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김용철 사진전 ‘37년 전, 이산의 추억’

1983년 고등학생이었던 김용철 작가
카메라 들고 달려간 ‘이산가족찾기’ 현장
24장 흑백사진이 전하는 생생한 감동

“가족을 찾다찾다 지치신 걸까. 수많은 사연과 이름들에 에워싸여 있다. 이 많은 이름 중에 할아버지의 가족은 없는 걸까. 할아버지의 힘든 모습에서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김용철 작가)

[고양신문] 1983년 여름, 대한민국의 눈과 귀가 한 방송국에서 진행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으로 쏠렸다. 막연히 사진작가를 꿈꾸던 한 고등학생도 여의도의 방송국 주변을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하룻동안 흑백필름에 담아낸 사진들은 37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 생생한 느낌으로 37년 전 여름 어느날의 감동을 전한다.

19일부터 서울 중구 필동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리는 김용철 작가의 사진전 제목은 ‘고등학생 눈으로 본 37년 전, 이산의 추억’이다. 전시장을 찾으면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김용철 작가가 목격한, 이산가족들의 절절한 표정들이 담긴 사진 24점을 만날 수 있다. 김용철 작가는 지난해 고양문화원에서 진행한 ‘고양의 경의선 이야기’ 사진전을 통해 80~90년대 경의선 철길과 기차, 그리고 사람들의 향수 어린 풍경들을 선보인 바 있다.

할아버지를 찾아달라는 종이를 앞뒤로 두른 꼬마 아이, 벽에도 바닥에도 빈틈없이 붙은 벽보 사이에서 지친 듯 팔을 괴고 쭈그려 앉은 어르신, 더 높은 곳에 벽보를 붙이기 위해 아빠의 어깨에 올라 탄 소년…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담긴 사연들이 하나같이 소설책 두어 권은 되고도 남을 것만 같다.

“KBS 본관 주변은 온통 가족을 찾는 사연들이 넘쳐난다.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이렇게 인간 사다리로 붙이고 있다. 너무나 많아 눈이 어지러울 정도고 사연 하나하나가 눈물겹다.” (김용철 작가)

김용철 작가는 “텔레비전에서 애타게 가족을 찾던 장면들이 뇌리에 남아 잠이 오지 않았다.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필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었다”며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처음 시청한 37년 전 어느 밤을 회고했다.

“막상 현장에 가 보니 먹먹한 뭔가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왔고, 너무 많은 사연들이 널려 있어 눈이 어지러웠습니다.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한 채 한참을 배회했는데, 한 노인이 지쳤는지 쪽잠을 자고 있었어요. 노인의 주름 깊은 손에는 자식의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구요. 고등학생이었던 내겐 너무 무거운 풍경들이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불쑥 나타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처음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방송에 꼭 좀 나오게 해 달라는 아저씨의 물음에 소년 김용철은 미안해하며 “이건 방송 카메라가 아니고, 나는 그냥 학생”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저씨는 오히려 “괜찮다. 많이 찍어달라. 누군가에겐 정말 중요한 사진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단다.
“그 말에 용기가 생겨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봐도 어리숙한 학생으로 보였을 텐데, 그 아저씨는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과 희망으로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 같았습니다.”

이후 소년 김용철은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가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단다.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내 손은 떨렸고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고등학생이 뭘 알고 찍었을까요. 나는 그저 필름 레버를 돌리고, 노출과 초점을 잘 맞추고, 흔들림에 주의하라는 설명서에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37년 전 찍은 이산가족 사진 전시를 여는 김용철 사진작가.

하지만 어린 소년의 눈에도 애절함과 간절함, 뜨거운 혈육애와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는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가족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찍으면서, 한 지붕 아래서 식구끼리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가슴 깊이 느낀 하루였다”고 그날을 되새겼다.

37년이 흐른 지금, 이 사진들은 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술적으로 보면 사진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엉성한 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접시 물보다 얕은 실력과 극도로 빈약한 작업량이지요. 그렇지만 내 사진 인생의 첫 결과물이라 그런지 깊은 애착이 갑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꽃피다의 2020년 기획전 ‘가족’ 시리즈의 다섯 번째 순서를 장식하는 전시다. 앞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인 엄상빈 작가를 비롯해 오인숙, 유순영, 김종현 작가가 김용철 작가에 앞서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꽃피다의 김유리 큐레이터는 “시리즈를 통해 아들, 시어머니, 쌍둥이, 이산가족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가족사진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용철 사진전
‘고등학생 눈으로 본 37년 전, 이산의 추억’
- 6월 19일(금) ~ 7월 2일(목)
갤러리 꽃피다 (서울 중구 필동2가 109-3)
문의 : 070-4035-3344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