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대손까지 선생님 하지 말자” 친지 분통

김형석(41) 교사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은평구 청구성심병원 장례식장. 지하층에 있는 장례식장 입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검은 정장의 조문객들이었다. 지하 1층에 들어서니 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김 교사의 분향소는 조화가 유난스레 많이 진열돼 쉽게 눈에 들어온다. 조문객보다 조화가
더 많은 것도 특징이다. 화환마다 ‘나 왔다 갔노라’고 생색을 내듯이 한 알만한 이들의
이름이 큼직하게 쓰여 있다.
어린 두 딸과 빈소를 지키는 부인 김미자씨(41)는 몹시 초췌한 모습이다. "남편은 학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분 이었어요. 학교 일이라면 밤이든 주말이든 나갔었는데…" 라며 슬
픔을 가누지 못했다. 김 교사는 부인과 중학생 현진(16.여), 초등학생 우진(13.여)과 경민(9.
남), 막둥이 경준(3.남) 등 2남 2녀를 두고 유명을 달리 했다.
영정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바구니가 궁금했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쓴 편지’라는 것이
사촌동생 김영걸씨(29)의 설명이다. 그 하나를 꺼내보니 김정일이라는 학생이 쓴 가슴 아픈
사연이 쓰여 있다.
"선생님과 마주쳐 어디가시냐고 물었을 때 ‘니가 알아서 뭐하게’라고 농담을 하신 것이
엊그제였는데…. 저희들의 투정을 받기가 지겨워지셨나요. 수학 열심히 해서 성적 올리는 모
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미망인에 따르면 고인은 하루 14시간 가까이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0교
시 보충수업’에 잠을 설치고 저녁엔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 지도에 매달려 교재연구
나 학생 상담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것. 부인의 말을 뒷받침이나 하듯 옆에 있던 한 친척이
한탄 섞인 큰 소리를 냈다.
"우리 집안은 이제부터 누구도 5대까지 선생님 하 지마! 하고 싶으면 체육이나 음악·미술
선생만 해. 수학선생으로 보충수업 하다가 다시 이런 꼴 당하지 말고"
가시 돋힌 그의 말은 정부의 사교육대책을 꼬집는 것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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