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고양시민이 그렇듯이 나는 고양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농학도로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다가 농촌지도소장인 남편을 만나 시집온 곳이 바로 고양이다. 34년간 고양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어느덧 육십을 내다보는 노인네로 변했다, 그러나 고양은 세월이 흐를 수록 새로운 청년의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고양을 제2 고향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농촌지도사로 농
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기도 했고, 시골의 대종가집 맏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
다. 어렵기만 했던 그런 기억들은 이제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다. 내가 고양에 살면
서 얻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은 30년 전 한국 서예계의 거목 여초 김응현 선생님은 만난 것이
다. 젊은 시절에 여초선생님으로부터 전통 서도와 서법을 배운 것이나 월당 홍진표 선생님
과 권우 홍찬유 선생님에게서 한문을 수학한 것은 내게는 무엇보다 뜻 깊은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백로라는 의미로 나에게 노천(鷺天)이란 호를 지어주신 분은 월당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호를 지어주시면서 “나는 하늘을 나는 백로의 마음을 아직 모르는데 노천이 깨닫
게 되면 내게도 지어달라” 는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인격까지 투영해 내는 글을 쓰며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위해 나름대로 애를
써왔다. 덕분에 좋은 벗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더불어 밤새도록 흥겹고 의미있는 이야기
를 나눌 수 있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또 하나 내게 복이라 여겨지는 일이 바로 고양에 살게 된 일이다. 남편과 함께 알게 됐다는
것이 첫 의미였다면 그 이후 바로 고양이 내게 베풀어준 많은 것들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
한다.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많은 벗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젊은 날을 보냈던 고양군은 이제 시로 발전하여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빽빽한
아파트 숲과 인공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공원의 세계 꽃박람회, 국제 경기를 볼 수 있
는 대운동장, 국제 무역회관 등…. 자연정취가 물씬했던 전원 모습이 사라진 건 아쉽지만 현
대화 물결이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 모른다.
머지않아 덕양구와 일산구에는 국제적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의 공간이 문을 열 예정라고 한
다. 문화계의 한사람으로서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라디오나 TV에서 종종 ‘연출가 이상
만’ 이란 멘트로 귀에 익은 바로 그 이상만 선생님께서 세계적 수준의 문화공연의 개관을
기획하고 계시다니 반갑기만 하다.
나는 감사하게도 얼마 전 이상만 선생님의 부탁으로 고양 문화재단의 로고를 갑골문자(甲骨
文字)로 만들게 됐다. 갑골자로 고양을 계속 생각하다보니 고양시가 고심하고 있다는 고양
시 로고에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고양의 높을 고(高)자의 갑골문자 모양을 생각하니 많
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겠다 싶어 내 나름대로 그것을 형상화했다.
내가 생각해 낸 고양시 로고는 태양이 하늘로 떠오르는 희망의 도시를 상징한 것이다. 생동
하고 문화가 살아있는 고양시를 그려내고자 많은 고심을 했다. 높이 솟는 태양, 그 안에 뜨
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도시 고양. 나는 아직 ‘하늘을 나는 백로’ 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지만 고양의 높은 뜻과 함께 크게 한번 날아올라 그 품안에 안겨보고 싶다.
조갑녀(여류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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