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낳아 서울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는 ‘서울’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아마도 서울이라는 곳에는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서울에서, 그것도 서울의 한 복판이라고 하는 종로구에서 태어나 꼭 3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줄곧 종로구에 있는 학교만 다녔기 때문에 16년 동안 등하교 길에 차를 타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서울’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부모님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고양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 종로구에서 30년을 살고 난 1970년, 살던 집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때였다. 이사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서울에서 제대로 된 집 한 칸 장만하기가 어려웠다.
이모저모 궁리도 해 보고 여기저기 둘러보기도 한 끝에 선택한 곳이 당시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이었다. 지금은 서울시에 편입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경기도였기 때문에 나는 30년의 서울시민에서 하루아침에 경기도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이재(理財)에 밝은 주변 사람들은 그때도 ‘전망 좋은 남쪽으로, 강남으로’ 이사할 것을 거의 강권하다시피 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살 집을 알아보려 몇 차례 가 본 일도 있지만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몇 가지 까닭이 있기는 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풍광이나 이런 저런 삶의 조건들이 남쪽보다 북쪽에 더 마음이 쏠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쪽이 싫었던 것은 매일매일 강을 건너다녀야 한다는 점이었다(웃기는 이야기겠지만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그때의 생각을 ‘선견지명’이라고 스스로 대견해 했으니!).
구파발이 서울로 편입되는 바람에 다시 서울시민이 되고 말았는데, 그 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고양과 인접한 서울 은평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는 고양 쪽에 정착하겠다는 의지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마음속으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나는 ‘고양 사람’이었던 셈이다.
내가 진짜 고양 사람이 된 것은 일산에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였다. 그 무렵 처음 입주했을 때 일산 일대는 아직 황량했었다. 신도시 건설 초기에야 어디든 마찬가지였겠지만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편한 것도 많아 이 곳이 얼마나 더 지나야 사람 사는 곳 구실을 하려나 적이 걱정되기도 했었다. 더구나 그 무렵 어떤 얼빠진 인사가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일산 신도시가 방패의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한동안 기분이 나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일산은 신도시로서의 면모를 다져갔고, 쾌적하고 안락한 삶의 공간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호수공원은 일산의 자랑이라 할만 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호수공원 맞은편에 작은 오피스텔을 마련해 집필실로 쓰고 있다. 창밖에 내다보이는 호수공원의 전경은 언제나 마음을 밝게 하고 맑게 한다. 우리나라의 어느 곳엘 가도 고양, 일산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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