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공원의 재발견

코로나19는 건강과 경제를 위협하는 당혹스런 재난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소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집 근처 공원이 아닐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공간 가까이에 나무와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작은 공원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집 근처 공원은 불특정 다수의 타 지역 사람들과 섞일 염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밀폐된 공간도 아니라 자연스레 적정한 물리적 거리두기가 이뤄진다. 마스크 챙겨 쓰고, 운동화만 꺼내 신으면 나들이 준비 끝. 답답한 일상을 달래기에 집 근처 공원만한 곳이 없다.

 

세월과 함께 풍성해진 공원의 도시

30여 년 전 1기 신도시로 만들어진 일산은 공원의 도시다. 아래로는 호수공원이, 위로는 경의선 기찻길공원이 일산신도시 아파트 숲을 녹색 샌드위치처럼 감싸고 있다. 그 중앙에는 일산문화공원과 정발산 공원이 있고, 좌우로 마두역과 백마역, 주엽역과 일산역을 잇는 긴 보도를 따라 아기자기한 공원이 이어져 있다. 지도로 보면 커다란 부채꼴 모양의 녹색 선이 일산신도시 공원의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사이사이 거미줄처럼 이어진 보도를 따라가다보면 안골공원, 닥밭공원, 두루미공원, 매봉재공원 등 여러 개의 소박한 공원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기도 하다. 30년 세월이 키워낸 울창한 나무들은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 공원들이 미처 흉내내지 못하는 품격을 풍긴다.

햇살 따뜻한 봄날 오후, 코로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공원 산책에 나섰다. 출발지점은 백마역 앞 백마공원. 부채꼴을 따라 공원 10여 곳을 순서대로 찍고 원위치로 돌아올 예정이다. 마스크를 쓴 이웃들에게 다가가 싱거운 인사를 건네보는 게 일차 목적. 전국의 봄꽃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된 것을 알 리 없는, 무심하게도 화사하게 흐드러진 봄꽃들과의 인사는 덤이다.

요즘 공원에 가 보면 개학이 늦춰지며 또래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이유로 공원 찾는 사람들

마두공원 벤치에서 만난 A어르신(80대)은 공원에 나오는 게 매일의 일과다. 2월 중순부터 아파트단지 노인정도, 가끔 찾던 복지관도 문을 걸어 잠갔다. 갑갑하지만 함부로 멀리 나설 수도 없는 일. A씨 같은 어르신들이 갈 곳은 집 근처 공원이 거의 유일하다. 공원에 나와 익숙한 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정자 아래에서 벌어지는 바둑시합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며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며 “이젠 사람이 많아도 크게 걱정은 안 된다”고 말한다.

강촌공원 잔디밭에서 만난 B씨(50대)는 요즘 반려견 동동이와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파트타임 일거리가 없어져 속상하긴 하지만, 동동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낙으로 마음을 달랜다. C씨와 같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에겐 공원이야말로 없어서는 안될 해방구다. 일산에 들어온 초기만 해도 반려견을 끌고 산책을 하려면 눈총을 많이 받았다는 C씨는 “지금은 서로간에 펫티켓을 잘 지키는 문화가 정착됐다”고 말한다. 공원 잔디밭에는 어느새 반려견을 동반한 이들이 십여 명이나 모여들었다. 이곳처럼 강아지와 견주가 함께 모이는 ‘명소’가 공원마다 따로 있다고 귀띔한다.

주엽공원 체력단련장에서 만난 C씨(60대)는 “주엽공원 운동기구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다시 보니 일반적인 공원 운동기구보다 한층 고급 사양의 체력단련 기구들이 다양하게 구색을 갖췄다. 코로나 사태가 수그러들며 이용자가 많이 늘었다고 말하는 C씨는 “실내 피트니스센터도 다녀봤지만, 울창한 나무그늘 아래서 운동하는 게 더 좋다”며 공원 체력단련 예찬론을 펼친다.

문화공원 놀이터에서 만난 D군(9살)은 친구들과 축구시합이 한창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길어지며, 공원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장 재밌는 건 역시 축구다. 전에는 한 팀에 다섯 명 먹기도 힘들었는데, 요새는 동네 형들과 동생들까지, 열한 명을 꽉 채워서 시합을 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반려견을 기르는 이들에게 공원은 더없이 소중한 해방구다. 반려견을 동반한 이들이 공원에 함께 모여 소통하고 있는 모습.

사소한 시간이 선사하는 깊은 위로

공원은 다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꾸벅꾸벅 조는 벤치 옆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개구쟁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 곁으로 조심스레 굴러가는 유모차가 지나간다. 공원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다. 각각의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공원이 제공하는 유형과 무형의 자원을 공유한다. 벤치는 누구에게나 쉼을 제공하고,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꽃과 나무들은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표현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한다. 은은한 흰 빛깔의 산딸나무꽃, 나뭇가지를 불태우기라도 할 듯 빨간 박태기꽃을 만나는 즐거움을 공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누렸을까.

코로나가 던져 준 불안과 우울을 피해 사람들은 공원으로 도피했다. 뜻밖에도 그곳은 보물창고였다. 인간의 공간 깊숙이 들어온 자연이 있었고, 사소한 시간이 선사하는 여유로움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같은 시절을 견뎌나가고 있는 이웃들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일깨워 준 공원의 재발견이다.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가 갈수록 사양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주엽공원의 체력단련시설은 웬만한 피트니스센터 못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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