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 편마암지대 동굴 유적

한반도 최초 편마암지대 동굴 유적 
뗀석기 40점, 빗살무늬토기 100점 출토

경기도 첫 선사유적동굴, 학술가치 높아
“발굴 지속하면 더 많은 유적 나올 것”
고양 땅 역사 지평 넓혀 줄 콘텐츠 기대

선사시대 동굴유적 발굴조사 현장 자문회의 참가자들이 발굴구역을 살펴보고 있다.

[고양신문] 고양시 고양동 대자산 중턱의 일명 ‘호랑이굴’에서 한반도 선사시대의 비밀을 밝혀 줄 중요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구석기시대 유물인 뗀석기와 신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한꺼번에 발견된 것. 경기도 최초의 선사시대 동굴유적인 동시에, 편마암지대 동굴유적으로는 한반도 최초의 발견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보다 정밀한 학술조사를 통해 출토 유물의 성격과 시기가 확정되면 고양 땅 일대의 선사시대 생활상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것은 물론, 역사 교과서에도 기록될만한 가치가 충분한 놀라운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추가 발굴 결과에 따라 일산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고양 가와지볍씨’를 뛰어넘는, 고양시를 대표하는 역사유물·유적 콘텐츠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선사시대 유적이 확인된 발굴벽 토층. <사진제공=고양시>

고양향교에서 10분, 의주로 산길 ‘호랑이굴’

고양동 호랑이굴은 고양동 뒷산인 대자산 북동쪽 사면, 해발 약 168m 지점에 위치한 자연동굴이다. 고양향교에서 의주로 산길을 따라 10분만 걸어 올라가면 다다른다. 고양시는 이 호랑이굴에 선사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부터 굴 입구 바닥 15㎡ 면적을 대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화서문화재연구원이 진행했다.

결과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표에서 70cm 아래의 역사시대 유물층에서는 조선시대의 자기와 도기조각, 기와조각 등이 소량 출토됐고, 땅을 더 파내려가자 깊이 1.3~2.4m 지층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30여 점과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조각 100여 점이 함께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막 동굴 입구의 바닥을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 깊은 곳까지 추가 발굴이 진행되면 훨씬 더 많은 선사시대의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발굴을 시작하기 전 호랑이굴의 모습 <사진제공=고양시>

 조선시대 고양의 옛길인 의주로가 지나는 고양동 호랑이굴은 예부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한국전쟁 후 미군들의 흔적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지닌 스토리텔링 포인트다. 여기에 선사시대의 풍부한 역사까지 더해지면 구석시기대와 신석기시대, 그리고 조선시대와 근대, 현대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인류의 발자취를 한 장소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고양시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적 명소로 조명될 가능성이 높다.    

고양동 호랑이굴에서 출토된 뗀석기들. 전문가들은 "구석기 유물인지 신석기 유물인지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뗀석기, 빗살무늬토기 뒤섞여 출토 

10일 고양시는 고양동 호랑이굴 발굴조사 현장 자문회의를 열어 성과를 공개했다. 고양시 관련부서 공무원과 발굴조사를 담당한 화서문화재연구원, 고양시의원,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구석기·신석기 유적이 공개됐고, 발굴현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진행됐다.

구석기 유물에 해당하는 뗀석기는 30여 점이 출토됐는데, 석영이나 강가의 자갈을 채집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쓰임새별로 구분하면 망치돌, 격지, 밀개, 긁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신석기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조각은 100여 점이 나왔는데, 대부분 몸체 부분이다. 토기 표면에는 단사선문, 어골문 들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와 함께 편마암 재질의 신석기시대 농경도구인 굴지구(땅을 파는 도구)도 한 점이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고양동 호랑이굴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조각.

