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기간 종료 앞두고 지속 여부 불투명

고양시, 연말 재계약 불가 방침 밝혀
낮은 이용률, 차량 노후화… “비용 대비 효율성 낮아”

이동도서관, 이용자 설문조사 등 반박자료 제시
“현장 목소리 반영 않은 결정... 재고 요청”

[고양신문] 18년 동안 도서관이 없는 지역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던 고양시이동도서관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고양시는 25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동도서관 운영 지속이 한계점에 달했다’고 밝혔다. 올해 말 위탁사업기간 종료를 앞두고 사실상 사업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2002년 개관한 고양시이동도서관은 2011년부터 3년 주기로 고양시새마을회가 민간위탁 계약을 연장해왔다. 8명의 직원을 거느린 고양시이동도서관은 책버스 2대와 책놀터(트랜스포머 차량) 1대가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운영예산은 약 4억 6000만원이다. 그동안 고양시이동도서관은 규모와 사업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활동적인 이동도서관으로 손꼽혀왔다.

시가 계약 만료기간을 6개월이나 앞둔 시점에서 이례적으로 폐지 방침을 밝힌 것은 고양시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이동도서관 존폐 논란을 일찌감치 교통정리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동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는 일산서구도서관센터 최경숙 과장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불가피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동도서관 문제가 사실상 폐지로 가닥이 잡혔음을 밝혔다.

이동도서관 측도 사활을 건 대응에 나섰다. 이동도서관 남대현 부장은 시민 의견수렴 결과와 순회지역 분석자료 등을 제시하며 “이동도서관을 필요로 하는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18년을 이어온 고양시 이동도서관을 하루아침에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재고해 달라”고 말했다.

이동도서관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 어르신들.

고양시 “예산 대비 효율성 떨어져”
이동도서관 “소외지역 여전히 존재”

고양시가 제시한 이동도서관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 인프라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이용률 저하다. 이동도서관 사업이 첫발을 뗀 2002년에는 고양시에 도서관이 3곳밖에 없었지만, 2020년 현재 고양시 도서관 숫자는 총41개(시립도서관 17, 공립작은도서관 18, 스마트도서관 6)에 이른다. 도서관 인프라 증가는 자연스레 이동도서관 이용자 정체를 불러왔다. 도서관센터 측은 “지난해 이동도서관 책버스 2대를 합친 하루 평균 이용자수는 130명에 불과했고, 순회지역 57개소 중 이용자가 20명 이하인 지역이 82%에 달했다”고 밝혔다. 투자예산 대비 효율성 면에서 재계약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수치라는 설명이다.

운영차량의 노후화도 재계약에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현재 이동도서관이 보유한 2대의 책버스는 각각 2007년식과 2010년식 노후 경유차량이라 사업 연장을 위해서는 대당 2억 5000만원이 투입되는 신차 구입 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도서관센터 관계자는 “이러한 판단 근거는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도출한 객관적 결과”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도서관측의 주장은 다르다. 이동도서관의 존재 목적 자체가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것인데, 이용자 숫자만을 가지고 효율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남대현 부장은 “이달 초 16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대면조사와 SNS를 병행해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동도서관 이용자들은 여전히 이동도서관을 가장 편리하고 대체 불가한 서비스로 판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외지역을 직접 찾아가 독서 체험과 교육, 문화공연 등을 제공하는 것은 이동도서관만이 감당할 수 있는 차별화된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동도서관 측의 주장에 대해 도서관센터 역시 반론을 내놓았다. 최경숙 과장은 “도서관센터 자체적으로도 독서인프라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고 군부대나 어린이집, 아파트단지 등에 일정기간 책을 단체 대출해주는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서비스를 보다 활성화한다면 이동도서관의 역할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최초의 트랜스포머 체험형도서관으로 주목을 받은 '책놀터'.

시 “인프라·상황 변화 수용해야”
이동도서관 “입장 설명할 기회 달라”

시가 이동도서관 폐지를 사실상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합리적인 출구전략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 문화계 인사는 “고양시 이동도서관이 걸어온 발자취는 고양시 문화계의 또 하나의 자부심이었다”면서 “규모를 줄여서라도 활동기간을 3년 더 연장해 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직원들의 고용 승계 방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고양시 이동도서관은 전국 최초로 트랜스포머 책놀터를 운영하는 것에서 보듯 이동도서관의 트렌드를 앞장서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남대현 부장은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도 고양시 이동도서관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왔고, 이동도서관 관련 논문과 한국도서관학회가 발행한 책자에도 고양시 이동도서관이 모범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동도서관의 영역 축소가 시대변화에 따른 대세라 하더라도 8명의 직원이 헌신하며 나름의 성과를 쌓아온 조직을 아무런 논의조차 없이 없앤다는 것은 바람직한 문화 행정이 아닐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도서관센터 측은 “고양시 이동도서관이 소기의 성과를 축적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고양시와 같은 규모와 인프라를 갖춘 도시에서 이동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못박았다. 이어 “지난해만 해도 수도권에서 부천시와 오산시, 광명시 이동도서관이 폐관했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의 고용승계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상황이긴 하지만, 위탁이 종료되는 기관의 고용을 승계할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양시 이동도서관 허경희 관장은 “이동도서관 존립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제를 종이에 적힌 수치만 가지고 분석한 외부 기관의 연구용역을 근거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최종 결정에 앞서 이동도서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마련해주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다. 여전히 이동도서관을 필요로 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시가 귀를 기울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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