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겨우내 집 뒷마당 모이통을 찾아와준 새들
참새·직박구리는 물론 어치·곤줄박이·동박새까지
새들과 공존하는 ‘조류 친화적 도시’ 만들자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이 땅에도 봄이 온다네…’
해마다 봄날이면 소리꾼 장사익의 강남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새밥상을 치우는 재미가 솔솔하다. 우리집 뒷마당에 겨우내 매실나무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아 둔 나무 모이통 두 개와 창구멍을 낸 페트병 두 개, 넙대대한 돌판 하나다. 올겨울 이 다섯 대의 모이통으로 먹여 살린(?) 새들만 십여 종이다. 아침마다 모이통에 곡류를 채우고 매실 나뭇가지에 과일이나 버터를 꽂아 주는 것으로 내 일과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엄동설한에 새들에게 보시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다 보니 그게 아니다. 매일 아침 찾아와 밥을 먹는 새들을 보며 위로받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이 작은 날생명들이 찾아오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궁금해졌다. 뭔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날이 추웠는데…. 그러다가 다음날 동박새 부부가 찾아와 맛나게 귤을 먹고 가면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 새 녀석들과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다.

필자의 손 위로 날아든 곤줄박이 [사진=한동욱]
필자의 손 위로 날아든 곤줄박이 [사진=한동욱]

온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싹쓸이를 해가는 참새 요녀석들, 모이를 지키며 참새가 오는 족족 쫓아내는 깡패 직박구리들, 큼지막한 머리로 모이통을 들쑤셔 놓는 어깨형님같은 어치들, 먹이를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손바닥위의 먹이까지 탐을 내는 똘똘이 곤줄박이와 박새들…. 그래도 이중 가장 사랑스런 새는 역시 동박새 부부였다. 어찌나 금슬이 좋은 지 늘 둘이 함께 와서 과일모이를 먹고 양지바른 곳에서 서로 머리를 붙이고 애정표현을 했다.

마당에 모이통을 놓을 때는 새들의 식성을 알아 두면 좋다. 땅콩을 놓아 주면 곤줄박이와 박새가 제일 먼저 알아채고, 쇠기름을 꽂아 두면 어치와 까치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간혹 개똥지빠귀와 노랑지빠귀가 기웃거리고 큰오색딱따구리가 찾아오기도 한다. 쌀이나 빵가루를 놓은 날이면 새밥상은 참새들의 방앗간이 된다. 모이통도 새에 따라 다양하니 구입하거나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은 접시에 물을 담아 두는 것이다. 새들은 모이를 먹으면 꼭 물을 찾는다. 마실 물도 필요하지만 목욕할 물도 필요하다. 새나 사람이나 삶의 꼴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새 [사진=한동욱]
박새 [사진=한동욱]

요즘 좋은 도시를 수식하는 말로 ‘걷기 좋은’, ‘숲이 있는’ ‘경관 좋은’이란 말을 종종 쓴다. 여기에 ‘생태 친화적인’ 도시라면 금상첨화일 게다. 생태도시의 핵심은 친환경에너지가 주를 이루고, 자원재활용으로 쓰레기를 줄이며, 자연생태계와 공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에 이 모든 요소를 갖추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는 우선 조류-친화 도시(Bird-friendly city)부터 시작해 보자.

시인은 아침마다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없다면 인간의 영혼이 무너진다 했지만, 뿐만 아니라 ‘침묵의 봄’처럼 자연의 균형도 깨어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도시의 새는 해충의 포식자다. 새가 없다면 해충이 창궐한다. 또한 말매미와 같은 소음곤충이 대발생하는 이유가 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면 새들이 주는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럴 때 생태학자들은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라는 영어(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의 첫 자를 따서 탄스타플(TANSTAFL)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의 유래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로 올라간다. 서부의 어느 번화가 식당에 이런 방이 붙었다. ‘술을 마시면 점심 식사가 공짜’. 주머니 사정이 궁했던 개척자들은 웬 떡이냐 생각하고 너나없이 몰려가 점심 술을 마셨고 공짜 점심으로 속을 채웠다. 식당을 나서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점심값보다 더 많은 돈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값’에는 점심값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생긴 말이 탄스타플(TANSTAFL)이다.

노랑지빠귀 [사진=한동욱]
노랑지빠귀 [사진=한동욱]

도시라는 삭막한 공간에 새들이 주는 서비스를 누리려면 기억하자. 탄스타플!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 서비스를 받으려면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집집마다 모이통을 달고 매일 아침 새들의 밥상을 차려 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도시의 관리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공공건물에 예쁜 모이통을 걸고 모이를 넣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집집마다 모이통을 걸고 모이를 주자. 그리고 새들의 공간을 만드는데 기꺼이 시민들의 세금이 쓰이도록 조례를 만들자.

요즘 장항습지 생태관광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제안들이 무성하다. 철책 길을 따라 관광길을 열자는 이야기도 있고, 전기차를 운행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장항습지를 지켜내고 람사르습지로 등록하자는 생태친화적인 시민들에게 생태복지를 확대하자는 것에 무슨 이견이 있으랴. 문제는 원론적인 구호가 아니라 디테일이다.

생태복지와 생물복지가 양립할 수 있을까. 서로 맞교환이 된다면 문제다. 가능하다면 섬세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방비로 개방되는 김포쪽 수변과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고양쪽 철책길이 동시에 열려 수도권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장항습지는 새가 없는 녹색사막이 될 지도 모른다. 이들이 다 떠나고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섣부르게 황금알을 꺼내면 전체를 잃을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탄스타플!

개똥지빠귀 [사진=한동욱]
개똥지빠귀 [사진=한동욱]
동박새 [사진=한동욱]
동박새 [사진=한동욱]
멧비둘기 [사진=한동욱]
멧비둘기 [사진=한동욱]
어치 [사진=한동욱]
어치 [사진=한동욱]
쇠박새 [사진=한동욱]
쇠박새 [사진=한동욱]
참새들의 만찬 [사진=한동욱]
참새들의 만찬 [사진=한동욱]
직박구리 [사진=한동욱]
직박구리 [사진=한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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