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인 인터뷰 – 문형자 동신미술 대표

국내 최고의 청동주조 전문 업체 
국립묘지·독립기념관 등 작품 제작
장인정신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쉬워
“시대변화에 맞춰 남은 소임 다할 것” 

 

문형자 동신미술 대표는 청동주물을 다루는 데 있어 국내 1인자였던 배우자 박인규씨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 왔다. 박인규씨 흉상은 조각가 이용준씨가 직접 제작해주었다.

 

[고양신문]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박세직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장이 수차례나 저희 동신미술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조형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88올림픽공원 조형물 작업 진행 현장을 둘러보고 격려하기 위해서였죠.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어쩌다 잠시 쉬며 한동안 밤에 회사가 조용해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동신미술에 무슨 일이 난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죠.”

틈틈이 회사 일을 도우며 4남매를 키우는 데 정신없었던 문형자 동신미술 대표는 1995년부터는 직접 경영일선에도 나서야만 했다. 대표이자 배우자였던 박인규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였다.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은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을 배우자의 사망으로 꼽는다. 문 대표 역시 모태 신앙으로 독실한 불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충격을 극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종교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며 개종하거나 아예 종교를 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청동주물을 다루는 데 있어 국내 1인자였습니다. 국내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그들이 ‘한국 미술계 주물의 큰 별이 졌다’며 애통해했던 이유입니다. 49재를 지내고 나서 아이들에게 ‘아빠 없는 아이라는 말 듣지 않도록 행실을 바로 해야 한다’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고, 회사로 나와 직원들에게 ‘나를 믿고 다시 한 번 같이 뛰어보자’며 다독였습니다. 당시 직원들 숫자가 40명이나 됐기 때문에 책임감도 막중했습니다.”

 

동신미술이 1999년 12월 청동 조형물로 제작한 상생의 손은 새천년(2000년) 이후 일출로 유명한 포항 호미곳의 상징이 됐다. [사진 = 포항시청]

 

동신미술은 청동 조형물, 예술 조형작품 등을 주조하는 국내 대표적인 전문 업체다. 1974년 서울 목동에서 설립된 후 목동 신시가지 개발로 인해 1983년에 현재 위치인 덕양구 도내동 창릉천 바로 옆으로 확장 이전했다.
  
동신미술은 1975년 충남 천안 각원사의 동양최대 청동좌불(최기원 작)을 비롯해 서울 국립묘지 현충탑, 여의도 국회의사당 조형물, 용산 전쟁기념관 형제상, 외환은행 본점 조형물, 천안 독립기념관 만세상, 신촌 연세대학교 독수리상, 포항 새천년맞이 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비천상, 완도 장보고상 등 국내 민·관의 크고 작은 조형물 제작에 참여해오며 국내 최고의 청동주조 전문업체로 인정받았다.

동신미술이 제작한 삼성그룹 창립 50주년 기념 브론즈 작품

동신미술이 그렇게 20여년 이상 수많은 작품의 청동조형물 제작에 참여해온 사이 1세대 작가 군이 대부분 은퇴를 했고, 그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2세대 작가들은 불과 20명 남짓밖에 안되는데다가 3세대 작가들은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조형물 제작환경도 달라졌다.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제작은 거의 다 없어지고 도면에 기초해 레이저 커팅과 용접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시대가 바뀌었다. 문 대표가 우직한 장인정신을 가진 청동작품 작가의 배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지점이다. 시대가 달라져서 새로운 작품의 작업을 진행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려고 해요. 요즘 들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품의 유지보수 관리부분이에요.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조형 작품들이 처음 설치 이후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동네 페인트 가게나 집수리 업체가 보수작업을 한 것을 본 적도 있어요. 가슴이 아픕니다. 설치 당시에는 큰 비용을 들여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설치했을 텐데 말이죠. 적어도 동신미술의 손을 통해 나간 작품들만큼은 우리 손으로 체계적으로 유지보수 관리하는 일에 나서보려고 해요. 그것이 저의 마지막 남은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형자 대표는 동신미술 인근에 있는 조각공원에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갤러리를 올해 안 개관을 목표로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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