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용의 호수공원 통신>

김윤용 『호수공원 나무 산책』 저자

[고양신문] 면 소재지 12학급 시골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출근하는 김 선생. 6학년 담임을 맡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먼저 안 아이는 보선이입니다. 보선이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위해 들꽃을 꺾어와 꽃병에 꽂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꽃이 시들 때쯤 바뀌는 각종 들꽃들. 지각이 잦은 보선이, 생활기록부에는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김 선생은 아이들이 꽃이름을 물으면 “하얀꽃, 노란꽃…” 하며 얼버무리고 맙니다. 들꽃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거지요. 선생으로서 미안하고 창피했던지 식물도감을 사서 아이들과 함께 들꽃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들꽃 이름을 불러줍니다.

어느 날 보선이는 보통 때보다 학교에 아주 늦게 나타납니다. 장심부름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 선생은 보선이를 심하게 나무랍니다. 김 선생은, 보선이를 보낸 뒤 보선이가 가지고 다니던 손전등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깜짝 놀란 김 선생은 그 이유가 알고 싶어 가정방문에 나섭니다. 김 선생은 나중에 가겠다며 함께 가자는 보선이를 먼저 보냅니다. 보선이네 집 가는 산길엔 예쁜 들꽃들이 지천입니다. 하지만 한참을 가도 보선이네 집은 나오지 않습니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길은 여러 갈래여서 두렵기도 합니다. 달빛을 따라 걸어 김 선생이 보선이네 집에 어렵사리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다섯 집이 사는 마을에 학교가 개교한 뒤 30년 동안 이 마을을 방문한 교사는 김 선생이 처음입니다. 보선이네 집에서 소박하게 차린 정성스런 음식을 먹고 잠자리에 듭니다. 하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합니다.

겨울이 와 눈이 내리고 계속 결석하는 보선이는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3월이 오면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김 선생은 보선이 선물로 『안네의 일기』를 준비했지만 줄 수 없어 옆반 교사에게 맡기고 맙니다. 보선이가 늦가을에 꺾어와 걸어놓은 노박덩굴은 노란 빛깔 열매 그대로 교사 책상 뒤에 걸려 있습니다.

노박덩굴 열매는 가을에 노란 열매껍질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빨간 씨앗이 드러나 눈에 확 띈다. <사진=김윤용>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며 보선이라는 이름은 같은 이름 실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1997년 마흔여섯 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임길택 선생이 겪은 보선이와의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노박덩굴을 볼 때면 떠오르는 사람과 책입니다. 임길택 선생이 글을 쓰고, 김동성 화가가 그린 『들꽃아이』란 글그림책입니다.

저도 김(임) 선생처럼 나무와 풀, 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있구나’ ‘꽃이 아주 특별하게 생겼네’ 하며 스쳐지나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산책길에 자주 꽃과 나무를 만나다보니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나무와 꽃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나를 찾아온 거지요. 나무 덕택에 식물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식물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에 행복합니다.

호수공원 나무 강의를 할 때, 노박덩굴 앞에서 ‘들꽃아이’ 얘기를 했더니 참석하신 분들이 호기심을 갖고 듣더군요. 물레방아가 있는 아랫말산 앞쪽 산책로 옆 호숫가에 조성한 자연녹지입니다. 노박덩굴과 좀작살나무 등이 어우러져 나무를 비교하여 관찰하기 좋은 장소였습니다. 얼마 전 살펴보니 자연녹지 옆에서 엉켜 자라던 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습니다. 화장실전시관 옆 호숫가에 바짝 붙어 자라던 용버들도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그루터기만 남았습니다. 호수공원에 한 그루밖에 없었는데요.

노박덩굴 꽃. 노박덩굴과 나무에는 화살나무, 참빗살나무, 사철나무 등이 있다. <사진=김윤용>

 

호수공원 노박덩굴 열매. 항상 관찰하던 곳이 지금은 사라졌다. <사진=김윤용>

 

호수공원 2017년 8월 풍경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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