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하는 이웃 - 정정수 조경예술가

서양화가이자 조경예술가인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서양화가이자 조경예술가인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순천만 국가정원의 예술총감독, 파주 벽초지수목원 설계·시공자, 고도원의 아침편지 명상센터 예술총감독. 화려한 경력의 주인공이 아파트 단지 조경을 주민들과 함께했다. 인근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일산서구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들의 정원 작업을 함께한, 서양화가이자 조경예술가인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69세)이 그 주인공이다. 

정정수 원장이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들과 마을정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정정수 원장이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들과 마을정원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가치를 함께
일의 시작은 이렇다.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 네 명(심선자·박상희·오정숙·조수진)이 의기투합해서 고양시농업기술센터 공모사업에 지원해 열정과 노력, 기획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국비(농촌진흥청) 50%와 고양시비 50% 지원 ‘아파트 조경 다층식재기술 시범사업’에  선정됐다. 주민들이 스스로 식재하고 가꿀 수 있도록 교육이 필수사항이었다. 주민 중 한 명이 정정수 원장과 친분이 있어 연락을 했다.
“좋은 일이거든요. 정원을 계기로 주민이 단합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하겠다고 답했어요.”

정정수 원장은 늘 자신이 하는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가치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정정수 원장은 늘 자신이 하는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가치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5회차에 걸쳐 조경의 역사, 미학, 관리방법, 가지치기 방법 등을 교육하고, 일주일에 사흘은 현장에 와서 하루종일 주민들과 함께했다. 올해 전주와 나주에서 큰 정원 작업을 하기로 동선을 맞춰놓은 상태였는데 뜻하지 않게 덕이동 작업을 함께 하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고양에서 전주로, 다시 고양으로 나주로 오가는 일을 반복하는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보람은 컸다.
“아이들 마음에 어떤 씨앗이 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꽃 한포기를 심으면서 그 관심이 어디로 확장될지 누가 알겠어요.” 
그의 프로필에 비해 작은 작업이고, 재능기부 수준의 보수였지만 마을공동체가 회복되고 아이들의 인생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함께했다는 설명이다. 

벽초지 수목원. 정정수 원장의 철학과 손길이 그대로 녹아있다.
벽초지 수목원. 정정수 원장의 철학과 손길이 그대로 녹아있다.

‘여기다움’을 그리다
그가 조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기다움’이다. 이번 작업은 “여기다움이 없고 다른 데 다 있는 것들”이었기에 보완에 중점을 뒀다. 
포인트는 주민들이 식물을 통해 화합하는 것, 그것이었다. 내가 사는 단지 정원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나이를 불문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아이들끼리 손잡고 나오고, 자녀가 원해서 부모가 함께 나오면서 이웃과 함께 식물을 심고 가꾸는 작업을 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방점을 두었다.
“어느 한 가지를 알게 되면 다른 것을 알고 싶어져요. 꽃을 심기 전과 후가 다른 아이가 되는 것이죠. 나는 그것이 가치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의 공존에 대해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과의 공존에 대해 하이파크시티 4단지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위적이되 작위적이지 않게
조경기술자들은 시공을 위해 도면을 그리는데 정 원장은 스케치를 한다. 화가가 팔레트의 물감을 찍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나무, 꽃, 바위 등이 지닌 색채와 질감을 이용해 땅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노란 꽃밭 위에 빨간 꽃 한송이. 이걸 어떻게 도면으로 표현하겠느냐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 원장의 조경디자인은 “인위적이지만 작위적이지 않은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자연스러움을 통한 아름다움이 중요하단다. 그가 설계한 벽초지 수목원만 보아도 그렇다. 유럽식 정원이 잘 꾸며진 수목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벽초지’ 연못 주변이다. 육각형 정자와 그 주변의 소나무, 연못 주변의 수양버들과 수변식물들, 그리고 통나무 다리,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처음부터 거기 있었을 것 같은, 그 모습이 정 원장이 추구하는 한국식 정원의 모습이다. 그는 ‘아름다운 것은 자기다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도 식물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다. 즉,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정정수 원장은 한국식 정원을 추구한다. 사진은 벽초지 수목원.
정정수 원장은 한국식 정원을 추구한다. 사진은 벽초지 수목원.

자연은 나의 종교이자 스승
그의 자연 미학과 철학은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지리산으로 이사해 자연을 접하면서 완성됐다. 영재였던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교 대신 자연을 선택한 아버지였다. 자연만한 스승은 없다고 굳게 믿었던 그는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지리산의 품에서 지냈다. 지리산은 그에게 자연의 오묘한 질서와 법칙을 들려주었다. 그때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 무렵이었다.
그에게는 100만 평 규모의 한국식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모든 곳이 사진 찍고 싶은 곳, 그것이 그가 꿈꾸는 한국식 정원이다. 땅 위에 그림을 그리는 정원디자이너 정정수 원장의 새로운 작품이 기대된다.

이웃과 함께 식물을 심고 가꾸는 작업을 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정수 원장.
이웃과 함께 식물을 심고 가꾸는 작업을 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정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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