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의 이웃> 김석민 탐조활동가·교육자

고양시 탐조동호인 ‘모두의 스승’
본인은 “같은 길 가는 동료일 뿐”

고양시, 탐조하기 가장 좋은 도시
새 찾아 전국 돌아다닐 필요 없어

생태적 감성 동반된 탐조활동 강조
“이웃과 소통하며 가치 확산해야”

[고양신문] 고양시는 새를 관찰하는 탐조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는 도시로 손꼽힌다. 정기적으로 새를 보러 다니는 동호인 모임만 해도 3개나 된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새들의 특성과 환경을 살필 줄 아는 생태적 감성도 일정수준 이상을 자랑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바람직한 탐조문화를 일군 셈이다.
고양시가 탐조문화의 선진도시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고양시 탐조 동호인 중 아무나 붙들고 “어떻게 새를 보게 됐나”를 질문하면 “김석민 선생님의 강좌를 듣고부터”라는 동일한 대답이 돌아온다.

 

장성초등학교 교정에서 기자와 만난 김석민 선생님. 고양시 탐조문화를 이끈 '대부'로 불린다.

김석민씨는 장성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초등교사다. 탐조인들 사이에선 탐조의 대부, 새 박사님 등으로 불린다. 김석민 선생님을 만나러 대화동 장성초등학교 2학년 교실을 찾았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워진 등교개학 일정을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긴다. 담임선생님 탁자 뒤편에 도화지에 그린 새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담임했던 아이가 그려준 ‘동고비’ 그림이란다.
“동고비는 제 닉네임입니다. 새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는 동고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요. 제자가 그려 준 동고비 그림이 너무 예뻐서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뿐 아니다. 탁자 위에는 흰 종이로 솜씨 좋게 접은 제비 두 마리도 놓여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의 이름과 아이의 이름이 각각 적혀있다. 역시나 담임하고 있는 아이의 선물이다.
그의 일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들과의 만남, 또는 새들을 매개로 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보였다. 새를 향한 김석민 선생의 열정과 사랑을 듣기에는 두 시간이라는 인터뷰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 큰소쩍새 - 안곡습지와 인접한 고봉산 자락에는 큰소쩍새가 산다. 여름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소쩍새, 솔부엉이와 달리 우리나라에 터 잡고 살아가는 큰소쩍새. 이 아름다운 생명체가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글=김석민>

▲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경력 27년차 초등학교 교사다. 줄곧 고양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장성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집은 하늘마을이다.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조류연구 권위자인 김수일 교수님을 만나면서부터 새에 빠졌다.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새를 보러 다니고, 정보를 찾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즐겁기도 했지만, 한 단계를 넘을 때마다 높은 벽을 실감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 탐조 강의는 어떻게 시작했나.

2012년 가을, 우연히 고양환경운동연합에서 연락이 왔다. 생태강사 양성수업에 새에 대한 교육필요하다며, 기초수준의 강의를 딱 3회만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해 보니 재미가 있어서 이왕이면 제대로 해 보자고 마음먹고 40명 수강생과 함께 강의실과 현장을 오가며 석 달 동안 교육을 지속했다. 굳이 말하자면 이분들이 고양시 탐조강좌 1기가 된 셈이다. 강좌가 종료된 후 수강생들이 그냥 흩어지긴 너무 아쉽다며 ‘새와사람사이’라는 탐조모임을 만들었다.
이후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이어졌다. 두 번째 강좌를 마친 후에는 ‘시민탐조클럽’이, 세 번째 강좌 후에는 ‘고양파주탐조회’가 만들어져 활발히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 검은이마직박구리 - 날이 더워지면 새들은 목이 마르다. 옹달샘이 사라진 도심에 사는 새들에겐 공원의 수도꼭지에서 흘러 나오는 작은 물줄기도 간절하다. 더운 여름, 목말라 하는 새들을 위해 아파트 베란다나 뒷마당에 작은 물그릇을 놓아두는 건 어떨지? <사진·글=김석민>

▲ 지난해부터는 조류행동생태 강좌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대개의 탐조 강의는 새 사진을 보고 어떤 종인지를 구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새의 이름을 맞추는 것은 이름은 새를 알아가는 열쇠에 불과하다. 새의 생태와 행동, 그리고 새가 살아가는 환경을 다루는, 좀 더 체계적이고 호흡이 긴 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강좌가 고양문화원에서 진행한 ‘동고비의 조류행동생태강좌’다. 10여 명이 소박하게 시작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일이 커져 여러 동호회와 환경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함께 공부를 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소통의 재미를 맛보는, 정말 행복했던 수업이었다.