 전문가들은 이번 발굴의 가장 큰 의의로 인류의 흔적이 발견된 한반도 최초의 편마암지대 자연동굴이라는 점을 꼽는다. 국내의 선사시대 동굴유적은 제천 점말동굴, 청원 두루봉동구르 정선 매둔동굴 등이 있는데, 모두 석회암지대에 분포하는 동굴들이라 편마암지대 동굴인 호랑이굴의 차별성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경기도 곳곳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이 강가나 평야지대에 분포하는 것과 달리, 야산 중턱의 자연동굴에서 선사시대 인류의 흔적이 발견된 경우 역시 고양동 호랑이굴이 처음이다.


구석기 유적일까 신석기 유적일까

구석기 유물(뗀석기)과 신석기 유물(빗살무늬토기)이 하나의 지층에서 뒤섞여 발견된 특이한 상황에 대한 해석은 아직 분분하다. 조태섭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뗀석기는 구석기시대 유물이지만, 신석기시대에도 뗀석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 호랑이동굴이 구석기 유적일 가능성과 신석기 유적일 가능성을 함께 열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추가 발굴을 진행한다면 분명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기대감을 표했다.

겨레문화유산연구원 김영준 실장 역시 “현재로는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뗀석기로 보인다”고 추측하면서도 “연차적 연구를 통해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유적이 되리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고 평가했다.  
발굴조사 용역을 진행한 화서문화재연구원 송용식 책임조사원은 “천장에서 무너져 내린 낙반석을 들어내고 바닥 지반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한다면 더 많은 유물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굴 입구 바닥을 발굴한 모습.

도내동 석기제작소 잇는 뜻깊은 발견

이번 호랑이굴 유적 발견은 2017년 겨울, 구석기시대 유물 8000점이 한꺼번에 출토된 도내동 석기제작소 발견에서 비롯된 성과이기도 하다. 도내동 발견 이후 고양시는 선사유적의 추가 발굴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추정해 행주산성 하단 굴과 고양동 호랑이굴의 발굴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행주산성 굴은 근대에 만들어진 인공굴로 판명됐지만, 고양동 호랑이굴에서는 예상이 보기 좋게 적중하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고양동 호랑이굴은 고양동 뒷산인 대자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고양향교와 중남미문화원이 있고, 아래로는 고양윤창아파트다.

고양 땅 역사 중심지 ‘고양동’ 재조명   

호랑이굴이 자리한 위치도 주목할만하다. 고양동은 조선시대 한양 북쪽의 가장 중요한 교통로였던 의주로가 지나고, 고양 관아가 자리했던 곳으로 고양시 역사의 뿌리와 같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고양향교, 고양 벽제관지, 수백살 먹은 은행나무 보호수 등 역사·문화적 자산이 풍부하다.

호랑이굴의 역사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정동일 고양시 문화제전문위원은 “한국전쟁 이후에 미군들이 이 굴을 군사목적으로 사용하며 남긴 낙서가 벽면에 선명히 남아있고, 김신조 침투사건 이후에는 무장공비 은신처를 없앤다는 목적으로 동굴 입구를 폐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양시 김수현 학예사는 “향후 고양동 호랑이굴과 인접한 벽제관지, 고양향교 등을 함께 묶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김수현 학예사가 발굴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장기적인 발굴 및 성과 활용방안 마련해야

이번 발굴로 답보상태에 놓여있는 고양시역사박물관 추진사업에 다시 시동이 걸릴까도 관심거리다. 고양시에 역사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은 수년전부터 활발한 논의가 전개됐었지만, 박물관의 규모와 성격, 중심 콘텐츠, 부지선정 등에 합의를 이루지 못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는 상태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향후 고양동 호랑이굴에서 가치 있는 유물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와도 이를 수용·전시할 박물관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조태섭 교수는 “동굴 유적 발굴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한편에서는 발굴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역사자료와 교육 콘텐츠로 활용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양동 호랑이굴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조태섭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발굴 조사구역을 위에서 본 모습. <사진제공=고양시>
10일 고양동 호랑이굴 현장에서 진행된 학술자문회의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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