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 박관순들마루농원 농부

3대째 용두동 살며 농사
부부가 신도농협 조합원
농협중앙회 '이달의 새농민상'

[고양신문] 삼송신도시 개발로 고층아파트가 우뚝 솟은 대단지를 지나 서오릉으로 가는 길 우측에는 비닐하우스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용머리’ 마을 용두동에는 수도권 시민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줄 채소류가 자라고 있다. 용두동에서 32년째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박관순(56세) 농부. 농협중앙회에서 선정한 이달의 새농민상을 수상한 주인공이다.

들마루농원 박관순 농부를 만나러 둑방길을 조심스레 지나 농장에 도착했다. 선하게 생긴 농부님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3대째 용두동에서 살았어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지요. 1988년에 군 제대하고 직장을 들어가 한두 달 다녔는데 농사짓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요.”

당시 박관순 씨의 부모님은 꽈리고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동산동, 용두동 일대는 서울과 인접한 근교농업의 최적지로서 비닐하우스 지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논이 많았지요. 하우스가 하나둘 늘더니 주변이 다 하우스가 됐어요.”

꽈리고추 농사가 잘 돼서 농사를 조금씩 늘려갔다. 고추는 연작 피해가 있어서 상추, 고수, 얼갈이 등을 돌려가며 심었다.

농사도 과학이다, 과학영농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농사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해는 풍작이 되어 값이 폭락하고, 어떤 해는 수확량이 적어 값이 폭등한다. 리듬을 잘 타면 돈을 벌겠지만 잘못하면 ‘쪽박차기’ 십상이다. 박관순 씨도 농사 망해서 나가는 사람을 여럿 봤단다.

그는 어떻게 큰 실패 없이 농사를 지으며 차곡차곡 농지를 늘려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꼼꼼한 농사일지 작성과 과학영농 때문이다. 장부에 출하 단가를 매일 적어두고 2~3년치를 검토한 후 출하시기를 맞춰 파종한다. 몇 년치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고 대부분 적중한다.

“작물이 비싼 시기가 있어요. 그것에 맞춰서 심으면 이득을 보는 거죠. 농사도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 돈을 법니다.”

도매시장에서 가격을 조사하고, 수익성 좋은 것 찾아서 심고. 우기 때는 뭐가 좋더라, 여름에는 통배추 부족하더라 하는 내용을 기록해두었다가 패턴을 읽고 심으면 큰 실패가 없다는 설명이다.

작물도 유행이 있다
지금은 6000평 농장에 고수를 심었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들어오면서 고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수확한 고수는 전량 안산 지역으로 팔려나간다. 젊은층이 샐러드를 선호하면서 샐러드용 채소도 인기가 있다.

여름에는 얼갈이, 겨울에는 고수를 주로 재배한다. 전체 물량은 중간도매상이 수매해간다. 십여년째 거래하고 있어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맛있는 채소를 안정적으로 재배해 꾸준히 공급하기 때문에 유통쪽에서도 믿고 거래하게 된 것이다.

농사도 사명감 있어야
들마루농장의 농산물은 저농약으로 생산한다.

“채소마다 칠 수 있는 농약이 정해져 있어요. 배추에는 배추에 쓰라는 농약이 정해져 있는 거죠. 다른 게 검출되면 출하 못해요. 농약 쓰지 말라는 얘기죠.”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먹거리의 안전성과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PLS제도를 2019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PLS제도는 Positive List System(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의 약자다. 박 씨는 제도에 맞춰 농약을 사용하지만 그것조차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농협에서 미생물제재를 만들어 저렴하게 공급해주고 있어요. 잎채소 농사에는 민달팽이가 제일 골치 아픈데 그걸 쓰니까 민달팽이가 많이 줄었어요. 친환경 자재를 써서 농약사용을 줄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친환경 자재를 병행하면서 농약 사용량을 줄이니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도 좋고 땅 건강에도 좋은 일석이조다. 그는 “농부들도 안전한 식품 제공한다는 사명감 있어야 해요”라고 강조한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아온 인생
“농사는 부지런하면 돈 벌고, 놀면서 하면 절대 못 번다”고 잘라 말하는 박관순 씨.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하루인들 맘 놓고 어디를 갈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를 “놀러 한번 안가고 땅에 파묻혀 살아온 인생”이라고 정의했다.

결혼해서 10년 될 때까지는 새벽 4시면 밭에 나와 불 켜놓고 꾀리고추와 상추를 땄다. 아내 엄주화 씨는 평생 함께 농사지으며 고생해서 얼마 전에는 허리수술도 했다.

“아내가 세끼 밥 해다 주고 고생이 많았지요. 남자 혼자 농사지어서는 절대 돈도 못 벌고 일꾼들이 오지도 않아요. 짜장면이나 시켜주고 그러면 누가 일하러 오겠어요.”

아내는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들 반찬도 해다주고 때때로 영양식도 만들어다 주는, 배려깊은 동반자다. 박관순 씨 본인도 허리뼈가 닳아 아프지만 평생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농사짓기 잘했다는 생각인지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요. 농사 짓기를 잘했지요. 시설채소하면서 머리 잘 쓰면 웬만한 봉급쟁이보다 훨씬 나아요. 젊은 분들 농사지으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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