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봄이면 화사한 연둣빛 선사하는 버드나무
잘못 알려진 상식 때문에 지금도 목 잘려
향기와 꿀 가득… 뭇 생명들의 봄 잔칫상

장항습지 선버들숲에서 ‘버드향’ 브랜드 탄생
뿌리내린 자리 따라 ‘생태적 지위’ 달라

장항습지 선착장 부근의 버드나무. <사진=에코코리아>

[고양신문] 춘삼월부터 물 오르던 버들은 4월이 되어 경쾌한 연둣빛으로 갈아입었다. 강가 물빛은 온통 버들 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맘을 홀딱 빼앗곤 한다.

버들피리에 능수양버들 타령에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꽃가루알레르기를 이유로 하천정비대상으로 여기며 싫어하는 이도 있다. 늘 우리 주변에 있는 버드나무를 그러나 우린 과연 잘 알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로 버들은 지금도 여전히 목이 잘리고 있다.

봄이면 하천가 버드나무들은 벌목대상 1호다. 이유는 홍수예방, 유속과 유량확보, 그리고 민원이다. 해마다 하도정비사업예산으로 굴착해 뿌리째 뽑혀나가기 일쑤다. 지난해 봄엔 공릉천 핵심구간에 버드나무군락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십수 년간 원앙들이 월동하던 자리이자 수리부엉이가 번식하던 곳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올 봄 시민모니터링에 이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훼손되기 전 공릉천 물가의 버드나무숲. <사진=에코코리아>
물가 버드나무숲이 잘려나간 공릉천의 황량한 모습. <사진=에코코리아>

장항습지 버드나무숲도 보호지역이 지정되기 전에 벌목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한강하류의 통수면적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다. 그러나 버드나무가 오히려 유속완화에 도움을 주어 하류나 하구 범람을 막는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버드나무습지가 오히려 제방사면이나 둑을 보호하는 완충지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행히 보호지역이 지정되었고 그렇게 장항습지 버드나무숲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고양시의 70여개 하천에 있는 버드나무들은 여전히 위협을 받고 있다.

버들 꽃향을 맡아 보았는가? 이른 봄 잎보다 꽃부터 피우는 버들은 많은 꽃을 한 번에 피운다. 꽃잎 없이 바람으로 꽃가루를 옮기는 풍매화로 오인을 받지만 아니다. 엄연히 곤충을 매개자로 부리는 충매화다. 이른 봄 수분매개자 수가 희박한 시기에 꽃가루받이를 하려면 좋은 꽃가루를 많이 만들고 꿀도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 향을 진하게 풍기는 것은 당연하다. 독자들도 이시기 짧지만 강렬한 버들 향을 맡아 보길 권한다.

버드나무 수꽃. <사진=에코코리아>
호랑버들에 앉아있는 양봉꿀벌. <사진=에코코리아>

버들 꽃은 꿀벌에게도 꼭 필요하다. 이른 봄에 꿀벌들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원은 꽃가루다, 꽃이 부족한 시기, 많은 양의 꽃가루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버드나무가 유일하다. 이시기 버들 꽃은 비단 곤충만이 아니라 박새나 직박구리와 같은 숲새나 들새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이 된다. 뭇 생명들에게 버드나무는 훌륭한 봄 잔치상인 것이다.

버드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잎싹을 틔우고 가장 늦게 잎을 떨군다. 그 덕에 버들 잎을 먹는 곤충은 버들잎벌레, 사시나무잎벌레, 꼬마버들잎벌레, 유리꼬마벼룩잎벌레 등 185종에 달한다. 더불어 이들의 애벌레를 찾아 날아드는 산새들과 또 이들을 노리는 새매와 같은 맹금류들, 그리도 버드나무숲에 둥지를 지은 큰부리까마귀들의 공간싸움으로 생명그물이 얽혀있다. 버드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습지의 생태계를 받쳐주는 바탕이자 소우주다.

버드나무는 생물자원 전통지식을 현대에 잘 활용한 사례다. 고대 수메르나 이집트에서 해열,진통제로 사용한 기록, 고대 그리스에서 출산 고통에 버들잎차로 사용했다는 구전, 그리고 말이 아플 때 버들 줄기를 뜯어 먹는다는 동물의 자가치유 등 많은 전통지식들이 있다. 급기야 흰버들(white willow)에서 살리실산이 추출되고 전세계인의 진통제 아스피린이 탄생되었다.

비단 서양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버드나무는 유용한 나무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령스러운 나무, 버드나무 가지와 정수(淨水)를 손에 들고 병고를 덜어주는 양류관음(楊柳觀音)보살은 이를 대표한다.

장항습지 갯골의 선버들숲. <사진=에코코리아>

고양시는 장항습지의 선버들숲에 착안하여 ‘버드향’이라는 상표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나아가 선버들의 생리생태적 효능이나 약리적 특성에 천착하여 지역민의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생명체가 생태계 내에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생태적 지위, 니치(niche)라고 한다. 대개 이 니치는 타고 나지만, 다른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변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버드나무도 예외는 아니다. 강가나 호숫가, 습지 등 어디에서나 흔하게 살 수 있지만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는다. 장항습지에서 살아가는 선버들과 공릉천에 살아가는 갯버들, 키버들은 그 자연의 자리가 다르다. 이 ‘다름’을 이해하면 그들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장항습지 선버들숲은 다행히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공릉천, 창릉천의 버들들은 위태롭다. 더 이상의 강가의 버드나무를 베지 마라. 최소한 나무권리선언을 한 고양시에서만은 말이다. 오히려 하천변에 꿀벌들이 좋아하는 호랑버들과 같은 밀원식물을 심자. 버드나무 솜털종자가 날리는 것 때문에 있지도 않는 꽃가루알레르기 주범으로 몰지 말고 암수딴그루인 버드나무의 특성을 잘 알고 식재하면 솜털종자도 관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벌목되기 전 버드나무 군락이 무성했던 공릉천 모습. <사진=에코코리아 김은정>

 

공릉천에서 관찰된 천연기념물 원앙 무리. <사진=에코코리아 김은정>

 

선버들 꽃. <사진=에코코리아>

 

영주산에서 촬영된 수리부엉이 <사진=에코코리아 김은정>

 

영역다툼을 하는 말똥가리와 큰부리까마귀. <사진=에코코리아>

 

장항습지 선착장과 선버들숲. <사진=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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