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맹금, 생태계 조절하는 최상위 우산종'
어린 흰꼬리수리, 장항습지에서 사냥훈련

철책 폐그물 비닐막생존환경 위협
생태복지-생물복지 아우르는 계획 세워야

장항습지 창공을 힘차게 비행하고 있는 흰꼬리수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 창공을 힘차게 비행하고 있는 흰꼬리수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맹금. 하늘의 맹수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육식성 포식자로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다. 중간소비자들을 관리하니 자연스럽게 그 영향이 최하위단계까지 미친다. 결과적으로 생태계 전체를 조절하는 능력자다. 이런 종을 우산종(umbrella species)이라 한다. 대개 우산종인 맹금들이 사는 곳을 서식지 질이 좋다라고 표현한다. 최상위 포식자가 있다는 것은 이들을 부양하는 하위단위가 튼튼하다는 것이니 건강한 생태계라 유추하는 것이다.

맹금 중에 맹금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독수리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수리(vulture)는 사냥을 하지 않는 사체 청소부다. 진정한 하늘의 제왕은 수리(eagle)나 참매(hawk)라 부르는 종류들이다. 이들 사냥하는 수리들은 날개가 거의 구부러지지 않고, 손가락같은 칼깃을 가지고 숲 사이를 활공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습지의 으뜸 수리는 역시 흰꼬리수리다. 장항습지의 겨울 하늘을 주름잡으며 뭇 새들을 벌벌 떨게 하는 녀석들도 흰꼬리수리이다.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맹금이 평상시에는 장항습지에서 예닐곱마리 정도가 보이고 많을 땐 십여 마리가 떼를 짓는다. 어른새들과 어린새들이 골고루 모여 있다. 이들은 대체 장항습지에서 무얼 하려고 모여 있는 걸까.

흰꼬리수리 어린새들의 큰기러기 사냥훈련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흰꼬리수리 어린새들의 큰기러기 사냥훈련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지난겨울 궁금증이 풀렸다. 아침녘 흰꼬리수리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침 큰기러기를 사냥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자세히 보니 어른새 2마리가 사냥을 하고 어린새 3마리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른새가 큰기러기무리를 향해 위협비행을 하다 무리에서 떨어진 한 마리를 쏜살같이 타격을 했다. 그 충격으로 물위에 떠있던 큰기러기를 향해 다른 어른새가 내려앉더니 지그시 물속으로 눌러 마무리를 하곤 자리를 떴다.

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어린새 하나가 훌쩍 날아오르더니 어미 흉내를 내곤 사냥감을 물에서 끌고 나왔다. 그리고 다른 어린새들이 슬쩍 건드려보곤 하였고 어른새들은 멀찌감치 자리를 떳다. 이 귀한 광경을 보면서 이내 장항습지가 흰꼬리수리의 사냥 훈육장인 것을 알았다. 어린새들이 부모와 월동하면서 다양한 사냥술을 익히는 장소였던 것이다. 간혹 하늘에서 흰꼬리수리 어린새들이 공중재비를 하며 다툼을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어린새들의 사냥기술 훈련이다. 이때는 까치들도 합세하기도 하여 흡사 까치가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무승부로 끝난다.

황조롱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황조롱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를 찾는 맹금은 흰꼬리수리 외에도 말똥가리, 참매, 황조롱이가 비교적 흔하다. 드물게 매, 새호리기, 물수리, 큰말똥가리, 붉은배새매, 새매, 독수리 등이 보인다. 이들이 콘크리트빌딩 숲에 둘러싸인 장항습지를 찾는 이유는 철책이 둘러쳐진 덕이기도 하다. 사람의 출현 자체가 그들에겐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냥하기 위해 은신하거나 쉬는 장소는 나무 위나 철책과 같은 비교적 높은 곳이다. 이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 거리기만해도 위협을 느껴 바로 자리를 떠버린다.

먹잇감들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는다. 최대한 규모를 키워 집단방어시스템을 구축한다. 초병들을 여럿 세워 경계를 강화하고, 다른 종들끼리도 경계음을 공유한다. 텃세권을 가진 텃새들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맹금을 쫓아 내기도한다. 특히 어린새들일수록 사냥성공률도 그리 높지 않아 걸핏하면 굶기 일쑤다. 서열에서 밀리는 어린새나 청소년기의 미성숙새는 먹이터에서 밀려나기 쉽고 주로 병약한 사냥감이나 죽은 먹이를 찾아 헤매다 아사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삶도 그리 녹녹치 않다.

부상을 당한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부상을 당한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그나마 장항습지의 철책은 맹금을 지키는 안전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을 다치게 하는 흉기이기도 하다. 낮고 평평한 습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철책은 맹금의 서식처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다 날카로운 가시에 발가락이 잘리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비상하다가 날갯죽지를 다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가시철망에 날갯죽지 한쪽이 찢어진 말똥가리가 발견하였다. 다행히도 남은 한쪽 날개와 남은 날개 절반으로 적응해서 살고 있었지만 그 삶은 평탄치 못할 것이다.

습지에 맹금을 위협하는 것이 어디 철책뿐이랴. 폐그물이나 차폐용 폐비닐막도 무서운 흉기다. 날카롭고 긴 발톱은 조각난 폐그물이나 비닐막이 엉키면 털어내지 못한다. 이 상태로 사냥을 못하고 비행도 자유롭지 못하면 곧 아사하게 된다. 설날 직전 장항습지 모니터링에서 10여년 만에 관찰된 큰말똥가리가 그런 상황이었다. 먹이를 준 논바닥에 큰말똥가리가 앉아 있는데 수천마리의 기러기들이 잔뜩 경계하면서도 가까이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다쳤을까 싶어 자세히 보니 큰말똥가리의 발에는 폐그물이 감겨있었다. 사람을 보자 바로 날아올라 구조하지는 못했지만 그 상태로 이번 겨울을 나기가 싶지 않을 것이라 안타깝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요즘 장항습지 생태관광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다. 철책 길 따라 걷기 길을 연장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탐방로와 탐방용 전기차 얘기도 나온다. 습지를 잘 보전한 시민들에게 생태복지를 확대하고 그린뉴딜을 실천하자는데 무슨 이견이 있으랴. 문제는 원론적인 구호보다 디테일이다. 생태복지와 생물복지가 양립할 수 있도록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섣부르게 황금알을 꺼내면 모든 것을 잃는다. 철책 밖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만으로도 날아오르는 맹금들이 모두 떠날지도 모른다. 우산종이 사라지면 하부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겪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고양시를 찾아오는 겨울진객들이 사람들의 무지 때문에 모두 떠나 버린다면 람사르습지 지정인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흰꼬리수리의 사냥훈련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흰꼬리수리의 사냥훈련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공중재비를 돌고 있는 흰꼬리수리 어린새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김은정]
공중재비를 돌고 있는 흰꼬리수리 어린새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김은정]
폐그물에 걸린 큰발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김은정]
폐그물에 걸린 큰발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김은정]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말똥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쇠황조롱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쇠황조롱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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