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혜 기자의 지구생활안내서> (3) 텀블러·에코백의 역설

환경보호 상징처럼 보급된 텀블러·에코백
유행타듯 무작정 만들면 오히려 ‘반환경적’
한개만, 항상, 오래 쓰기 꼭 실천해야

고양신문 이00 기자의 집에서 찾아낸 텀블러들. 모아보니 꽤 많구나~~!

“당신은 텀블러를 몇 개 가지고 계십니까?”
이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텀블러, 에코백, 장바구니. 환경을 생각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물건이지만 잠시만 생각의 끈을 놓거나 마케팅 도구로 사용되었을 때는 매우 반 환경적인 물품이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자.

뉴요커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한국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 후 커피전문점에 들러 테이크아웃 컵을 하나씩 들고 가볍게 산책하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은 아주 익숙하고 평범한 일이다.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은 옛말이 되었고 수돗물을 끓여먹는 사람들보다는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사먹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7000만개의 일회용컵을 사용한다고 한다.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으로 한잔, 일과시간 중 차 한잔, 사무실에 방문한 손님에게 한잔. 의식적으로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루 3,4개쯤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으면 500원의 보증금을 내던 시절도 있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시행되던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폐지된 이후 사용량이 4배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2022년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부활한다.)

라페스타, 웨스턴돔, 로데오거리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먹다 남은 음료컵으로 몸살을 앓는다. 날씨가 더워지면 빨대 꽂힌 플라스틱 컵, 플라스틱 뚜껑 덮인 코팅된 종이컵 등 다양한 일회용컵이 산처럼 쌓여 지나는 행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렇듯 분리배출하지 않은 일회용컵은 모두 소각 대상이다. 컵 소재가 다양해 분리배출하더라도 재활용되지 않고 대부분 소각된다고 한다.

2018년 즈음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태평양에 플라스틱 섬이 생겨나고, 새들이 먹잇감인줄 알고 먹고 죽기도 하고, 바다 생물들이 플라스틱으로 고통받으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지구 생물에게 해를 입힌다는 반성에서 텀블러 사용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텀블러를 들고 커피를 마시면 ‘나는 지구를 생각해요’라는 선언처럼 비치기도 했다. 개인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 텀블러가 말 그대로 ‘넘쳐나고’ 있다. 유명브랜드 커피전문점은 시즌별 한정상품을 선보여 수집가들이 생겨났고, 미남 배우가 광고하는 한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는 매번 다른 디자인의 텀블러를 함께 포장해서 판매해 텀블러 수집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지금 찬장을 열고 텀블러의 숫자를 세어보시라. 플라스틱, 유리, 스테인리스,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의 텀블러가 식구 숫자의 몇 배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환경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수명 주기 에너지 분석연구소에 따르면, 유리 재질의 텀블러는 최소 15회, 플라스틱 재질은 최소 17회, 세라믹 재질은 최소 39회 이상을 사용해야 일회용 종이컵보다 환경 보호 효과를 낸다고 한다. 텀블러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이 플라스틱 컵보다 13배, 종이컵보다는 24배나 많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사용한다면 최소 1000번은 써야한다고 한다. 어느 세월에 1000번을 쓰나. 일회용 컵이 차라리 나을까? 그렇지 않다. 산수 계산이면 충분하다. 하루에 커피 1잔 물 2잔을 마신다면 하루에 3번, 한달이면 90번, 1년이면 1000번을 쓴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도 생각해볼 문제다. 1리터 생수병 하나 만드는데 석유 100밀리리터와 물 3~4리터가 필요하다. 마시는 물보다 4배나 많은 물을 소비하게 된다. 페트병은 재활용이 되는 소재이지만 사용량이 너무 많아지면서 수거와 재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바다에 버려지는 페트병은 생선 등 수산물의 미세플라스틱 오염이라는 문제로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 하루에 신용카드 하나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하는 것은 건강한 몸을 위한 생존과제다.

생수 사먹지 말고 텀블러 들고 다니며 정수기 물 담아서 마시자. 요즘 웬만한 곳에는 정수기나 생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목마르면 언제든지 텀블러 꺼내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거다. 돈 절약, 자원 절약, 쓰레기 절감. 일석삼조다.

고양신문 유00 기자의 집에서 모은 에코백들. 아마도 구석구석 몇 개가 더 있을 듯...

두 번째로 에코백과 장바구니를 돌아보자.
에코백은 동물 가죽이나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보다는 재사용이 가능하고 튼튼한 캔버스 천 재질의 가방을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가죽 가방에 비하면 가볍고, 사용도 편하고, 환경도 생각하는 착한 실천이다. 그런데 에코백이 패션소품이 되면서 천 소재에 가죽이 덧대어지기도 하고 다양한 그림이 인쇄되면서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은 물건으로 바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행사 기념품으로 가장 흔하게 주는 것이 텀블러, 플라스틱 물병, 에코백, 장바구니 들이다.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에코백을 만드는 데는 비닐봉지를 만드는 에너지의 약 28배, 종이쇼핑백의 약 8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에코백이 일회용 쇼핑백이나 가죽 가방의 대체품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130번, 유기농 면 소재는 2만 번을 사용해야 환경에 기여한다고 한다. 잘 세탁해서 오래 써야만 그 의미가 빛을 발한다.

덴마크 환경식품부는 면 재질의 에코백은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비닐봉지와 비교해 7100번 재사용해야 하고, 유기농 면으로 된 에코백은 2만 번 재사용해야 환경 보호 효과가 있다며 에코백보다 비닐봉지를 최대한 재사용한 후 재활용할 것을 권고할 정도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는 환경의 역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제 환경문제를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생활과 제도를 바꿔야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미래가 있다.

지금 당장 주변을 살펴 텀블러, 에코백, 장바구니가 몇 개나 있는지 파악해보자. 딱 필요한 숫자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과 나누자. 당근마켓에 팔거나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는 행동도 좋겠다. 텀블러는 꼭 필요한 개수만 보유하고, 매일 갖고 다니고, 일 년 이상 사용하고, 재활용이 쉽도록 단일소재를 선택하기, 에코백과 장바구니는 해질 때까지 쓰기. 현명한 지구생활,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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