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9년 전 오늘을 예견한 영화 <컨테이젼>

[고양신문] 한 여자가 홍콩 공항에서 기침을 한다. 그녀는 미국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지만 다음날 고열로 쓰러져 죽는다. 그녀의 아들도 감염되어 죽었고 홍콩에서 만났던 영국여자, 일본남자, 홍콩웨이터 등이 모두 같은 증세로 사망한다.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지는 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세계보건기구(WTO)등의 전문가들이 노력을 하고 그중 CDC의 역학조사관이 헌신적인 활동 중에 병에 걸려 사망한다.

제약회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CDC에 백신개발을 하도록 넘겨준 사람, 자기 몸에 백신을 실험해 백신개발에 성공한 전문가 등으로 인해 이 바이러스의 확산은 중지된다. 2011년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컨테이젼(전염병)>의 내용이다. 그런데 지금 1월 20일 첫 발생 이후 1달반 만인 3월 10일 국내 7478명의 확진자가 나온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전염병 상황을 놀랍도록 예언한 영화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말미에 바이러스가 시작된 경위를 아무런 설명 없이 영상으로 보여준다. 한 다국적 기업이 개발을 위해 숲을 벌목하며 파괴한다. 그러자 거기 살던 박쥐가 서식지를 잃고 인근 농가의 돼지 축사로 날아가, 먹던 먹이를 떨어뜨린 것을 돼지가 먹는다. 그 아기돼지는 식당으로 팔려가 도축되고 그 고기를 요리하다가 주방장은 씻지 않은 손으로 여자주인공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바이러스 발생의 시작이라고 영화는 보여준다.

 

기후변화와 인간의 자연파괴가 만들어낸 과보

1997년 인도네이사에서 과일박쥐로부터 시작되어 돼지를 매개체로 시작된 니파 바이러스와 영국 브리스번의 경주마를 키우는 마을에서 역시 박쥐로부터 감염된 핸드라 바이러스의 사례가 바로 이 영화의 소재로 보인다. 이처럼 인간과 짐승이 동시에 걸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의 75%는 동물에서 유래되었다. 실제 인간은 가축을 키우면서 동물에서 비롯된 전염병에 노출되었다. 결핵과 홍역, 천연두는 소로부터, 백일해는 돼지로부터, 인플루엔자는 오리로부터, 페스트는 쥐로부터 옮겨온 것들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는 매개동물이나 병원체의 성장속도나 개체수에 영향을 미친다. 산림자원이 훼손되고, 경작지가 확대되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어 사람들과 접촉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기온이 높아지면 모기나 쥐 등의 번식이 증가하고, 빈번한 홍수나 장마는 이들 동물들의 배설물을 노출시키며, 화학물질의 오염, 내분비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간의 면역기능이 약화되고, 국제적인 이동과 교류가 증가하면서 병원체가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는 것이다.

2002년 11월 사스는 박쥐로 시작하여 사향고양이를 매개체로 감염되었고, 2009년 4월 신종플루는 돼지를 통해, 2012년 메르스는 역시 박쥐로 시작해 낙타를 매개체로 퍼졌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박쥐로 시작해 동물을 매개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최근 50년간의 신종 감염병의 급격한 증가는 병원체의 자연적 진화도 원인이지만 대체로 인구증가, 도시화, 여행교역, 전쟁, 토지 개발, 생태환경파괴 등 인간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반복될 전염병, 미룰 수 없는 기후위기대책

전염병은 앞으로도 일정한 주기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바이러스는 수백만 종이며 우리 몸 안에도 백여만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바이러스가 없으면 인간이 살수 없을 정도이다. 바이러스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퇴치될 수도 없다. 함께 공생해야 한다. 단지 인간의 자연파괴행위가 자연이라는 완충지대, 즉 인류가 접촉하지 않은 자연 속에 숨어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1월 23일 라이브사이언스라는 과학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티베트의 고산 굴리야 빙하에서 28종의 고대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이것이 온난화로 인해 녹게 되면 인간사회와 접촉하여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거기에 시베리아 동토 극지방의 얼음 속에 있는 바이러스와 더불어 메탄 등이 온난화로 녹게 되면 그 심각성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우리 인류는 현재의 평균기온에서 1.5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얼마나 위급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번 코로나 국면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지금 코로나에 대응하는 것처럼 기후문제에 대해서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지금 국면은 다음 국면을 위한 연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2009년 신종플루는 국내에서 약 76만명이 감염, 260명이 사망했다. 올해 코로나는 3월 10일 국내 7500명 감염에 54명 사망한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는데 왜 그때 정부와 언론은 그리 조용했고 지금은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고 있을까? 역시 정치의 문제인가? 영화 <컨테이젼>에서 과도한 대응으로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해 사회경제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은 대답한다.

“늑장대응으로 국민들을 죽게 하기보다 과잉대응으로 정부가 비난 받는 게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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