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진관사와 진관계곡

북한산이 병풍처럼 감싼 ‘마음의 정원’
작은 웅덩이와 폭포 이어진 시원한 계곡
은평한옥마을, 마실길공원 산책은 덤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 등이 둘러싸고 있는 진관사 본전 마당.

 

[고양신문] 진관사는 북한산 자락이 품고 있는 사찰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사찰 중 한 곳이다. 북한산 과 마을이 만나는 맨 아랫자락에 사찰이 있기 때문이다. 주소는 서울 은평구에 속하지만 고양시 효자동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진관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접근성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키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진관사계곡, 거기에 유서 깊은 역사의 숨결까지 배어있어 소소하고 차분한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진관사 입구 은평 한옥마을에서의 기품 있는 골목산책, 북한산 마실길 공원에서의 휴식도 빼놓을 수 없는 보너스다.

 

사찰로 오르는 세 가지 길

지축역에서 북한산 방향으로 차를 몰아 은평뉴타운을 지나 입곡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삼천사 삼거리와 진관사 삼거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북한산의 장엄하고도 유연한 실루엣을 병풍처럼 두른 은평 한옥마을을 지나면 진관사 입구다. 진관사 입구에 서울시가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비워둔 공터가 개방돼 있어 주차 여건은 넉넉하다.

차를 세워두고 진관사로 향한다. 커다란 돌로 만든 표지석, 시원하게 허리룰 굽힌 장송, ‘삼각산 진관사’라는 현판이 걸린 문이 차례로 나타난다. 짧은 길이지만 여러 차례 환영을 받는 기분이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해탈문.

‘해탈문’이라고 불리는 일주문을 지나 사찰까지 올라가는 길은 세 가지다. 하나는 차가 다니는 큰 길, 또 하나는 너른 판돌이 깔린 도보로, 마지막 하나는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데크길이다. 적당한 경사도와 아름다운 경관을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길로 올라가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소나무 사이로 덩굴을 올린 능소화가 화사한 꽃망울을 달고 있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소박한 아미타불 앞을 지나는 불자들은 반듯한 자세로 합장을 한다.

사찰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마애 아미타불.

종교를 넘어선 쉼과 채움

진관사의 도량 배치는 무척 친절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초입에는 내방객을 맞는 찻집인 연지원을 비롯해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사찰 사무를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좀 더 올라가 누각 형태의 대문인 홍제루를 통과하면 비로소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과 만난다. 그런가 하면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함월당과 길상원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건너에 자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세속과 이어지는 공간, 종교 본래의 공간, 그리고 마음을 수양하는 공간이 자연스러운 구분 속에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1000년 역사를 품은 진관사는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혔다. 고려시대부터 국가적 사찰로 숭앙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사들과 학승들을 진관사로 보내 한글창제를 연구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근에는 일제시대의 항일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2009년 칠성각 복원을 위해 해체작업을 벌이던 중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숨겨둔 태극기(일명 ‘진관사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이 발견돼 진관사가 불교계 독립운동의 중심사찰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전통찻집 안마당의 노천카페.

오늘날 진관사는 종교를 초월해 번잡하고 어수선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채움을 건네는 ‘마음의 정원’을 지향하고 있다. 전통차를 음미할 수 있는 초가지붕 찻집, 팥빙수와 단팥죽을 즐길 수 있는 목조 테라스, 깔끔하게 다듬어진 대웅전 앞 잔디뜰, 마당 한 켠 돌절구 수조에서 피어난 소담스런 연꽃…. 눈길 닿는 모든 풍경들이 정갈하고 평화롭다.
 

시원한 계곡과 아기자기한 한옥마을

진관사에 들러놓고 북한산에 인사를 안 하고 갈 수는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까운 봉우리 한 곳쯤 올라도 좋겠다. 진관사 뒤편으로 응봉이 감싸고 있고, 왼쪽으로 의상봉과 용출봉이 기운차게 솟아 있다. 오른쪽은 향로봉과 비봉 방향이다. 등산이 부담스럽다면 진관사계곡을 끼고 조금만 올라가도 아름다운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바위틈을 흐르며 작은 소와 폭포를 반복하는 물줄기가 몸과 마음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날이 가물어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장마 소식이 올라오고 있으니 머잖아 우렁차게 굽이치는 경관을 연출하리라.

맑은 계류가 흐르는 진관사계곡.

진관사 아래는 은평 한옥마을이다. 북한산 파노라마를 배경 삼아 공들여 잘 지은 현대식 한옥들이 수십 채 모여있는 풍경이 친근하면서도 이채롭다. 골목골목 미술관과 전시장도 자리하고 있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휴관한 곳이 많다. 마을 중심도로에 하나 둘 들어서고 있는 카페들은 하나같이 한옥의 운치와 멋을 최대한 활용했다. 마을 중간에는 수령이 지긋한 느티나무 몇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고, 맹꽁이가 서식한다는 작은 습지에는 탐방데크가 설치돼 있다.

은평한옥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북한산의 웅장한 위용.

마실길 소공원 ‘피서 파라다이스’

진관사 하루여행의 마무리 코스로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소공원을 추천한다. 진관사계곡이 국립공원관리권역을 벗어나는 이곳에서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 바로 옆에는 돗자리를 펴기에 안성맞춤인 은행나무숲과 느티나무가 있다. 어른들은 나무그늘이, 아이들은 발목까지 차는 계곡물이 각각 파라다이스다. 다만 휴일에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는 곳이라 호젓한 휴식을 기대하긴 힘들 듯. 평일에 느긋한 나들이를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 사실은 이게 대부분의 일상인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미션이기는 하다.

키다리 은행나무 아래 그늘이 시원한 마실길 소공원 은행나무숲.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키 큰 소나무숲.
본전의 대문 역할을 하는 홍제루.
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책 데크.
은평한옥마을에선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편의점도 한옥건물이다.
마실길 소공원 은행나무숲 뒤편의 계곡.
진관사에 은거하며 독립운동을 펼친 백초월 스님을 기리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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