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높빛시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상만아. 네 나이가 올해 50은 됐지?”
“아니요.”
“그럼… 40이냐?”
“…… 아닌데요.”
“그럼… 너 몇 살이냐?”

1999년 12월 말경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약칭 유가협) 사무실인 한울삶에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런 질문을 제게 던진 분은 다름 아닌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님이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 위치한 한울삶은 한옥집을 개조하여 방 하나는 사무공간으로, 나머지 방 2개는 터서 전국 각지에서 오시는 민주 열사의 부모님 숙식을 해결하는 살림집 기능도 했습니다. 그때 이소선 어머니가 베개를 베고 누워 앉아있는 저를 보며 이런 질문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당시 유가협 회장이셨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아버님도 앉아 계셨지요. 저는 갑작스러운 이소선 어머니의 나이 질문에 약간 당황하여 연신 ‘아니오’만 답하다가 베시시 웃으며 말씀드렸습니다.

“저 올해...,.. 30살인데요.”

어머니는 베개를 베고 누워 계시다가 제 답에 적이 놀라 고개를 살짝 드셨습니다. 그렇게 잠시 제 얼굴을 바라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야. 나는 너 하두 오래 얼굴 봐서 한 50은 됐는 줄 알았다.”

그리곤 기막혀 하시면 웃으셨지요. 그 일이 어느덧 지금으로부터 만 21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제 나이가 만 50살이 되니, 그때의 작은 에피소드가 제일 먼저 생각난 이유입니다. 한편 이날 제가 그 한울삶에 가게 된 이유, 그리고 그날 이소선 어머니와 박정기 아버지를 뵌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날 두 분은 제게 어떤 제안을 하시기 위해 오라고 부르신 겁니다. 다름 아닌 유가협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라는 제안이셨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고 있던 인권단체를 어떤 사정으로 정리한 후 백수로 있다 하니, 과거 유가협 간사로 일한 경험도 있어 국장으로 괜찮겠다 여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송구하게도 제가 그 제안을 고사했습니다. 두 분은 왜 그러냐며 거듭 제게 국장으로 올 것을 청했지만 사실 제가 생각한 일도 따로 있고 또 유가협 국장으로 일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겁도 좀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이소선 어머니가 제게 주신 그 말씀. 그 이야기를 저는 오늘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상만아. 너 감옥 갔다 왔지?”
“네.”
“너 감옥 그때 왜 갔냐?”
“네?”
“너 그때 감옥 간 게, 너 가고 싶어서 간 거냐?”
“…… 아니죠.”
“그럼 왜 갔냐?”
“… 그 놈들이 잡아가니까 갔죠.”

어머니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하여 그냥 생각나는 대로 툭 던진 답에 어머니가 순간 ‘빵’ 터졌지요. 그러면서 다시 진지하게.

“아냐. 그게 아니라 네가 그때 그 시절에 감옥을 간 건 시대가 너를 불러서 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아들 태일이가 그때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도, 그리고 태일이 데모하는 거 그렇게 싫어했던 내가 다시 태일이 뒤를 이어 이렇게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것도 다 역사가 나를 불러내서 그리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해. 그러니 너도 역사가 시키는 대로 여기로 와서 일해. 알았어?”

2020년 6월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전태일 열사의 모친이신 이소선 어머니에게 민주화 운동 공적을 심의하여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날 정말 많은 감회가 들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공적으로 한 대한민국 최초의 훈장 수여였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만 21년 전, 제가 이소선 어머니와 나눴던 이 일화가 새삼스레 떠오른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자신의 유서 말미에 이렇게 썼습니다.

‘……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아들 전태일이 ‘다 못 굴린 그 덩이를’ 어머니 이소선님이 굴리셨습니다. 그런 공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훈장을 수여한 날, 다시 어머니의 말씀을 저는 새깁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부름에 따라 나선 것’.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가 살아야겠다지요, ‘역사의 부름에 따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난 2011년 아들 곁으로 떠난 고 이소선 어머니. 다시 한 번 어머니의 훈장 수여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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