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일본 이즈미에서 겨울 보내고
중국·러시아로 이동하는 재두루미
장항습지에서 먹고 쉬며 ‘기운 충전’
겨울 내내 무논 조성해 쉼터 제공

장항습지 갈대숲 ‘부유쓰레기’ 심각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대책 필요

▲지난달 하순부터 장항습지에 재두루미가 100여 마리 넘게 찾아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설렜다. 한강유역환경청에 요청해 ‘취재 보도’를 목적으로 습지보호구역 출입허가를 받았다. 드디어 3월 5일 이른 아침, 박평수 한강하구장항습지보전협의회 대표의 안내를 받아 장항습지 재두루미들을 만나러 나섰다. 작년에 개관한 장항습지 탐조대 옆 통문으로 들어섰다. 멀리 북한산 너머 동쪽 하늘이 환해진다. 자유로가 점점 늘어나는 차량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전 7시, 장항습지에도 여명이 밝아온다. 넓게 펼쳐진 장항습지 농경지에 물이 가득하다. 박평수 대표는 “재두루미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장항습지 농경지에 물을 채워 무논을 만들어놓았다”고 말했다. 재두루미들은 천적의 접근을 피해 무논 한가운데에서 발을 담그고 겨울밤을 보낸다고 한다.

▲무논 위에 새들이 가득하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먼 거리에서 조망하느라 형체가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논 한가운데 월등히 키가 큰 새들도 여기 저기 무리를 짓고 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비로소 멋진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하얀 목덜미와 꼬리, 우아한 다리와 붉은 뺨…. 재두루미다! 어림잡아 100여 마리가 넘는다. 장항습지 무논을 공유하고 있는 큰기러기, 쇠기러기, 대백로,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들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다.

▲아쉽게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기자가 가진 카메라 렌즈로는 재두루미들의 모습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재두루미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일.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쯤은 기자도 모르지 않는다.
박평수 대표가 탐조용 망원경 렌즈에 기자의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밀착시켜준다. 놀랍게도 형상이 포착된다. 사진 몇 컷,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짧은 동영상도 건질 수 있었다.

▲자유로 건너편 인간의 도시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또다시 찾아온 바쁜 일상을 준비하는 시간, 장항습지 무논을 잠자리 삼아 밤을 보낸 재두루미들도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감상한다. 도로와 철조망을 경계 삼아 사람들의 세상과 새들의 세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재두루미 숫자는 매일매일 다르다고 한다. 일본 이즈미나 전남 순천만 등에서 월동을 한 무리들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이동하는 도중 영양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장항습지에 들르기 때문이다. 일부는 장항습지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먼 길을 이동하는 재두루미들에게 장항습지는 너무도 고마운 휴게소인 셈이다.

▲반가운 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사진 오른쪽 두 사람은 일주일에 세 번, 이른 시간에 장항습지 모니터링을 나온다는 에코코리아 한동욱 이사, 이은정 사무처장 부부다. 누구보다도 장항습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부지런히 계수기 버튼을 누르고 있는 이은정 사무처장은 “오늘 재두루미가 107마리”라고 알려줬다. 예년보다 이동 시기가 빨라졌고, 개체수도 조금 늘었단다.
그 옆 박평수 대표는 고양시의 다양한 생태·환경단체들의 역량을 장항습지 보전을 위한 동력으로 모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은 고양시자원봉사센터 허신용 센터장이다. 고양시자원봉사센터는 장항습지 정화활동과 생태교란종 제거를 위해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무논 관찰을 마치자 박평수 대표가 장항습지 부유쓰레기의 실태를 살펴보자고 한다. 박 대표를 따라 장항습지 생태탐방로로 발길을 옮긴다. 자원봉사자들과 작업자들의 발길이 닿기 쉬운 생태탐방로 주변은 부유쓰레기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초록빛이 잠시 숨어든 한겨울, 장항습지 풍경이 호젓하고 여유롭다.

▲박평수 대표가 생태탐방로 중간에 매달아놓은 새 먹이통에 땅콩가루를 채우고 있다. 귀여운 박새들이 맛있는 먹이를 기대하며 주변의 나뭇가지 위로 몰려들었다.

▲생태교란종 가시박에 뒤덮이곤 했던 장항습지의 버드나무숲이 말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작업자들과 봉사자들의 수고도 큰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지난해 여름 장항습지를 흠뻑 잠기게 했던 큰 비가 가시박 덩굴들을 제압해버렸기 때문이란다.

▲장항습지 물골.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며 습지를 적셔주는 생명의 물길이다.  

▲부유쓰레기 제거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구역. 켜켜이 쌓인 말라죽은 갈대줄기 사이사이마다 부유쓰레기 천지다. 플라스틱과 깡통도 문제지만, 조각조각 바스러지고 있는 스티로폼이 가장 심각하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생태 보고 장항습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허신용 센터장(왼쪽)과 박평수 대표가 장항습지 깊은 구역의 부유쓰레기 처리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쓰레기 제거작업을 하며 따로 모아둔 대형 부유쓰레기.

▲버드나무숲 사이에 쌓아둔 부유쓰레기 포대자루. 
쓰레기를 골라내고, 자루에 모으고, 습지 바깥으로 내어가는 일 하나하나가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박평수 대표는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장항습지”라며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대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신용 센터장은 “장항습지는 봉사자들이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곳”이라면서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대상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장항습지 환경정화 자원봉사를 본격적으로 재개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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