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보도> 보호구역 무색한 영주산 습지

과도하게 밀생하며 습지 독점
맹꽁이 산란철 다가오는데 물 말라
“보호구역답게 적절한 관리 절실”

물이 말라버린 2020년 4월의 모습.
2018년 5월, 부들이 번식하기 전 물이 풍성했던 영주산 습지의 모습.

 
[고양신문] 멸종위기종 맹꽁이의 서식지임이 확인되며 지난해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는 영주산 습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맹꽁이 산란철을 앞두고 물이 바짝 말라버려 우려를 낳고 있다. 14일 기자가 찾은 영주산 습지는 ‘습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물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 상태로는 올해 맹꽁이들이 예년처럼 알을 낳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습지의 물을 말려버린 범인은 바로 부들이다. 연못이나 습지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m 크기까지 자라는 부들은 줄기 끝에 길다란 소시지 모양의 열매를 매달고 있어서 갈대나 물억새 등과는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문제는 부들의 번식력이 워낙 왕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영주산습지에 집중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한 부들은 영주산 습지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빽빽하게 밀생하는 부들이 진흙에 뿌리를 박고 수분을 흡수해버리는 탓에 소량의 용출수에 의해 수량을 유지하는 영주산 습지의 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영주산 습지를 점령한 부들의 고사체. 소시지 모양의 씨를 달고 있다.

기자는 2017년부터 매년 봄마다 영주산 습지를 찾곤 했는데, 올해처럼 부들에 점령당해 물이 말라버린 경우는 처음 목격했다. 부들의 고사체(죽어서 말라버린 식물줄기)를 헤치고 습지의 가운데까지 들어가서야 겨우 축축하게 젖은 진흙바닥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년생인 부들의 밑둥에서 새로운 줄기가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고 있어, 부들이 성장하며 그나마 있는 물마저 빨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일산동구 산황동의 군부대 인근 야산에 자리한 영주산 습지는 2017년 지역 환경운동가들의 관심 덕분에 훼손 위기를 넘긴, 작지만 소중한 생태보고다. 이후 고양을 대표하는 시민생태모니터링 단체인 에코코리아의 지속적으로 생태모니터링을 통해 다양한 생물종이 발견되며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고양시는 지난해 영주산 습지를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입구에 커다란 안내간판을 세우며 특별 관리를 약속한 바 있다.

고양시에서 세워놓은 '양생동물 보호구역' 표지판.

하지만 현재의 영주산 습지 모습은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습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생물종인 맹꽁이의 서식 환경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에코코리아 이은정 사무처장은 “이미 산개구리와 두꺼비의 산란철이 지났는데, 습지 환경이 바뀌며 올해는 이들의 산란을 관찰할 수 없었다”면서 “5월 말이면 맹꽁이 산란철인데, 그 전에 부들을 일부 제거해 물이 고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영주산 습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들의 긴 목록을 들려줬다. 앞서 말한 양서류인 산개구리, 두꺼비, 맹꽁이를 비롯해 영주산의 여러 산새들이 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기 위해 영주산 습지를 찾고 있고, 이들을 노리는 수리부엉이, 새호리기, 황조롱이와 같은 맹금류도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그밖에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포유류, 그리고 다람쥐, 청설모, 멧밭쥐와 같은 설치류, 유혈목이와 살모사, 무자치 등의 파충류도 영주산 습지의 주인들이다. 물속에서는 나사말과 물옥잠, 말즘과 같은 침수식물들과 함께 송사리와 미꾸라지 등 작은 물고기들도 살고 있다.

하지만 부들이 과밀하게 우점하는 상태에서는 이와 같은 다양한 동·식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환경이 깨어지고 만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영주산 습지처럼 작고 취약한 습지에 부들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제거와 조절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했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고양시 환경보호과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분히 수렴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부들밭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야 바닥을 적시는 용출수의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영주산 습지 주변에서 발견된 고라니 털.

 

보호구역 지정의 이유를 '야생생물 종 보호 및 보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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