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 통신>

우산모양 꽃차례를 이루며 하늘을 향해 모여 피는 층층나무 꽃. <사진=김윤용>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늦은 저녁입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휴대전화가 사라졌습니다. 어디선가 떨어뜨렸나 봅니다. 후배 전화기를 빌려 내 전화기에 전화를 합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들렀던 몇 곳을 찾아가 전화기를 찾았으나 그곳에도 전화기가 없습니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전화번호를 떠올리는데 생각나지 않습니다. 뒷번호 네 자리는 기억났지만 중간번호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딸 전화번호도 뒷자리만 되살아날 뿐입니다. 아내와 딸 전화번호 하나 기억할 수 없는 제 기억력을 한탄했습니다. 노래방 반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랫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마트폰 때문에 전화번호 하나 머릿속에 저장하지 못했군요. 게다가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라인 등 온라인 관계망까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이 때, 온라인 거리 두기까지 실천하는 모양새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다음 날, 후배 도움을 받아 전화국에 분실 신고를 한 뒤 위치 추적을 했습니다. 전화기는 벌써 먼 곳까지 가 있더군요. 전화번호 등 나와 관계된 정보를 모두 휴대전화에 기록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스마트(?)하지 못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스마트한 단말기에 지나치게 의존했던가 봅니다. 모든 관계가 끊기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연락하고 연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작은 수첩에 깨알같이 정보를 적어 가지고 다녔던 아주 오래된 때가 그리웠습니다.

며칠 동안 잃어버린 전화기에 계속 전화를 걸고 위치 추적을 하고 문자를 넣었습니다. 여전히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귀신이 장난하는 것 같습니다. 1주일이 지나 할 수 없이 새 단말기를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전화기에 조금씩 정보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스마트기기 영향 속으로 편입할 것 같습니다. 저는 스마트폰 기능을 잘 알지 못해 최소한의 기능만 사용합니다. 스마트폰 사용법이 어렵고 모르는 게 참 많습니다.

입하 시기에 핀다고 해서 이름이 온 이팝나무 꽃. <사진=김윤용>

한동안 얼빠진 듯 보내다 제주도 ‘시인의 집’ 북카페에서 산 황현산 선생의 책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모르는 것이 참 많다”라는 책 제목 때문일 겁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2018년 돌아가신 황 선생의 짧은 글모음입니다.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트위터에 올린 140자 이내 짧은 글들입니다. 트윗(tweet)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란 뜻으로 트위터 글은 짧고 가볍게 쓰는 글입니다. 하지만 황 선생 글은 짧지만 무게 있는 글들입니다.

“층층나무, 때죽나무, 이팝나무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 이 세상에서 배운 것이 이 정도인 것 같다. 봄날이 간다.” “인문학은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드님도 서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황 선생은 아주 겸손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겸손과 세상에 대한 믿음과 긍정”을 지녔던 분, “늘 당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셨고,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계셨다.”

호수공원 왕벚꽃 꽃잎도 꽃비처럼 오래 전 떨어지고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이 글이 고양신문에 실릴 쯤이면 입하에 핀다는 이팝나무 쌀밥같은 꽃들이 피어나겠군요. 낙민공원 층층나무도 하늘을 향한 우산 모양 하얀 꽃을 무더기로 터뜨릴 것입니다. 마두공원에는 종 닮은 하얀 때죽나무 꽃들도 피어나겠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때이지만, 호수공원에 들러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녹색 기운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봄날이 간다. 떨어진 왕벚꽃 꽃잎. 4월 18일 사진. <사진=김윤용>

 

호수공원 자연호수에 피어나는 부드러운 연잎. 4월 중순.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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