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을 제2 고향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농촌지도사로 농
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도 했고, 시골의 대종가집 맏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
다. 어렵기만 했던 그런 기억들은 이제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다. 내가 고양에 살면
서 얻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은 30년 전 한국 서예계의 거목 여초 김응현 선생님은 만난 것이
다. 젊은 시절에 여초선생님으로부터 전통 서도와 서법을 배운 것이나 월당 홍진표 선생님
과 권우 홍찬유 선생님에게서 한문을 수학한 것은 내게는 무엇보다 뜻 깊은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백로라는 의미로 나에게 노천(鷺天)이란 호를 지어주신 분은 월당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호를 지어주시면서 “나는 하늘을 나는 백로의 마음을 아직 모르는데 노천이 깨닫
게 되면 내게도 지어달라” 는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인격까지 투영해 내는 글을 쓰며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위해 나름대로 애를
써왔다. 덕분에 좋은 벗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더불어 밤새도록 흥겹고 의미있는 이야기
를 나눌 수 있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또 하나 내게 복이라 여겨지는 일이 바로 고양에 살게 된 일이다. 남편과 함께 알게 됐다는
것이 첫 의미였다면 그 이후 바로 고양이 내게 베풀어준 많은 것들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
한다.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많은 벗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 날을 보냈던 고양군은 이제 시로 발전하여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빽빽한
아파트 숲과 인공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공원의 세계 꽃박람회, 국제 경기를 볼 수 있
는 대운동장, 국제 무역회관 등…. 자연정취가 물씬했던 전원 모습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현
대화 물결이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 모른다.
머지않아 덕양구와 일산구에는 국제적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의 공간이 문을 열 예정라고 한
다. 문화계의 한사람으로서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연출가 이상
만’ 이란 멘트로 귀에 익은 바로 그 이상만 선생님께서 세계적 수준의 문화공연의 개관을
기획하고 계시다니 반갑기만 하다.
나는 감사하게도 얼마 전 이상만 선생님의 부탁으로 고양 문화재단의 로고를 갑골문자(甲骨
文字)로 만들게 됐다. 갑골자로 고양을 계속 생각하다보니 고양시가 고심하고 있다는 고양
시 로고에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고양의 높을 고(高)자의 갑골문자 모양을 생각하니 많
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겠다 싶어 내 나름대로 그것을 형상화했다.
내가 생각해 낸 고양시 로고는 태양이 하늘로 떠오르는 희망의 도시를 상징한 것이다. 생동
하고 문화가 살아있는 고양시를 그려내고자 많은 고심을 했다. 높이 솟는 태양, 그 안에 뜨
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도시 고양. 나는 아직 ‘하늘을 나는 백로’ 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지만 고양의 높은 뜻과 함께 크게 한번 날아올라 그 품안에 안겨보고 싶다.
조갑녀(여류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