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봉사활동 못 채우면 돈으로 지불

미국에 살며 남의 나라, 남의 문화에 빌붙어 살고 있구나하는 기분이 들 때 가장 우울해집니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피해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워보겠다고 무작정 불법 입국하는 분들이나 가족이 떨어져 살면서 까지 아이들을 이 먼 땅까지 유학 보내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답답하고 쉬 개선되지 않는 한국교육 여건이 안타깝습니다.

미국 생활 일년간 늘 떠나지 않은 생각 중 하나가 미국이란 크고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나라가 어떻게 해서 최강국이 되었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년간 살며 이 나라를 지켜보니 과연 그럴 수 있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때 많았습니다. (물론 한편으론 상식이하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요) 그 중 하나가 학교였습니다. 지난 일년간 아이들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선생님을 도와 수업에 필요한 교재를 복사해주거나 교구를 준비해 주거나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곳 학교는 학부모의 참여가 학교운영을 좌우한다 할 만큼 학부모들의 도움이 많습니다. 학부모와 교사로 구성된 학교운영회도 그렇고 매달 한번씩 열리는 교사와 학부모 만남인 PTA에서도 학부모 출석률을 꼭 적는데 학부모 출석이 많으면 정부에서 학교에 지원금을 더 주기 때문이랍니다. 그 만큼 학부모의 관심이 많은 학교는 재정도 많아져 학교가 좋아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립 학교인 경우는 비싼 교육비를 내고도 학부모봉사활동을 40시간 이상 의무 사항으로 정해두고 만일 못하게 되면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되 있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조직적인지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무수한 행사들에 각기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예를 들면 5월에 있을 학교축제를 위해 학부모축제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7개월 전부터 준비작업을 합니다.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어떤 게임 부스를 만들 것인지 음식 판매는 누가 할 것인지 만일 한국학부모들이 한국음식을 팔겠다면 6개월 전에 어떤 음식을 팔 거며 봉사할 인원은 몇 명이 될 거라는 보고를 해야합니다.

큼직한 것들이 정해지면 2, 3개월 전에 전 학부모들에게 축제 당일 날 어떤 부스에서 몇 시간 봉사 할 것인지 자원봉사 신청에 대한 공문을 돌립니다. 행사에 대한 공문을 워낙 미리 보내 준비하므로 달력에 두 세 달 후의 일들을 미리 표시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예요. 작년 축제 때는 갓난아기를 안고도 게임 부스에서 뜨거운 햇볕아래 2시간 이상 봉사하는 엄마도 있었어요. 여기 있어보니 한국엄마들처럼 편히 지내는 사람들이 없구나 싶더군요.

아이들이 알아서 걸어 학교 가고 알아서 학원 가고 엄마들 일이란 취미 활동하고 쇼핑하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일이 다인 엄마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여기 엄마들은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줘야하고 마치는 시간엔 데리러 가야하고 학교 활동에 참여해야하고 아이들 과외활동에 따라 다녀야하고 직장 갔다와서도 저녁엔 아이들 운동경기마다 쫓아다니며 응원해줘야 하고 숙제에 꼭 사인해줘야 하고….

대학까지 나온 우수한 인재들인 한국엄마들이 얼마나 쓸모 없이 시간을 보내는 지만 봐도 우리는 감히 학교 교육에 대해 교육 당국만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구나하는걸 여기서 느꼈습니다. 학부모들이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곰곰이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교육이 남보다 나서기 보단 조용히 있는 사람이 더 겸손하다 여겨지고 대우받도록 교육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교육은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할 줄 알고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줄 아는 리더십이 강한 사람이 대우받도록 교육합니다. 교실에서도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는 선생님의 관심에서도 벗어나거나 제대로 학과를 이해하지 못해 말이 없는 걸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 입학에도 이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는지를 크게 봅니다. 이런 점은 우리도 서서히 배워가야 하는 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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