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문화자존 키운 ‘아줌마 타잔’

정글북은 책 한 권 고르러 서울까지 나가야 하는 고양시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문화 교육계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주식회사다. 48명의 주주가 의기투합해 만들어 낸 자본금은 15억8천만원. 책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온 가족이 함께 부담 없이 책 읽고 갈 수 있는 열린 책방을 우리 마을에도 하나 만드는 게
꿈이었다. 치밀한 수익계산보다는 정당하고 바른 욕구라는 열정 하나로 밀어 부쳤다.
그러나 문을 연지 1년도 채 못되어서 IMF가 터졌고 정글북 주거래 은행이 퇴출되면서 12억
8천만 이란 거금을 날리는 위기가 닥쳤다. 당시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던 김재건 사장은 자
금을 지원할 수 있는 외곽으로 빠지고 그저 평범한 주부였던 아내 윤선영씨에게 무거운 짐
을 넘긴다.
아마도 윤선영씨 만이 정글북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이었던 건 아닐까. 윤선영씨는 처음
1년 동안 실장직을 맡아 업무를 익힌 후 99년 사장으로 취임해 기대했던 것처럼 정글북을
살려냈다.
집밖에 몰랐던 평범한 아줌마 윤선영씨는 정글북 때문에 갑자기 바뀐 인생을 기꺼이 받아
안으며 저돌적인 사업가로 변신했고 그의 변화가 곧 정글북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불황의
늪에서 기업을 살려낸 ‘정글북의 타잔’ 윤선영 사장은 철저한 아줌마 기질이 정글북을 살
리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정글북이 문을 열자마자 IMF가 닥쳐 부도위기까지 겪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셨는지
정글북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정말 아무생각 없었어요. 고양에서 제대로 된 서점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꿈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정글북을 무너지도록 할 순 없다는 생각뿐이
었지요. 뜻이 바르면 아무것도 잴 게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가 오히려 지치지 않는 힘
이 되었던 것 같아요.
당시 대주주들을 모아 정글북이 살아야하는 이유들을 되새겼고 아낌없는 출자가 이어졌어
요. 적자는 말할 수 없이 심각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투자를 했답니다.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
면 아무리 안 팔리는 책이라도 그 날로 주문을 했어요. 고객이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서점인데 굶어죽더라도 책은 구해야 한다는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고객들이
먼저 정글북을 찾아 주더군요. 서울까지 나가던 고객들이 정글북으로 하나 둘씩 발길을 옮
기면서 운영도 점점 나아졌죠. 결국 지역주민들이 정글북을 살려 준거라고 봐요

정글북 사장이 된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월급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늘 환
원을 꿈꾼다. 2001년 정글북이 첫 흑자를 기록했을 때 윤 사장은 서점 한 곳을 뚝 떼어 문
화 갤러리를 만들었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림 전시회도 하고 연주회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정글북 운영을 맡은 지 얼마 안 돼 1차 부도가 났어요. 금액이 크진 않았지만 저는 부
도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처지여서 막막하기만 했답니다. 3년 동안 모은 적금 2,000
만원과 적립식 보험 2,000만원을 해약해 정글북으로 넣는 날 눈물이 나더군요. 돈이 아깝다
기 보다 서러웠어요. 부자가 망하면 3년은 간다는데 3년 동안 모은 돈 모두 없어지고 나니
남은 건 정글북 하나뿐이었어요. 정글북은 우리 가족의 생명이자 48명 주주 모두의 귀한 재
산이라고 생각하니 발동이 걸렸습니다. 사장은 다름 아닌 보다 큰 의미의 가족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을 헤쳐나가는 사람이니 어떻게 보면 주부라서 할 수 있는 일 같기도 합니
다. 주부는 가족의 일이라면 무댑보로 밀어 부치잖아요.

정글북을 처음 맡았을 땐 거의 울면서 다니다시피 했다는 윤 사장은 그 일이 아주 먼 일처
럼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영업은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왕초보였지만 수 백 개
출판사와 총판을 상대하며 숨가뿐 날들을 보냈다. 한 달에 한번 책값을 지불하는 날이면 아
예 며칠 전부터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고 은행 문이 달토록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도 윤 사장은 거래처로부터 차츰차츰 신뢰를 쌓아 정글북 이라면 믿고 밀어주는 출판사들이
늘어났다. 이는 정글북이 어려운 고비 고비마다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대형 서점들도 속속 문을 닫고 있는 불황 속에서 지역 서점인 정글북이 탄탄하게 성
장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서점은 지식을 유통하는 특별한 사업입니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살아야 좋은 책이 나오
고 서점도 살 수 있어요. 정글북은 아무리 적자를 보았더라도 책값은 정해진 날짜에 완불해
야 했습니다. 물론 은행 신세를 톡톡히 지고있죠. 신용이 기본이라는 원칙을 고수하지 못했
다면 아마 중간에 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서점은 신용만 지키면 잘 망할 수도 없는 곳이라
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 사장은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 않았다. 누가 사장인지 모를 정도로 분주한 우철균
부장을 비롯해 경력 20년의 방인환 차장, 경력 12년의 유광석 과장이 그들이다. 실속 없는
일 많이 한다고 구박받는 건 오히려 사장이다. 정글북의 책 한 권이 자신의 전 자산인 냥
귀하게 여기는 이들 직원들과의 의기투합이 정글북이 지역에서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는 힘
이다. 정글북에 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곳에는 없는 공간이 특별히 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에도 없는 갤러리에서 그림도 볼
수 있고 영풍문고에도 없는 아담한 독서공간에서 공짜로 책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특별히
나만을 위한 책을 서슴없이 구해주는 사람들. 이 책이 몇 권 팔릴지 보다는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윤 사장의 철학은 정글북 성공의 디딤돌이자 기업의 존
재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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