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녹색불교연구소 소장

[고양신문] 코로나19 이전인 4개월 전만 해도 우리는 몰랐다. 언제나 배워야 할 나라로 알았던 미국과 유럽이 저렇게 사회시스템이 엉망인 줄. 질서라면 최고인 일본이 저렇게 무질서한 사재기의 나라인 줄 몰랐다. 자유사회라 자부하는 선진국들이 국경폐쇄, 도시봉쇄, 외출금지라는 억압적 특단의 조치를 펴면서도 확진자를 막지 못해 곳곳에서 아노미상황이 벌어졌다. 저것이 우리가 알던 선진국이었던가?

한편으로 우리는 몰랐다. 우리의 공공의료시스템이, 의료보험제도가 이렇게 잘 되어있는지를. 빠르게 진단키트를 개발했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검사로 중증과 경증을 구분해 차별적으로 치료했다. 자가격리 관리는 세심했고, 외국은 수백만원이 든다는 치료비용을 거의 무료로 제공했다. 대구를 봉쇄하지 않고,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고도 개방적이며 투명한 민주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한 자리 수로 확진자를 진정시킨 것이 이렇게 대단한 나라로 평가되는 줄 몰랐다.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선진국의 신화가 깨어지고 있다. 더불어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열등의식도 깨지고 있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모델이라고 말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국의 통치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며 우리의 정책을 칭송하고 진단키트 구매를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한국의 진단키트를 구매한 일이 큰 정치적 치적인양 연일 보도되는 상황은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떨떨한 상황이다.

국난극복이 취미인 국민

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시민들이 방역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적극적인 참여도 빛이 났지만 집회, 행사, 모임을 취소하고 재택근무와 휴업, 휴교를 잘 지키며, 자발적 질서로 세계적으로 드물게 사재기가 없는 국가가 되었다. 이뿐 아니다. 대구를 돕기 위해 자원해서 달려간 의료진들, 병상이 모자라는 대구시에 병상을 제공하겠다는 광주시, 어려운 영세상인을 위해 월세를 깎아주는 건물주, 일손이 달리는 마스크공장에 달려가 돕는 사람들, 자신 순서의 마스크를 양보하고, 구세군 마스크 자선냄비가 등장했으며, 면마스크 100만 장을 직접 만들어 취약계층에게 전하는 마스크운동도 있었다. 방역지원에 총 37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고, 2100억원의 성금이 모금될 정도였다. 팬데믹 상황에서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토록 자발적으로 방역에 참여한 나라가 지금 세계에 몇 곳이나 있을까.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주재 객원논설위원은 한국은 무슨 일이 생기면 ‘집중도가 높은 사회’라고 표현했다. 반년 가까이 수백만 명이 모인 박근혜 탄핵의 촛불혁명이 그렇고, 98년 IMF당시엔 351만 명이 227톤의 금을 모았다. 수백만 명의 자원활동으로 30년 걸릴 생태계복원을 10년만에 가능하게 한 태안의 기름유출 방재활동도 있었다. 위기상황에서의 ‘비상한 집중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보국안민을 내세운 동학혁명부터, 한말 전국적으로 일어난 의병운동, 일제에 저항하며 전 국민이 참여한 3‧1운동, 독재권력에 온몸으로 맞선 4‧19와 5‧18과 6월항쟁과 최근 촛불혁명까지. 위기가 왔을 때 저돌적으로 집중성을 발휘하는 역사적 DNA가 코로나같은 위기상황에도 발휘되어 각별한 집중성과 단결력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이 정부의 개방성‧투명성과 결합되어 코로나19 극복에 발현됐고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놀라운 신화가 만들어졌다.

‘자본’에서 ‘생명’의 사회로 전환돼야

코로나의 정국 속에 지난 4‧15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압승했다. 정부가 잘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도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위기를 더 심각한 위기로 만든 세월호 사태의 박근혜 정부처럼, 바이러스 상황에서 정국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트럼프와 아베 정부를 지금의 우리 정부와 비교해 보면 한 사람의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진정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시스템과 지도자의 어리석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각국에 진단키트를 보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이란과 가난한 14개 국가에 인도적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과거 한국전쟁 때 파병한 국가에 먼저 제공하기로 했다. 진단키트를 가지러 오는 외국 항공기편에 한국교민들을 태워오게 하는 기발한 방식을 선보였고 한국전 참전용사들, 재외거주 교민들, 심지어 해외입양아들까지 찾아서 마스크를 제공하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부의 존재감을 한껏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의 모델이던 선진국의 신화는 깨졌다.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구동성으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에서 이후(AC, After Corona)로 바뀌는 세기적 전환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 전환은 물질과 자본만을 생각해온 인간만의 ‘자본의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과 생명과 생태계가 동시에 건강한 ‘생명의 사회’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한국은 민(民)이 주체로 관(官)이 협력하며 그 전환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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