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정들면 타향도 좋더라 친구도 사귈 탓이라….” 사전에 기록된 고향이란 말의 뜻은‘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고 했다. 아마도 고향을 떠난 사람이 눈을 감고 되뇌어 생각하면 가슴에 젖어드는 그리움의 산과 들이요 흐르는 개울 물, 그리고 얼굴 얼굴이 아스라이 망막에 비치는 곳이다.
한 마디로 고향은 정이 담겨있는 곳이요 마음이 젖어 있는 곳이라 하겠다. 그러면, 현재 고양시에 사는 87만 여의 시민 가운데, 고양 이 곳이 고향이 되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1992년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되기 전의 인구는 9만 이내였으니, 아마도 80만 이상의 시민이 타향살이를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고양시는 각 지방으로부터 여러 분야의 문화권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곳이기에 이곳 사람들은 제 각기 자기 방어의식 속에 자기 나름의 주장을 펴면서 살고 있다. 그런 탓으로 사람들의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같은 땅에 살고 있으니, 생활문화에 대한 사유를 함께 한다면 너와 내가 화목하고 평화로운 향토사회를 만들 것이다. 또한 향토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생각으로 살아가노라면, 고양시에 살게 된 것에 기쁨을 얻고 제2 고향처럼 느끼는 향토애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문화원장으로가 아니라 한 토박이 고양시민으로서 고양시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다 알다시피 서울 근교에 자리 잡은 고양시는 왕조시대부터 역사의 숨결이 짙게 배인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곳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문화재와 향토유적이 많아 국가지정 문화재만 12건이 있고, 도지정 문화재 22건, 시 지정 향토유적 38을 비롯하여 아직도 발굴이 안 되거나 문화재로 지정이 안된 문화 유적들이 많다.
고양은 나에게 유년기와 성장기의 추억이 서린 것이다. 지금의 주엽동 근처였던 오마리에 살던 소년시절부터 고양시의 명소라면 안 가 본 데가 없다. 행주산성과 권역의 행주서원, 은영장군 묘, 서오릉, 서삼릉, 공양왕릉, 그리고 북한산의 태고사와 주위의 사적지는 학창시절의 단골 소풍 코스였다.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조선 영조 때의 전설을 안고 있는 흥국사와 고려 때 귀주대첩의 명장 박서와 함흥차사였던 박순 선생의 제향을 모시는 용강서원도 여기에 포함된다.
말이 나온 김에 전설의 사적지와 유물을 몇 개 더 든다면 박태성 효자 정려비와 묘와 임진란 때의 전설적 인물 밥 할머니상, 연산군의 학정을 말하는 금표비, 고려의 충신 최영장군 묘, 그리고 고양향교와 벽제관지를 빼 놓을 수 없다. 이밖에 현대사의 자취가 담긴 유적지로는 6.25전쟁 때 군번 없는 군인으로 싸우다 산화한 태극단의 묘와 이역의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영령들의 무공을 기리는 필리핀 참전비가 있다.
내가 사는 땅의 숨결을 한 곳이라도 알뜰히 알아보고 찾아보며 선조들의 얼이배인 뜻을 음미하다 보면 정감을 느끼게 되고 정서가 서리지 않겠는가?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산속의 새는 뜰의 새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다른 곳에 관광을 하려하고 문화유적을 찾고 배우려 한다. 내가 사는 곳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고 향토사를 연구하며 찾을 때, 향토애가 생겨나고 고향으로 느낌이 생겨나리니,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오수길 고양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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