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집안의 어린이들이 다 성장하여 제 삶을 살기에 바쁘다. 아침 일찍 밥을 먹더니 바퀴벌레처럼 사라졌다. 큰 아들은 직장에 특근이 있다며 출근하고, 작은 아들은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으로 인터넷 수입이 있다며 들어가 버렸다. 10년 전 같았으면, 오늘은 어디로 놀러가서 뭐하고 놀거냐고 보채던 아이들이 이제 다 커서 알아서 놀고 알아서 산다. 큰 수술을 마치고 1년이 지나도록 아직은 회복기인 아내와 저질 체력 남편인 나만 거실에 앉아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뭐하고 놀지?

몇 달째 수입이 없지만 수중에는 재난수당으로 들어온 얼마간의 돈이 남아있다. 아내가 강화도에 보문사를 가보자고 한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1시간 반 거리다. 코로나19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 콧바람이나 쐬자고 길을 나선다. 보문사는 예전 같았으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석모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석모대교가 연결되어 자동차로 한 코스다. 입구에 도착하니 제법 사람들이 많다. 아직은 서로 마스크를 쓰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가벼워진 옷차림과 발걸음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제야 봄인가?

경사진 곳을 오르니 힘이 곱절은 더 든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나는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춘다. 나이 탓이 아니다. 운동력이 떨어졌구나. 오히려 나와 같이 걷는 아내가 쌩쌩하다. 보문사 안으로 들어서니 형형색색 종이등이 절마당을 장식하고 있다. 다들 소원 하나씩 가지고 와서 정성껏 부처님 전에 빌고 있다. 아내도 나에게 만 원을 달라하더니 대웅전에 들어갔다 나온다. 뭘 빌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충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고 절 밑에 벌어진 좌판대에서 쑥 한 봉지 사고 차에 오른다.

아내는 여기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스페인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작년인가 지인들과 가봤다며 한번 가보자고 한다. 내비로 찍어보니 30분 거리다. 차를 몰아 그곳으로 향한다. 스페인마을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카페, 전시장, 식당, 민박시설, 공연시절, 산책길 등이 있어 작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아내와 바닷길을 걸었다. 걷다가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문득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류 역사에서 우리의 삶은 저 바닷물의 한 바가지나 되려나?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밀려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과 달리, 왜 인간은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개인의 삶이란 한 바가지의 바닷물과 같은 것일지도 몰라.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을 잃었다.

그렇게 두 군데의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많이 막혔다. 오전에 나선 길인데 저녁 무렵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힘들어했다. 회복기인 아내에게 무리한 일정이었나 보다. 의욕만으로 체력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 돌아오는 길에 체력보충용으로 족발집에 들러 족발과 쟁반막국수를 사고, 추어탕집에 들러 추어탕 2인분을 포장주문했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곳은 추어탕집밖에는 없었다. 강화도는 인천시라 사용할 수 없었고, 족발집은 규모가 커서 결제가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대충 먹고 대충 씻고 자리 펴고 누웠다. 추어탕을 사놓았으니 내일 아침식사 준비도 끝난 셈이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한 하루가 다 갔다. 조금은 흥분해서 떠났다가 조금은 지쳐서 돌아온 하루.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신체의 이상을 긍정하고, 찾아오는 아픔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조금씩 욕심을 덜어내고,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받아들이는 일이리라. 가슴 따위가 뛰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나는 별일을 기대하지 않고 별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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