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칼럼 <발랑까진>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

정부는 5월 11일부터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세대주가 수령해야 하는 걸 보며 ‘또 아빠랑 싸우게 되겠구나’ 예감한다”
청소년 동료는 SNS에 이렇게 썼다. 나는 재난지원금이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의 불안이 해결되고, 청소년, 장애인 등 생산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위기에 내몰려 죽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작금의 지원금 정책은 마치 “청소년은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세대주만이 조회하고 수령할 수 있다. 세대주가 세대원의 동의 없이 전액을 수령할 수 있으며, 세대원이 직접 받고 싶다면 오프라인 수령이라는 번거로운 선택지를 거쳐야 한다. 이미 실행 중인 경기재난기본소득과 고양시위기극복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은 직접 돈을 수령할 수 없으며, 법정대리인이 ‘대리신청’을 해야 한다. 법정대리인이 없거나, 이들과 동행할 수 없는 미성년자는 어떻게 하냐고 주민센터에 물어보니, 수령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기 재난기본소득 온라인 신청 공지사항. 만 19세 이상만 신청 가능하다고 써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청소년의 몫을 부모에게 양도해도 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청소년은 언제부터 자신의 몫이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부모가 청소년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청소년의 몫을 가로채도 괜찮은 걸까?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생활을 할 권리가 없다. 부모와 싸웠을 때, 당장 자신의 소비가 끊길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더불어 문화생활 등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소비는 ‘낭비’가 된다.

청소년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 “키워주고 먹여준 값이 얼만데, 네 몫을 주장하냐”는 반박이 따라온다. 양육에 드는 자원이 사회적 자원이 아닌 개인의 돈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때, 청소년은 ‘밥을 축내는 존재’로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청소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또한 보호자가 없는 청소년이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기는 차별을 심화시킨다. 청소년이 집에서 일상을 보내기 시작하자, ‘돌봄’의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긴급돌봄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았으며, 양육자 외의 청소년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은 부재했다. 또한 집밖으로 외출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환경에서, 여성과 청소년이 겪을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청소년의 노동은 대부분 취약하고 열악한 밑바닥 노동이며, 청소년 노동자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다. 나는 재난으로 인해 청소년이 겪는 삶의 위기가 공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몇 만원의 소비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는 청소년들의 현실에 재난지원금은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청소년이야 말로 지금 가장 재난지원금이 필요한 이들 중 하나다.

심지어 교육부는 입시경쟁을 위한 강행군으로 ‘오프라인 등교’ 방침을 내걸었다. 교육부는 결정 과정에서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은 수렴했으나, 등교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학교 현장이 코로나19를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교실 창문 1/3을 열고 에어컨을 쓰자’는 등 감염에 대한 실효성 없는 대비책만이 오갈 뿐이다. 학생들의 반발에, 교육부는 감염확률이 높다고 여겨질 경우 가정학습으로 출석을 인정하는 ‘등교선택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학교 수업을 비롯한 내신이 입시제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위기상황에서도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필자가 청소년기에 동료들과 썼던 학교에 대한 생각들. ‘사람이 있어요’ 등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문구와 그림이 적혀있다. <사진제공=양지혜>

어른들이 청소년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은, 청소년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명의 시민으로, 재난의 당사자로,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한다. 청소년이 안전을 위해 어른들의 통제와 폭력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넘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청소년을 위기로 내모는 것은 어쩌면 재난이 아니라,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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