는다. 사실 강양구 작가는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 과정의 윤리적 문제점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렸던 장본인이다. 강 작가는 황우석 사태의 최초 보도자로서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엠네스티언론상(2005년), 녹색언론인상(2006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 사태의 뒷맛이 씁쓸하다고 밝힌다. 애초 그가 지적하고자 했던 점은 논문 진위여부와는 별개인 연구 윤리의 문제였는데, 그 점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한 과학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 열정에 치여 토론해야 할 가치들이 사장됐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과학을 경제적 이익이나 국가경쟁력, 사회의 성장동력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15년 전 사건이 남긴 기억을 올바로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제2의 황우석 사태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작가의 지적이 서늘하다.
 

새로운 과학기술, 장밋빛 미래 안겨줄까

2부부터는 과학기술이 우리 삶과 관계를 맺는 다양한 양태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주제가 이어진다. 70여 개 글마다 첨단 과학기술 이론이나 이슈가 연이어 등장하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필력이 경탄스럽다. 과학에 문외한인 기자 역시 블록체인, 수소연료전지 등의 원리와 사회적 가능성 등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됐다.

그렇다고 강 작가의 재능이 단순히 탁월한 지식 전달자에 그치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과학지식을 둘러싼 저자만의 치밀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해석과 전망이다. 작가는 미래를 열어갈 신기술로 추앙받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자동차, 그리고 초연결사회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경제 등이 가져올 삶의 변화를 진지하게 성찰하며,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언급한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기술의 헤게모니를 거대 자본이 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의 해방을 위해 활용돼야 할 기술들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파편화하고 계층의 벽을 단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집요하게 경고한다. 예를 들어, 배달앱 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경제는 이미 ‘공유경제의 확산’이라는 초기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렇잖아도 힘없는 사람들의 노동을 쥐어짜는 ‘부스러기 경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대중 개개인의 이기적 욕구와 참여를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시켜내는 블록체인 등의 분야는 아직은 거대자본이나 권력이 기술을 전유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그러한 기술이 가진 해방적 가능성, 미래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자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 강 작가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우리 일상 속으로 막 들어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기술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과 토론을 시민들이 시작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며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판단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고양에 거주하는 이웃이기도 하다. 2월 27일, 백석동 한 카페에서 만난 강양구 작가.


과학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얼굴

작가는 과학기술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는 수고와 함께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소개하는 일에 에너지를 할애한다. 산업기기나 첨단 전쟁무기를 연상시키는 로봇이 장애인을 향한 고민과 만나 ‘웨어러블 소프트 로봇’이 탄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산업화 이후 개발된 가전제품들이 실제로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선한 의도로 시도된 과학기술일지라도 냉정한 이성과 판단력이 결여됐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아프리카 ‘플레이펌프’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습관적 통념에 딴지를 거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국립공원은 정말 자연의 원형인가? 유기농은 정말 안전한가? 초고층빌딩은 반 환경적인가? 등을 묻는 글들이다. 이에 대해 대해 작가는 “중산층 진보 지식인들의 관성적 통념에도 성찰이 결여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면 필히 책을 사 보기를 권한다.
 

화석연료문명 멈춰 세울 대체에너지들

강양구 작가가 이 책에서 가장 힘을 준 부분 중 하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 문제다. 책에는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메테인, 체열, 나무연료, 건물 빌딩풍 등 다양한 대체 에너지가 소개된다. 강 작가는 “화석연료는 현재의 물질문명을 떠받치는 근간으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신종 전염병의 역습까지, 인간이 초래한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에서 초래한다”면서 “놀랍게도 인류는 이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많은 대안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구조 등에 발목이 잡혀 그것들을 실질적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대안을 기대하지 말고, 각 지역의 여건과 형편에 맞는 다양한 대체에너지들을 지역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 정확히 예언 

마지막으로, ‘전염병 우리는 운이 좋았다’, ‘바이러스의 저주’, ‘독감 대한민국을 덮치다’ 등으로 이어지는, 책의 뒤편에 모여 있는 몇 꼭지의 글들은 정말이지 독자에게 서늘한 소름을 유발한다. 글이 쓰여진 시기가 한참 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 시점의 코로나19 대유행을 명징하게 예견한 듯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책이 서점에 깔린 날짜는 2019년 12월 31일, 중국 보건당국이 우한에서 번지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의 존재를 WHO에 처음으로 공식 보고한 날도 바로 그 날이란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그는 이 글들에서 지금과 같이 인간에 의한 생태교란이 반복되고, 지구촌 전체가 초연결된 환경에서는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유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고한다. 아울러 그러한 전염병에 대비해 전염병 방역체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삶의 방식 자체를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내용이야말로 과학을 이해하는 합리적 교양이, 그리고 ‘인간의 숨결이 담긴 모두의 과학기술’을 지향하려는 고민이 얼마나 ‘품격 있는’ 행위인지를 스스로 방증한다. 마음에도 온도가 있다면, 책을 읽은 후 『과학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대하는 온도가 책을 읽기 전에 비해 확연히 상승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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