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정당투표 분석>

 

[고양신문] 21대 총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개정 선거법이 복잡한 파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 4개 정당이 손을 잡은 이른바 4+1 공조체제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선거법 개정을 강행해내며 소수 정당에게도 국회 입성의 문턱이 낮아지리라는 기대감이 커졌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우려됐던 것처럼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개정된 선거법의 허점을 악용한 비례위성정당을 각각 만들면서 이런 기대감은 무너져버렸다. 이는 고스란히 정당투표 결과로 반영됐다. 21대 총선 정당투표 개표 결과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33.9%를 획득해 전체 비례대표 의석 47개 중 19개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33.3%를 얻어 17석을 차지해버렸다.

뒤를 이어 9.6%를 획득한 정의당에 5석이 돌아갔고, 7.2%를 얻은 국민의당이 3석, 6.4%를 얻은 열린민주당이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48.1cm에 이르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정당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린 나머지 30개 정당들은 비례의석 배분 커트라인인 3%를 넘지 못해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이번 총선을 마무리했다. 거대양당 독식체제가 비례대표 의석배분에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셈이다.

비례위성정당 없었다면 정의당 16+α

만약 거대양당의 비례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의 득표를 고스란히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갔다고 가정해도 정의당은 16석, 국민의당도 11석의 의석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나아가 비례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거대양당에 비해 투표효율이 훨씬 높은 소수정당으로 향해 정의당과 국민의당 등이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 의석을 얻지 못한 나머지 정당들 중 몇몇이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득표 결과를 개정 이전의 선거법에 대입해 봐도 어이없다. 미래한국당이 한 석이 줄고 더불어시민당이 한 석을 더 얻을 뿐, 나머지 결과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비례위성정당이 새로운 선거법의 의의와 기능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돌풍 기대한 열린민주당… 미풍으로 그쳐

정당투표에서 드러난 표심을 분석해보자.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미래통합당에 지역구 의석 180대 103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정당투표에서는 더불어시민당이 33.3%를 얻어 33.8%를 얻은 미래한국당에 1등자리를 내줬다. 비록 0.5%에 불과했지만 1등의 프리미엄은 컸다. 의석을 2개나 더 가져갔기 때문이다. 연동형 캡이 씌워진 30석 중에서 1석, 이전 방식을 적용한 나머지 17석 중에서 1석을 각각 더 챙긴 결과다. 지역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찍은 유권자들의 일부는 정당투표에서는 열린민주당, 또는 정의당과 국민의 당 등 다른 정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이 5%에 못 미쳐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본 선거에서는 10%에 근접한 지지율을 획득해 최소한의 정치 영역을 회복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를 주도하며 21대 총선의 목표를 최소한 교섭단체구성(20석 이상)으로 잡았던 만큼 거대양당의 구도의 높은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탈락인사들과 지명도 높은 영입인사들이 바람을 일으킨 열린민주당은 한때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며 이번 총선 최고의 깜짝스타로 등극하는 듯 했다. 그러나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체성 논란이 불붙으며 여론조사 발표 금지기간 동안 지지율이 홀쭉해지고 말았다. 

소수정당의 공간 오히려 축소

민생당은 1당과 2당이 기존의 당 이름으로 비례후보를 내지 않으며 어부지리로 정당투표용지 맨 위 칸을 차지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정당투표에서 2.7%를 얻는 데 그치며 지역구에 이어 비례의석마저 한 석도 못 챙겼다. 현역의원 20명을 보유한 민생당에는 정치 내공을 자랑하는 고수들이 즐비했지만, 호남 유권자들이 지지 철회를 막아내지 못했다. 

나머지 소수정당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일제히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극우 성향의 정당들 중 기독자유통일당이 가장 높은 1.8%의 표를 얻었고, 우리공화당(0.7%)과 친박신당(0.5%)은 요란스러웠던 존재감에 비해 미미한 득표에 그쳤다.
비현실적인 배당금 공약을 남발한 국가혁명배당금당과 이름만으로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낸 여성의당은 나란히 0.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일찍부터 우리 사회에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며 진보의 공간확보를 도모했던 정당들 역시 민중당 1.0%, 녹색당 0.2%, 노동당 0.1%를 겨우 획득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거대양당의 양자택일 경쟁이 심화되며 소수정당의 역량과 지분이 확대되지 못하고 오히려 위축됐다는 점은 이번 총선 결과를 복기하며 되짚어야 할 가장 고민스런 과제일 것이다.

덕양구, 정의당의 높은 득표율 견인

고양시 유권자들의 정당투표 표심은 어땠을까. 가장 큰 특징은 정의당의 높은 득표다. 정의당은 전국 득표율보다 무려 4.5% 높은 14.1%의 지지를 기록했다. 특히 심상정 후보(고양갑)와 박원석 후보(고양을)가 지역구 선거에 뛰어든 덕양구가 정의당의 높은 지지율을 견인했다. 총 5만1462표를 얻어 일산동·서구를 합친 3만5179표보다 훨씬 많았다.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양강 대결에서는 전국 상황과는 달리 31.4%대 29.0%로 더불어시민당이 우위를 점했다. 다만 일산동구에서는 미래한국당이 더불어시민당보다 1504표를 더 얻은 점이 눈에 띈다.

국민의당은 고양시에서 전국 평균보다 0.5% 높은 7.2%를 얻었고, 열린민주당도 1% 높은 6.4%를 기록했다. 그밖에 민중당, 녹색당, 녹색당 등 진보적 소수정당들은 고양시에서도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수준의 미미한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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