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양신문] 20세기 중반, 중국 내전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은 마오쩌뚱은 식량증산을 위해 대약진운동을 벌였다. 농촌을 시찰하던 어느 날, 참새가 곡식 낟알을 쪼아 먹는 모습을 본 그는 대대적인 참새 박멸을 명령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새 소탕작전에 나선 결과, 대륙 전역에서 1년에 2억 마리가 넘는 참새를 잡아 없앴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천적인 참새가 없어진 들에는 해충들이 크게 번식해 곡식을 갉아먹는 바람에 유래 없는 흉작을 맞아야 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중국 정부는 외국에서 많은 참새를 수입해 풀어놓았으나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고, 결국 마오쩌뚱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천적 참새가 있어 해충이 기승을 부리지 못하는 격일까. 지구촌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요즘, 작년까지만 해도 크게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바이러스가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인간 활동을 짓누르고 있지만, 지구의 대기는 오히려 맑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이는 거다. 덕분에 뿌옇게 뒤덮던 미세먼지로부터 해방된 하늘은 연일 쾌청한 모습이다. 미세먼지를 피해 썼던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없다는 건 여전히 문제긴 하다. 발달된 산업과 파괴된 환경을 부모로 태어난 형제이면서도 바이러스와 미세먼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

며칠 전, 정부는 6월까지 초미세먼지 농도가 15㎍/㎥ 이하로 대기가 좋은 날은 과거 3년 평균이 28일인데 비해 올해는 49일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또 38㎍/㎥ 이상으로 나쁜 날은 과거 3년 평균 40일 대비 올해는 15일로 크게 줄었고, 51㎍/㎥ 고농도인 날도 과거에는 12일이었지만 올해는 단 하루밖에 없었다. 같은 기간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도 과거 3년 평균인 28㎍/㎥에서 21㎍/㎥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와 같은 대기환경 개선에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등 정부시책과 잦은 강우와 동풍 등 기상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무엇보다 바이러스 사태의 여파로 사회경제적 위축된 결과가 지배적이라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항공우주국 위성데이터를 분석한 핀란드의 한 연구센터는 올해 바이러스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2월 한 달간 중국에서 화석연료 소비로 발생하는 대기 중 이산화질소가 급격히 감소했고, 산업 활동은 최대 4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즉 석탄 소비는 최근 4년간 최저치를 기록했고 석유 소비도 3분의 1 이상 줄어, 이 기간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2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중국의 대기 질 개선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유럽우주국도 이탈리아 북부 이산화질소 농도가 상당 수준 감소했고, 이런 현상은 영국, 스페인, 독일에서도 나타났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된 지 반년이 조금 지난 지금, 감염자는 1천만 명을 훌쩍 넘었고 50만 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직접적인 피해 이외에도 바이러스 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활동의 위축에 따른 피해가 만만치 않다. 일부 비접촉, 비대면 업종은 반사이익을 보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일자리와 매출 감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최악의 경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1.5% 이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바이러스에 밀려 후퇴한 미세먼지 감소에 따른 효과도 보고되고 있다. 홍콩의 한 연구팀은 중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오존으로 인해 무려 110만 명이 매년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한편, 예일대 연구팀은 중국의 이번 바이러스 확산억제를 위한 격리기간 중 이산화질소와 초미세먼지 농도 감소로 1만2000명의 조기 사망자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한 바 있는데, 이는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중국 내 사망자 수의 3배가 넘는 규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 바이러스는 산업발전으로 파괴된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 보편적 견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류의 활동이 위축되니 일시적이나마 미세먼지 농도가 줄고 대기환경이 개선되었다. 바이러스가 물러간 후 다시 인류의 활동이 정상화되면 미세먼지 발생은 더 증가하고 환경은 더 파괴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다시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가 태어나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바이러스가 물러난 이후에 대한 고민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형제의 다툼’에서 우린 새로운 미래사회 모습과 가능성을 보았다. 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밀려난 미세먼지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동생 바이러스들의 탄생도 막을 수 있다. 천적이 사라지니 해충이 들끓는다 해서 다시 참새를 풀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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