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건강도시를 위한 심층기획 / 어떻게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3>질병압축설과 활동적 노화

 

‘노화’ 질병이라 여겨 약에 의존하면 오히려 부작용
나이 들수록 스스로 건강하다 생각해야 더 장수한다


죽음까지도 선택한 스콧 니어링의 나이듦

어제도 산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진료가 없는 날이면 늘 배낭을 메는데,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하는 산행도 좋고, 혼자 고요히 산길을 거닐며 떠오르는 생각을 즐기는 것도 참 좋습니다. 어제는 산길을 걷는 동안, 미국인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 떠올랐습니다. ‘조화로운 삶’이란 책으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죠. 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는 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정성에 회의를 느낀 스콧 니어링은 50대 이후 시골 버몬트로 들어가 돌집을 짓고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삶은 저에게 어떻게 나이 먹을까에 대한 영감을 줍니다. 그는 지천명 즈음해서 정체성을 정돈하고, 삶의 방법을 재구성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이 들어갔습니다. 100살 되는 해에는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했고요. 무엇보다 죽음을 맞기까지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온전히 건강한 삶을 살았습니다. 몸과 마음, 삶의 방법, 나이듦을 스스로 주도하고 선택했다는 점이 감동적입니다. 
 
질병에 시달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질병압축’ 

많은 분들이 니어링처럼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감하고 싶을 겁니다. 건강하게 99살까지 88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앓고 죽는다는 9988이란 말처럼요. 스콧 니어링 같은 삶이 우리에게도 가능할까요? 인명재천이라고, 삶을 어떻게 예측하겠습니까 만은, 충분히 그런 흐름이 가능하다고 응답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프리스(James Fries)라는 미국 스탠포드 의대 교수입니다. 

그는 1998년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스탠포드 대학 동문 1700여 명을 대상으로 노화와 질병의 흐름을 관찰했습니다. 프리스의 결론은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죽음 전에 압축적으로 질병을 앓다가 사망한다는 것입니다(Fries and research 2012). 말 그대도 9988이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약 복용을 최대한 뒤로 미뤄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만성질환으로 시달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어쨌든 이를 학술적으로 질병압축설(compression of morbidity)이라 합니다. 

이런 질병압축설은, 우리 주변 어르신들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80대 후반인 저의 어머니만 해도 특별한 병은 없지만 걷기가 불편할 만큼 쇠약하고, 변비가 있고, 특히 기억이 깜박깜박하십니다. 늘 들고 다니시는 가방 속에는 드시지도 않는 약이 한 움큼 있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의 경우 65세 이상의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지요. 또 나이들면 한두 개의 질병을 갖고 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학계에서도 질병압축설은,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는 논박이 많이 오고 갔고,(Fries, Bruce et al. 2011) 현재도 좀 더 많은 검증을 위해 장기간의 인구역학조사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질병압축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려면, 이 이론의 전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질병의 시작 시점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성질환이든, 암이나 치매 같은 중병이든, 병이 시작되면 우리는 약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약은 약을 부릅니다. 약 하나하나는 나름의 효능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약이 병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쇠약한 기간을 늘리고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물론, 질병의 시작 시점을 늦춘다는 것이 맘대로 되긴 어렵습니다. 미세먼지는 점점 많아지고, 음식은 더 기름지고 달고 맵고 짜고 양도 많아졌습니다. 스트레스도 잦아졌습니다. 건강검진표에는 정상이 아닌 수치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곳곳에서 의료화의 압력도 커집니다. 

100세인들 건강하다 생각, 현대의료는 5개 질병 진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시작 시점은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보건학에서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평가와 주관적 만족감이 참 중요하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자기평가건강도(Self-rated Health) 라고 하는데, 실은 단순합니다. “당신은 건강하십니까?”, 단 하나의 질문만 던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건강 정도를 1~5점까지 매겨보라고 합니다. 이 답에 스스로 몇 점을 주느냐가 수명과 사망에 아주 중요하다는 겁니다.(Idler and Benyamini 1997)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건강하지 않게 살다가 일찍 죽는다는 거지요. 

물론 자신 건강에 5점을 주는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건강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건강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느낄 테니까요. 자기평가건강도가 여러 건강수치가 보여주는 객관적인 건강을 잘 반영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Wu, Wang et al. 2013) 그렇지만 주관과 객관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주관과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아주 인상적인 연구가 있습니다. 건강하게 100세를 사는 100세 인들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아마도 4~5점), 자기 삶에 아주 만족하는데도 여러 진단기법을 이용한 ‘객관적인 건강상태’를 보면 평균 5개의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Jopp, Park et al. 2016) 주관적으로는 건강한데, 객관적으로는 병이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이 연구결과를 보면, 매년 하는 건강검진으로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것도 역설적인 면이 있겠다 싶습니다. 건강상태를 확인해 보는 면도 있지만, 검진보고서 수치에 스스로를 가두게 됩니다. 그 수치를 기준으로 약을 처방하고 복용하게 되면서 질병의 시작 시점이 앞당겨집니다. 결과적으로 질병의 압축을 저해하게 됩니다. ‘건강검진→내 몸의 수치화→약 처방’이란 21세기 현대 의료의 흐름을 ‘수치로 처방하기’란 표현으로 꼬집는 책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환자가 되어 간다는 거죠. 또 다른 책은,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하나도 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나이들면 끈적끈적한 혈액, 약물치료 대상 아닐 수 있다