▲ 학술적인 강의를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탐조문화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 조류행동생태에 대해 학계나 전문가들이 시민강좌를 여는 사례가 전무하다. 강의를 기획하는 쪽에서도 흥미 위주의 특강을 요청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래서 내가 직접 커리큘럼을 짜서 원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강좌를 하자고 생각을 바꿨다. 강의비를 받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게 정말 보람 있는 강의라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대화도서관을 빌려 ‘동고비 조류생태강좌, 새들의 감각’이라는 타이틀로 3개월 강의를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과 경기도 전역에서도 강의를 들으러 오셔서 가까운 분들이 기회를 양보해야 했다.
강의를 마칠 때는 운영진이 수강료 대신 기부금을 모아 조류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충남야생동물센터에 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전달할 물품을 가득 싣고 수강생들과 함께 방문했더니, 민간 탐조인들이 정성을 보탠 것은 처음이라며 너무 좋아하셨다. 물론 수강생들도 무척 뿌듯해했다.

▲ 노랑때까치 - 때까치들은 잡은 먹이(주로 곤충, 개구리, 파충류)를 들판 여기저기에 걸어 두었다가 나중에 먹는 것으로 유명한 녀석이다. 들판을 지나다가 작은 나뭇가지에 개구리나 곤충이 꽂혀 있다면 여러분은 때까치의 먹이터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글=김석민>

▲ 강의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공개하고 있다는데.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재가공해 써도 좋다는 조건으로 강의 자료를 수강생들에게 모두 공개한다. 새 공부를 하며 벽을 만나는 이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지식을 독점하고 숨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일반인과 지식을 나누지 못하는 태도가 얼마나 편협한가.
나는 스스로를 같은 고민을 조금 먼저 경험한 동료라고 생각하며 강의를 한다. 같은 대상을 사랑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든든한가.


▲ 가르치는 방식도 탁월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교수법의 눈높이를 낮춘 덕분이다(웃음). 처음에는 무조건 진지하게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럴 필요 없다는 것 깨달았다. 초등학생 교습법을 도입해 게임도 하고, 퀴즈도 내며 다양한 교습법을 도입했더니 다들 재밌게 강의에 참여하더라. 어른이나 아이나, 교육을 받아들이는 본질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 기억에 남는 짜릿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하나를 꼽는 게 불가능하다. 비밀 하나를 새롭게 알았다고 느껴지는 짜릿한 순간이 늘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 삶의 남은 날들 중에서도 그런 순간은 엄청나게 많이 찾아올 게 분명하다.
물론 아마추어에겐 국내 최초로 신종을 발견하는 순간이 꽤 익사이팅한 사건이기는 하다. 나 역시 동해 아야진에서 북극에 사는 솜기러기를 처음 발견해 ‘호사북방오리’라는 이름을 공식 등재하기도 했다.

▲ 솔부엉이 솔이 - 2018년 가을 유리창에 부딪쳐 날개를 다쳤던 솔부엉이 솔이. 동물병원에서 날개를 치료 받고, 며칠 동안 벌레 잡아다 먹이면서 보살폈다. 처음엔 너무 사납게 굴면서 손가락도 많이 물었는데, 차츰 안정을 되찾고 부터는 괜찮아졌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어서 살던 숲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진·글=김석민>

▲ 특별히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새가 있나.

갈매기다. 우리나라 해안에서 가장 흔한 새이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그들만큼 신비하고 복잡한 존재가 없다. 50여 가지 특징들을 조합해야 비로소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세계적으로 종을 규정하기 가장 어려운 새가 갈매기다. 우리나라를 찾는 갈매기 역시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 미스터리 풀어보고 싶어서 꾸준히 관찰을 하고 자료를 뒤적인다. 언젠가는 갈매기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 고양시의 탐조문화를 평가한다면.

2012년부터 3개월 이상의 강좌를 수강한 인원이 260여 명 된다. 대부분 고양에 사는 이웃들이다. 아마도 고양시가 인구 대비 탐조인 숫자가 가장 많지 않을까. 지속성과 전문성, 생태적 감성 수준 역시 최고다.
새를 사랑하게 되면, 보호하려는 고민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새와사람사이는 7년째 고양시의 제비 조사를 꼼꼼하게 하고 있다. 또한 일정 구역의 조류충돌사고 조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 확실한 데이터를 토대로 문제점을 개선하는 게 목표다.
성숙한 탐조 문화는 전국단위 네트워크를 조직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풀뿌리 지역 탐조 단체들이 움직이고, 시민들과 끊임없이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탐조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는다.


