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현 다함봉사단장 - 14년째 봉사, 의료진·일반인 등 100여명 참여

올해 해외로 나가지 못해 답답한 사람들이 참 많다. 여기 다른 이유로 해외 못 나가 답답한 사람이 있다. 다함봉사단 박승현 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또 갈까 싶던 길, 27번 다녀왔어요 
평범한 약사였던 박승현 단장이 해외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7년. 그해 4월 고양시는 자매결연을 맺은 몽골 만달고비지역에 파견할 의료봉사단을 구성했다.
“약사가 한 명 필요하다고 해서 그럼 한번 가볼까 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가겠다고 했어요.” 박승현 ‘단원’은 약국 문을 닫고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버스로 12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언제 이 길을 또 와보겠냐는 생각에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담았어요. 그때는 몰랐지요. 제가 그 길을 27번 다녀오게 될 줄을.”

인터뷰 내내 늘 밝은 모습을 보인 박승현 단장. 
인터뷰 내내 늘 밝은 모습을 보인 박승현 단장. 

이렇다할 취미도 없이 평탄한 약사의 삶을 살던 그에게 의료봉사는 큰 자극이 됐다. 이후 해마다 의료봉사길에 다시 올랐다. 그러나 고양시 의료봉사단은 2011년까지 5년간 진행되고 끝이 났다. 봉사단원들은 이대로 해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의기투합해 다함봉사단을 창단했다. ‘같이다함’이라는 의미의 다함봉사단은 의료진, 일반인 등 100명 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마다 방글라데시, 필리핀, 베트남, 몽골의 오지마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
“막상 발대식을 하고 보니 의료봉사단 활동이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봉사와 약국 운영을 병행할 수는 없겠다는 판단에 약국을 닫았죠.” 그는 봉사를 시작하고 오히려 더 신바람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2011년 문을 열 때부터 봉사단 문 닫는 그날까지 사무실 운영비는 내가 대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임대료를 자비로 해결하고 나니 사무실 운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상근직원 없이 필요한 곳마다 직접 뛰어다니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도 없다. 회계업무가 필요하면 그 분야에 능통한 회원이 해결해주고, 뭐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팔 걷어붙이고 달려와 주는 회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승현 단장의 두 손. 그는 다함봉사단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박승현 단장의 두 손. 그는 다함봉사단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묘한 중독성 있는 봉사
“2007년에 함께 봉사 갔던 의사 한 분은 지금도 함께 봉사하세요. 우리는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어요.”
의료진들도 최소 3년 이상 꾸준히 함께 하고, 봉사자들도 평균 7번은 다녀온 베테랑들이라 의료봉사 현장에 나가면 환상의 콤비플레이를 선보인다. 해외의료봉사는 약이나 의료물품은 후원을 받지만 모든 경비는 참가자 본인부담이다. 그래도 단원들은 기꺼이 병원문을 닫고, 휴가를 내고, 자기 돈을 내서 그 길에 동참한다. 
해외봉사는 최소한 7박8일, 25명 내외로 움직이는데 의료진과 학생봉사자, 일반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한다. 출발 전에 5번의 사전교육을 통해 지켜야할 수칙을 숙지하고, 의료진과 일반인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한다. 기간 동안 최소 1000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이런 의료봉사를 지난해까지 1년에 3번 나갔다. 
“출발하기 위해 두 달을 준비하고 10일 봉사하고 돌아오면 딱 2주일을 쉴 수 있어요. 바로 다음 봉사를 준비하죠. 1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신이 나요.”

박승현 단장은 다함봉사단을 ‘같이다함’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했다. 다함봉사단은 의료진, 일반인 등 100명 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박승현 단장은 다함봉사단은 ‘같이다함’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의료진, 일반인 등 100명 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조용히 도와주는 선한 손길들
“일산 중앙로 주변의 병원은 한번씩 봉사단에 참여했다고 봐도 돼요. 정말 많이들 도와주세요. 고양시 의사회, 약사회 모두 여러 가지로 협력해주시고 물품도 지원해주세요.”
성인용 기저귀를 후원해주는 사람, 무료진료 할 때마다 유기농 빵을 구워주는 빵집 사장 등 도움의 손길은 다양하다. 얼마 전에는 독감백신 약값을 후원받아 의사 몇 명과 함께 파주의 이주노동자들 50명에게 무료 접종을 해주기도 했다. 선한 이웃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는 해외의료봉사도, 무료 진료도 못하고 우울하던 중에 사무실로 우즈베키스탄인이 찾아왔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물어물어 찾아오더군요. 병원에 예약을 잡아주거나 약을 주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중국계 할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발이 괴사되었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 소식을 듣고 희망브리지에서 의족을 후원해 주셨고, 잘 시술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고 있습니다. 필요한 일이 릴레이처럼 일어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독감백신 약값을 후원받아 의사 몇 명과 함께 파주의 이주노동자들 50명에게 무료 접종을 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독감백신 약값을 후원받아 의사 몇 명과 함께 파주의 이주노동자들 50명에게 무료 접종을 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족은 나의 힘
중학교 때부터 엄마와 봉사를 함께 해온 두 자녀가 지금은 성인이 되어 봉사단 일을 척척 도와주는 든든한 조력자로 성장한 것은 큰 보람이다.
“약사는 돈 잘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데, 10년 넘게 돈 안 벌고 봉사만 하니 남편과 자녀의 도움과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했지요. 남편에게 60살이 되면 다시 약사가 되어서 노후를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꼭 지키려 해요.”
앞으로 7년쯤 시간이 남았다. 지금도 봉사단을 물려달라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박 단장은 봉사단이 잘 굴러가게끔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고 다함봉사단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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