주관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한 개인과 객관적인 수치로 처방하는 현대의학의 갭은 여러 논문에서도 발견됩니다. 제목이 인상적인 ‘잘 나이듦의 역설’이란 논문이 있습니다.(Mari, Mannucci et al. 1995) 1995년에 발표된 이 논문에는 건강하게 100살을 넘어 사는 사람들의 혈액이 더 끈적끈적하다는 연구결과가 담겨 있습니다. 100세 인들의 혈액에 혈전을 만들 수 있는 여러 성분과 효소의 활성도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는 것입니다. 논문의 결론은 이런 현상이 나이 먹으면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는 것, 반드시 약물치료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아쉽게도 이 논문은 21세기 들어 급속히 확대되는 아스피린 처방의 흐름에 눌려 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건강한 노인들이 아스피린을 복용할 경우 오히려 사망률을 높일 수 있고 암 발생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McNeil, Woods et al. 2018) 

저는 이런 연구들을 보면 현대의학과 과학이 좀 더 겸손해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20세기 동안 의학과 과학이 발견한 몇 가지 분자적 지표로 지난한 진화의 과정을 거친 생명의 흐름을 섣불리 침해하려는 것은 오만일 수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머릿속에 그리는 노화에 대한 상이 하나 있습니다. 활동적 노화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시민과 국가에 권장한 노화의 개념인데, 의미는 심플합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액티브하게, 활동적으로 살라는 권고입니다.  

운동 강도 높은 마라톤클럽 멤버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마라톤클럽연구’란 논문이 있습니다.(Chakravarty, Hubert et al. 2008) 1984년부터 21년 동안 마라톤클럽을 관찰한 연구논문인데요, 중간중간 발표된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연구 대상은 1년에 2000마일 이상씩 뛰는 50대 이상 마라톤클럽 멤버 538명과 달리기는 좋아하되 그냥 슬슬 조깅 삼아 뛰는 건강한 사람(대조군) 423명입니다. 대조군의 뛰는 양은 마라톤클럽 회원의 10% 정도입니다. 둘 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한쪽은 상당한 강도였고(마라톤클럽 멤버), 한쪽은 즐기는 정도(대조군)였습니다. 

21년 후까지 이 연구에 참여해준 사람들 중 마라톤클럽 회원들은 80세 가까이 되었는데도, 일주일에 76분의 달리기를 포함해 강도 높은 운동을 주당 5시간 정도(287분) 했습니다. 그냥 취미로 가볍게 뛰었던 대조군 사람들은 21년 후 달리기는 거의 하지 않고(주당 1.1분) 주당 138분의 강도 높은 운동을 했습니다. 50대의 운동습관이 21년 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년 후인 2003년 두 그룹의 사망률을 보면 큰 차이가 납니다. 마라톤클럽 회원들은 19%, 대조군은 34%가 사망했습니다. 일상생활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느냐 하는 질문에서는 마라톤클럽 남성 멤버의 경우 10% 정도 불편하다고 답했고, 대조군 여성은 절반이 넘게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장기관찰이니, 사망률과 일상생활능력 모두 시계열적으로 보여주는데, 시간이 갈수록 둘 다 차이가 벌어집니다. 여성의 경우 차이가 더 커집니다. 연구의 결론은 중년은 물론 노인들에게도 상당한 강도의 운동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보탬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공통된 결론은 나이 들어서도 활동적일 수 있다,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활동적 노화’입니다. 바람직한 나이 먹음을 의미하는 여러 용어가 있는데 저에겐 ‘성공적 노화’와 ‘활동적 노화’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성공적 노화’는 1997년 Rowe와 Khan 등이 정리한 개념으로 질병이 없을 것, 신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할 것, 인생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사회적 친분과 참여를 유지할 것 등 3가지를 성공적 노화의 조건으로 꼽았습니다.(Rowe and Kahn 1997), 

이에 비해 ‘활동적 노화’는 육체적·정신적 활력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100세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관찰해 보면, 늘 많이 움직인다는 게 공통된 특징입니다. 이제 활동적 노화와 성공적 노화는 미래형 노화의 개념으로 정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활동적 노화는 질병압축설과 동전의 양면을 이룹니다. 활력을 유지해야 질병을 압축할 수 있을 테니까요.
 
80대 후반의 저의 어머니는 이유 없이 몸이 아플 때는 아파서 못살겠다, 하소연 하십니다. 그럴 땐 영양 수액을 맞게 해드리고, 가끔은 진통소염제를 넣어드립니다. 얼마 전에도 몸이 아프고 힘들다 하셔서 주사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제 주사를 반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안 맞을란다. 자꾸 아프다고 주사를 맞으니, 내 몸이 거기에 적응되는 것 같다. 좀 걸어보고 운동하면서 지내 볼란다.” 

어머니 말씀을 듣는 순간 생명의 본성 같은 걸 느꼈습니다. 어머니도 몸의 변화를 스스로 알아채신 겁니다. 나이 먹어서도 약에 의존하지 말고 팔팔하게 활동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배사가 있습니다. 백두산!(백살까지 두발로 산에 가자!) 백두산처럼 살고 싶습니다.

글 /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필진 소개
김혜성 이사장은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치과의사이자,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미생물과의 공존』 등 그간 펴낸 미생물 관련 3권의 책 모두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됐다. 
우리의 몸 안팎의 생명체들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통생명 삶’이란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기획보도에서는 건강에 대한 개념과 건강한 삶을 위한 습관, 건강한 노년을 위한 준비, 새로운 삶의 가치에 대한 선택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게 된다. 총 6회 연재.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