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 2020 노을 사진 베스트10

시간 날씨 장소가 함께 만든 마법의 순간 
서쪽으로 트인 고양, 노을 바라보기 좋은 동네
2020년 마지막 버킷리스트
'나만의 석양 감상 포인트' 찾아볼까

아름답게 물든 노을은 평범한 전봇대의 실루엣도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아름답게 물든 노을은 평범한 전봇대의 실루엣도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올해가 열흘 가량 밖에 남지 않았다. 2020년이 시작될 무렵, 앞뒤로 반복되는 숫자처럼 뭔가 산뜻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나름대로 만들어보리라 다짐한 이들이 많았으리라. 하지만 뜻밖에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출현해 전 세계인들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공통의 경험을 떠안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통과한 시간은 나름의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 흔적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방치해뒀던 컴퓨터의 사진 폴더를 정리하기도 하고, 아무도 몰래 올해 본 영화 베스트 목록을 뽑아보기도 한다. 2020년을 각자의 방식으로 저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공릉천 하구에서 만난 노을. 오른쪽 아래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멀리 보인다.
공릉천 하구에서 만난 노을. 오른쪽 아래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멀리 보인다.

하루 일정 마감하는 태양의 선물

기자가 연초에 세운 몇 안 되는 계획 중 하나는 ‘저녁노을을 많이 보자’였다. 무슨 한가한 소린가 하겠지만, 노을과 자주 만나자는 다짐은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그날의 일과를 매듭짓고, 저녁 약속이나 모임도 가급적 줄이고, 저녁 시간을 여유롭게 누리자는 바람이기도 했다. 

계획은 어느 정도 실천됐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산책 시간을 가급적 해지는 시간에 맞췄고, 식당이나 카페에 들러도 서쪽으로 난 창가 자리를 기웃거렸다. 때로는 운전을 하다가도 일몰 시간이 되면 서쪽으로 시야가 트인 곳에 차를 멈춰 세우고 석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퇴근 동선에서 일몰을 바라보기 좋은 포인트 몇 개를 발굴해 둔 덕분에 해지는 장면을 확실히 많이 구경한 한해였다.

그렇다고 일상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저녁시간의 특별한 시너지를 많이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애초부터 목적은 지는 해가 물들이는 황홀한 풍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캠핑 인구가 늘며 아무 생각 없이 모닥불을 바라보는, 이른바 ‘불멍’에 대한 로망이 확산되고 있다는데, 우리의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가장 큰 불덩어리인 ‘태양’이 하루일정을 마감하는 장관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불멍의 궁극이 아닐까. 멋진 순간들을 되돌아보며 올해 찍은 노을 사진 베스트10을 나 홀로 선정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창릉천 하구 갈대밭. 구름의 색채가 신비롭다.
창릉천 하구 갈대밭. 구름의 색채가 신비롭다.

색감과 느낌 제각각 다 달라

사실 노을 지는 석양은 몸값이 꽤 비싸다.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시간이 맞아야 한다. 일몰과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 시간은 해 지기 전 15분부터 해 넘어간 후 15분까지, 길게 잡아야 하루에 30분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일 년 내내 시간이 계속 바뀐다. 낮이 가장 긴 하지에는 8시가 다 돼야 해가 지지만, 요즘같이 밤이 긴 동지 무렵에는 5시만 넘어도 사위가 어둑어둑해진다. 무려 3시간이나 편차가 있는 것이다. 노을바라기를 취미로 삼으려면 매일같이 달라지는 태양과 시간감각을 공유해야만 한다.

일몰시각을 맞췄어도 날씨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언감생심이다. 눈비가 오거나 안개 낀 날에는 당연히 노을을 볼 수 없다. 또한 날씨가 너무 흐려도, 반대로 날씨가 너무 맑아도 하늘빛이 물들지 않는다.

행주산성누리길 초소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행주대교다.
행주산성누리길 초소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행주대교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노을은 빛의 산란 현상의 결과물이다. 해질 무렵 태양이 기울면 빛이 비스듬한 각도로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때 파란빛은 먼저 산란돼 사라지고, 붉은 빛만 우리의 시신경까지 도착하기 때문에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드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산란현상이 잘 일어나려면 공기 중에 적당량의 먼지나 물방울이 있어줘야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아주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상은 너무나도 변화무쌍하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찍은 노을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날도 색감이나 느낌이 똑같은 날이 없다. 여기에 구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천변만화의 표정이 펼쳐진다. 

이처럼 시간과 날씨가 맞아떨어졌으면, 남은 미션은 하나, 노을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초짜들은 갑자기 노을이 보고 싶어도 어디에 가서 노을을 봐야 할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뭐, 서향으로 탁 트인 전망을 가진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말이다. 결국 시간과 날씨, 장소가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장면 하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하지구에서 공릉천으로 흐르는 청룡두천 다리 위로 노을이 물들었다.
교하지구에서 공릉천으로 흐르는 청룡두천 다리 위로 노을이 물들었다.

전망대 올라갈까 하천길 걸어볼까

고양과 파주에는 노을을 구경하기 좋은 유명 포인트들이 여럿 있다. 행주산성역사공원과 이어지는 덕양산 초소전망대, 고봉산 영천사 마당, 그리고 파주 심학산과 검단산 전망대 등이 손꼽히는 석양 감상 명소다. 하지만 꼭 이곳들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 각자의 일상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나만의 노을 명소’를 발굴해보는 것이 훨씬 가성비도 좋고 재미도 있다.

지형적으로 보자면 고양시는 석양과 노을 감상 취미를 기르기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가진 도시다. 아파트 단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야트막한 야산과 넓은 농경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서해로 흐르는 드넓은 한강이 있고, 한강을 향해 흐르는 하천들이 있지 않은가.

2020년이 며칠 안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기. 한해가 마감되기 전에 한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버킷리스트로 강추한다.  

자유로 옆 송촌교.
자유로 옆 송촌교.
기자가 출근하는 고양신문사 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 하단에 백석동 와이시티 건물이 보인다.
기자가 출근하는 고양신문사 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 하단에 백석동 와이시티 건물이 보인다.
일산서구 구산동 장월평천 둑방에서 바라본 석양.
일산서구 구산동 장월평천 둑방에서 바라본 석양.
공릉천 하구 영천배수펌프장 근처. 하늘이 와인색으로 물들었다.
공릉천 하구 영천배수펌프장 근처. 하늘이 와인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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