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혜 기자의 공감공간] 파주 교하 ‘쩜오책방’

독서동아리서 만나 마을로 활동공간 확장
세심한 큐레이션 & 다채로운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 만들어 온라인으로도 ‘소통’

[고양신문] 동네책방이 운영난으로 하나둘 사라지는 요즘, 파주시 교하에 마을사람들이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재미난 동네책방이 있다는 소문이다. 파주시 꽃아마길 35, 길 이름마저 예쁜 주소를 찾아 도착한 곳은 주택가에 위치한 모퉁이 상가 건물 1층. 햇살 가득 품은 ‘쩜오책방’이다.

동네 사람 다섯이 모여 책방을 시작하며 ‘1이 못 되는 0.5’ 이웃의 힘을 모아 나머지를 채우자는 의미를 담아 쩜오(0.5)라 이름지었단다. 지금은 조합원 15명의 협동조합으로 책방을 운영한다. 순번을 정해 책방지기를 맡아 인건비를 줄였다. 어쩌다 이들은 전망 없다는(?) 동네책방을 열게 되었을까?

동네책방의 출발점은 교하도서관이었다. 2008년 교하도서관의 개관은 교하지구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활화산처럼 분출시켰다. 문화강좌를 들었던 사람들은 독서동아리를 만들고 활동장소를 도서관에서 마을로 확장시켰다.

크고 작은 모임과 회의가 열리는 책방
크고 작은 모임과 회의가 열리는 책방

쩜오책방의 대표를 맡은 이정은 씨는 “2015년 몇몇이 모여 책방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이야기하고, 이웃들에게 권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때를 기억한다.

각자 활동분야는 달랐지만 “마을에 모여서 구현해보자, 해보고 싶은 것 팍팍 밀어주자”라는 취지에 공감했다. 처음에는 5명이 이 골목 커피숍에 숍인숍 형태로 소박하게 책방 문을 열었다. 그러다 2018년, 조합원 15명의 협동조합으로 발전했고 2019년 11월에는 급기야 세들어 살던 커피숍에서 독립해 자신들만의 책방을 갖게 됐다. 사실 이 장소는 땅콩책방, 행복한책방 파주점을 거쳐  쩜오책방이 된, 그래서 어쩌면 책방이어야만 하는, 책방 ‘터’였는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마을잡지 ‘디어교하’ 대표 김지하 씨. 쩜오책방 대표 이정은 씨. 청년모임 활동하는 이채영 씨.
왼쪽부터. 마을잡지 ‘디어교하’ 대표 김지하 씨. 쩜오책방 대표 이정은 씨. 청년모임 활동하는 이채영 씨.

쩜오책방에는 세심히 선정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심사숙고해서 정했을 표지들이 얼굴을 내놓고 주인을 기다린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여행족을 위한 국내여행 책자도 있고, 인권, 환경, 사회, 과학 등 분야별로 손길가는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사서출신 조합원이 중심이 된 6명의 큐레이션 팀이 선정한 책들이다. 동네 작은출판사의 책들, 독자들이 맛있게 읽을 책들을 잘 골라 담은 뷔페 식당같다고 할까. 살짝 정신줄 놓으면 마구잡이식 충동구매하기 딱 좋은 큐레이션이다.

쩜오책방에서는 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쓰기, 그림책읽기, 일본어 책읽기, 독서모임, 북토크, 공연, 청년모임 등 마을사람들이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현실이 된다. 이정은 대표는 “조합원들이 절대로 안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거는 다 해본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방송국으로 변신한 소모임방
온라인 방송국으로 변신한 소모임방

책방 한켠 작은 방은 소모임용이지만 지금은 온라인방송국이 됐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온라인으로 뭔가를 해보자고 ‘작당’하던 중이라 오프라인으로 했을 일들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에 쩜오책방 채널을 개설해 작가 인터뷰, 인문학 강좌 등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파주의 이웃 고양에서 취재 온다는 소식에 조합원 몇분이 책방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동네잡지 ‘디어 교하’ 대표인 김지하 씨, 쩜오책방 유튜브에서 챠미짱으로 활동하는 한국생활 5년차 일본인 나카미 유리에 씨, 20대 초반 청년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는 대학생 이채영 씨. 이들은 쩜오책방이 ‘비빌 언덕’이자 타향에서 아기 키우는 외국인에게는 친정언니들이며, 동네친구를 사귀게 해준 연결고리였다고 말한다.

어린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열된 어린이책들
어린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열된 어린이책들

이 대표는 “쩜오책방이 이 마을을 대표하거나 마을의 아지트는 아니다. 그저 각자가 구현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공간”이라며 교하의 다양한 단체들이 유닛처럼 연계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책방은 교하지구에 있지만 파주 전역에서, 그리고 일산에서도 찾아오는 열린 문화공간이다. 마을에서 재미나게 지내고 싶거나 문화활동을 주체적으로 해보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은데 잘 고르지 못하겠거나 사람사는 냄새가 그리울 때 찾아가면 참 좋을 공간이다.

쩜오책방
• 주소 : 파주시 꽃아마길 35(문발동)
• 문 여는 시간 : 화~토요일 오후 1시 ~ 7시(※코로나로 단축운영 중)
• 전화 : 031-942-3255

책을 읽고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직접 보내기도 한다. 작가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읽고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직접 보내기도 한다. 작가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발묶인 사람들을 위한 국내여행서
코로나로 발묶인 사람들을 위한 국내여행서
책방 입구 왼쪽에 보기 좋게 진열된 책들. 6인의 큐레이터가 엄선한 책들이다.
책방 입구 왼쪽에 보기 좋게 진열된 책들. 6인의 큐레이터가 엄선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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