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김민애 기획편집자

[고양신문] 주엽동에 자주 가는 식당이 있다. 점심메뉴도 맛있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부쳐낸 파전을 시원한 막걸리와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닭볶음탕이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양념 맛도 일품이지만, 주 식재료인 닭이 일반 치킨가게에서 쓰는 것보다 큰 중닭이다. 닭고기 자체의 맛이 살아 있다고 해야 할까. 시골 마당에서 풀어 놓고 키운 토종닭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적당하게 살이 오른 살코기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닭요리 전문점도 아닌데 말이다.

꽤 오래전부터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주장하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는 것.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치킨(프라이드든 양념이든)을 맛보고 깜짝 놀랄 맛이라고 호평을 하는데, 그는 왜 이런 논란의 주장을 할까? 그것은 바로 닭 본연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영계(1.5㎏ 정도) 상태에서 출하해 버리기 때문이란다. 더 키우면 맛이 좋아지는 걸 다 알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30일 이내에 출하한다. 좁은 우리에서 키우는 만큼 폐사율도 높아지고 사료비용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 돼지와 달리 닭은 무게가 아니라 마리당 판매가 되므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무게를 높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염지를 해서 기름에 튀겨 버리기 때문에 닭 본연의 맛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어쩌면 영계가 더 부드럽고 맛있다는 속설도 이런 자본주의 속성에서 나온 마케팅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한승태 작가가 잠입 취재하여 쓴 『고기로 태어나서』에는 닭의 산란과 부화, 육계 농장의 현실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쓸모없는 수평아리들은 산 채로 갈려서 폐기가 되고, 비좁은 육계 농장에서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소비자들은 이런 환경을 전혀 모른 채 깨끗하게 가공된 닭고기와 달걀을 마트에서 구입한다.

동네 치킨 가게 사장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제공하는 닭고기가 이런 환경에서 사육되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리라. 소자본으로 자영업을 시작한 사장들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장사를 한다는 게 무리겠지. 한 마리라도 더 팔아서 부자가 되기를 꿈꾸리라. 그런데 그 꿈은 과연 현실적일까?

보통 마트에서 500g에 4000원 정도 하는 영계를 1만6000원에서 2만원에 판매하니 엄청난 마진이 남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염지 처리한 닭은 마트용 닭보다 비싸고, 거기에 각종 식재료, 포장재, 마케팅 비용까지 더해져, 치킨 한 마리를 팔아 봤자 치킨 가게 사장한테 남는 이문은 2000원도 채 안 된다. 거기에 요즘은 배달앱 광고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별도의 배달비용도 추가되어 소비자의 콜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매년 오르는 최저시급 때문에 배달사원이나 직원을 쓴다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 작가는 감히 단언한다. 자영업자는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고용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좀 더 정확히 쓰자면 ‘비고용 노동자’라고. 어쩌면 ‘안정되게 고용당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고용당하지 못해서 가난한 자영업자로, 그것도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묶인 말뿐인 사장인 것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고, 그럼에도 계속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작년인가, 그렇게 힙하다는 을지로에 간 적이 있다. 한 골목 전체가 ‘만선호프’라는 이름의 치맥 거리였다. 1000원짜리 노가리와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프라이드치킨, 얼음 생맥주가 주 메뉴였다. 가게 이름이 모두 ‘만선호프’였던 것도 신기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골목에 놓인 간이테이블에 앉아 똑같은 메뉴를 먹는 것도 진기한 풍경이었다. 한번쯤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 인파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축제도 아니고 매일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메뉴를 먹는 풍경이 기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 골목 사장들은 프랜차이즈의 횡포에 묶이지 않는 진짜 사장들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 위에는 또 다른 계층이 있겠지. 바로 신보다 높다는 건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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