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예술 기획자 하춘근 사진작가

시그니처된 빅 아이시리즈
여러 장면 응축해 새 이미지로
DMZ, 4
·3현장 등 누비며 작업
사진예술 플랫폼
포토마운영

고양시에서 생활예술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하춘근 사진작가.
고양시에서 생활예술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하춘근 사진작가.

[고양신문]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생활 속에서 예술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며 음악, 미술, 체육 등을 통해 고양시를 생활 예술 도시로 만들기 위해 힘쓰는 이들이 많다. 하춘근 사진작가도 그들 중 한 명이다.

하 작가는 빅 아이 대한민국’(갤러리나우 2015), ‘저스티스’(금보성아트센터 2017) 등의 개인전과 파리, 일본 등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고, 갤러리나우 2nd Brand 작가상 대상과 현대사진캠프 포트폴리오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하 작가를 만났다. 작업실에는 그동안 전시했던 사진 작품과 DMZ에서 구해왔다는 철책선까지 걸려 있다. 안쪽 사무실에는 개인적으로 소장 중인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혼자 작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보였다.

하춘근 사진작품 '대한민국 동해'
하춘근 사진작품 '대한민국 동해'

수십 장 사진으로 구현한 동해바다 해안선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한 후 광고회사에 다녔다. 30대에 강남에 병원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광고회사를 차려 전국적으로 확장을 했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그해에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40대 초반에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서 사진을 배웠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비주류인 자신이 사진을 잘 찍을 자신은 없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수는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서 포항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해안선 풍경을 찍어, 한 장의 사진에 복수의 사진을 응축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수십 장의 수평선 사진들을 중첩해서 240크기로 동해의 모습을 구현한 것.

하춘근 사진작품 'DMZ'.
하춘근 사진작품 'DMZ'.

다양한 장면으로 더 큰 풍경창조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전시를 보고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당시 아직도 지구의 37%는 원시림이다라는 카피 한 줄이 충격적이었어요. 그전까지 사진은 그저 아름다운 것을 찍는 것으로 알았는데요. 살가두의 작가 노트를 보면서 사진가는 세상과 인류, 환경에 대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구나생각했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작업 방향이 바뀌었다. 자신이 봤던 다양한 풍광으로 큰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개념을 담아 스스로 빅 아이(BIG EYE)라고 명명한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여러 장면을 한 장의 사진에 담으면서 주제가 명료해지는 응축적인 이미지를 창조했다. 한 장의 사진에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스토리텔링 사진을 만든 것. 그 과정을 소개한 첫 번째 책 사진작가의 사진 고민은 완판이 되면서 이슈가 됐다.

서해, 남해, 동해, 제주, 독도 등 우리나라의 국토, 역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담은 빅 아이 코리아를 시작으로 DMZ의 분단 현실을 표현한 빅 아이 155마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빅 아이 그라운드 제로, 빅 아이 저스티스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DMZ 작업 결과물은 통일부에서, 여덟 방향에서 바라본 독도 사진은 행안부에서 소장 중이다.

2016년 말 촛불혁명이 터졌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작가가 됐는데 그동안 무심했던 것에 자책하게 됐고, 그 부채감으로 광화문에 나갔다. 그때부터 탄핵 순간까지 광화문과 세월호 현장에서 수백 컷의 사진을 찍어 한 컷의 작품으로 완성해 나갔다. 그 과정이 두 번째 책 작가의 생각이 작품이 되기까지에 실려있다. 대학원에서 사진예술에 관한 공부도 병행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춘근 사진작품 'Ground Zero Hiroshima'
하춘근 사진작품 'Ground Zero Hiroshima'

역사 이면의 진실에 다가가는 카메라

“9·11사건이 터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그라운드 제로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재난에 의해 초토화된 지역이라는 의미의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르는 게 의아했죠.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좌표명이 그라운드 제로였는데요. 동일한 주체가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양면성을 느끼게 됐어요. 그때부터 역사가 제 작업의 주제가 됐죠.”

그 이후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의 그림자(Shadow of history)’라는 주제로 그라운드 제로 연작을 완성했다. 그는 승자 이면의 역사가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현재는 국내에서 DMZ 155마일과 제주도 4·3사건 관련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붉은색 풍경으로 표현한 제주 중산간과 푸른색의 함덕해변을 담은 작품이다. 작년 가을에 진행된 대구비엔날레에서 이들 사진과 설치 작품을 전시했다. 앞으로도 전쟁, 테러, 폭력에서 휴머니즘의 오류를 찾는 작업을 이어가려고 한다.

하춘근 사진작품 '제주'.
하춘근 사진작품 '제주'.

생활 예술 풍성하게 꽃 피우길

그의 활발한 활동을 접하며 전업 작가가 될 의향은 없는지 물어보았더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우리나라에만 전업 작가라는 말이 있어요. 해외에 나가보면 변호사이면서 사진가인 경우처럼, 직업과 예술이 생활 속에 있죠. 우리는 전업을 해야만 예술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예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진예술 정보 플랫폼 포토마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하 작가는 최근 문화예술 강좌인 피노아카데미를 기획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윤광준 사진가와 함께하는 수업을 3개월간 운영하고 수강생들의 사진 전시까지 마쳤다. 이달 26일 김동우 사진가를 시작으로 매월 판소리 명창, 회화 작가 등 전문가들을 초대해 강연을 할 예정이다.

2년 동안 사재를 털어 넣으면서 포토마를 운영하다 보니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 대표는 고양시를 베드타운이 아니라 예술 도시로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한 시골 마을이 뮤지엄을 설립하면서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 고양시도 문화예술 콘텐츠가 활성화되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활 체육을 하듯이 생활 예술가가 돼야 합니다. 체험하고 경험하면 됩니다. 생활 체육인들이 많아지듯이 생활 예술인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프로들이 인정을 받게 돼요.”

하춘근 사진작품 'Ground Zero 911'
하춘근 사진작품 'Ground Zero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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