▲ 고양시가 탐조를 시작하기 좋은 도시인가.

굉장히 좋은 도시다. 새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 의외로 많다. 우선 물새를 관찰하기 좋은 한강이 있고, 아파트숲 사이마다 자리한 작은 도심공원도 새들의 휴식처다. 집에서 가까운 안곡습지를 몇 년 조사했더니 170여 종이 관찰됐다. 어느 공원이나 100종 이상의 새들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숲에 밀려난 새들이 깃들 곳이 그곳밖에는 없다는 얘기도 된다.
전국 유명한 탐조지를 다니며 희귀한 새들을 만나는 것도 분명 멋진 일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생활 속에서 늘 동네 새들을 만나는  것도 충분히 멋진 일이다. 일상생활 속 탐조를 통해 새를 보는 안목도 높아지고, 새들과 정서적 교감도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 주변 왕릉에서는 무려 250~300종의 새들이 관찰된다. 고양에서 가까운 파주는 우리나라 10대 탐조지 중 하나다. 바다와 하천이 만나고, 주변에 논습지가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적 여건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도 같이 공부하고 같이 활동할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 물총새 - 저 거대한 부리와 앙증맞은 발가락, 날렵한 물고기 사냥꾼인 잠수의 명수 물총새. 새끼를 키워낼 무렵 물고기를 노리고 물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 내리는 이들의 먹이 사냥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진·글=김석민>


▲ 탐조를 처음 시작하려는 이에게 조언을 준다면.

우선 주변에서 열리는 탐조 특강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탐조 단체가 주관하는 오픈 탐조활동에도 참석해보길 권한다.
탐조 장비는 일단 쌍안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새를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쌍안경이다. 쌍안경을 구입할 때는 매장에 직접 가서 본인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수첩도 꼭 가지고 다니자. 새의 모습과 행동, 새를 만난 순간의 상황이나 감상을 짧게라도 적어두면 추억도 쌓이고 노하우도 생긴다.
도감은 그림도감과 사진도감을 함께 구비하면 좋다. 각각의 특징과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둘을 비교하며 공부하면 진도가 훨씬 빨리 나간다.


▲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새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나.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새를 만나는 기쁨을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수업시간에 새 사진을 보여주며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새를 보러 자주 나가기도 한다. 마을숲에서 딱따구리를 보여주면 너무도 좋아한다. 가족들과 함께 참가하는 야간 생태 강좌를 열기도 하고, 동네 공원으로 올빼미나 솔부엉이, 소쩍새를 보러 가기도 한다.


▲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김석민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새와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안에 새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탐조 입문서'를 발간하고 싶다. 어떻게 새를 보는 지, 새를 보기 위해 어떤 준비들이 필요한 지, 새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새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책을 만드는 게 꿈이다.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열심히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
책이 나온 후에는 그 책을 교재 삼아 전국의 탐조 강사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강좌를 열 생각이다. 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와 공존하는 예절과 문화도 함께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 검은가슴물떼새 - 황금빛 반점이 아름다운 검은가슴물떼새. 봄이 되면 동남아시아에서 번식지인 알래스카까지 멀고먼 길을 날아가는 도중에 우리 동네 무논에 들러 기력을 보충하고 간다. 이들의 소중한 쉼터인 논과 갯벌이 점차 줄어드는 걸 지켜보는 건 참 힘들다. <사진·글=김석민>

 

▲ 소쩍새 - 여름밤이 시작되면 뒷산 여기저기에서 ‘솥적다 솥적다’ 울어대던 소쩍새.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보내고 돌아와 우리 동네 여기저기에서 새끼를 키워내는 소쩍새들이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동네 숲과 고목들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사진·글=김석민>

 

▲ 유리딱새 - 유리딱새, 큰유리새, 쇠유리새. 아름다운 푸른 색을 가진 새 이름엔 어김없이 ‘유리’가 붙는다. 옛날 유리가 푸른 빛을 띠었던 때문일 거다. 신비하도록 아름다운 푸른 색을 가진 유리딱새. 올봄에도 동네 공원 여기저기에 유리딱새들이 잔뜩 찾아왔다. <사진·글=김석민>

 

▲ 꿈에 그리던 머나먼 남쪽나라 호주 탐조 - 자주는 못 가지만 아주 가끔씩 낯선 동네의 새들을 만나러 간다. 지구 반대편에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새들이 살고 있을까 늘 궁금하다. 정글에는, 사막에는, 남극에는 어떤 새들이 살고 있을 지도. <사진·글=김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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