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저는 가로수입니다. 혹시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 올려 보셨습니까?  가수 이문세 씨가 젊은 시절에 서정 깊은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불렀습니다. 도시민들이 가장 가깝게 접하는 푸른 친구가 우리입니다. 시원하고 쾌적한 보도 환경을 이루고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해 준다,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도 줄여주고 소음도 줄여준다, 칭찬도 높습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에 덮이고 자동차와 사람이 넘쳐나는 도시에서 우리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윤동주 시인도 방황하는 심정을 ‘가로수’라는 시로 읊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세리 삭개오가 인파에 막혀 예수님을 볼 수 없자 기어올라간 돌무화과나무도 여리고라는 도시의 가로수였다는군요. 민요 천안삼거리의 능수야 버들도 가로수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고양 시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맑은 공기 조금이라도 지키겠다고 자동차 배출가스 미세먼지 온몸으로 빨아들이며 견뎠습니다. 여름이면 초록 잎사귀 돋은 팔을 벌려 그늘도 드리워 드렸습니다. 뙤약볕 아래 걷는 분들이 시원하다며 고마워하실 때 기뻤습니다.

어느 날 구청에서 가지치기하러 나왔기에 모양새 다듬어주는가 했더니… 기계톱으로 아직 더 자랄 정수리를 똑 베고는 사방 고르게 벋은 팔도 싹둑싹둑 잘라버렸습니다. 고양시 도처에 늘어선 친구들도 다 몽당 빗자루 꼴이 됐습니다. 잎도 크고 가지도 잘 벋는 양버즘나무 친구들은 더 심합니다. 줄기 꼭대기 부분 몇 가닥만 남기고 뭉텅뭉텅 잘라내서 흡사 거꾸로 뒤집은 닭발 꼴로 바뀌었습니다. 고양뿐 아니라 전국에서 무자비한 가로수 학대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로수가 아닌 말뚝을 박아놓은 듯한 처참한 모습. 훼손된 공개공지 은행나무 7그루.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198 상가 건물)
가로수가 아닌 말뚝을 박아놓은 듯한 처참한 모습. 훼손된 공개공지 은행나무 7그루.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198 상가 건물)

우리가 사는 환경이 얼마나 가혹한지 살펴주십시오. 차들이 달리는 도로 한 켠이나 가운데에 열을 지어 섰습니다. 사람들 발길과 자동차 바퀴에 땅이 다져지고 아스팔트로 덮여서 뿌리를 벋기도 물을 빨아들이기도 힘듭니다. 툭하면 차에 들이 받히기도 하고, 흉기로 우리 몸에 상처를 내거나 살갗을 벗기는 사람, 담배꽁초로 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발 아래 쓰레기 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반려견이 우리 발등에 실례해도 치우지 않고 가는 개 주인도 봅니다.

우리를 지켜줘야 할 시와 구에서 초봄이면 가지치기 명목으로 여러분의 세금을 써 가며 우리 몸을 온통 상처투성이로 만듭니다. 가로수가 가지 벋어 잎 내고 열매 맺으며 자라는 모습이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피와 신경이 가로수에도 있는데 뭉텅뭉텅 싹둑싹둑… 심하지 않습니까?

아파트 단지 안 조경수, 대로변 상가나 빌딩 앞의 ‘공개 공지(空地)’에 심은 나무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 경관과 시민의 쾌적한 삶을 위해 건축법으로 심게 한 것인데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목을 치거나 아예 뽑아버립니다. 무자비한 나무 학대인데도 시와 구에선 ‘사유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건축법> 제111조에 규정한 ‘제42조(대지의 조경), 제43조(공개 공지 등의 확보)를 어기면 5천만 원 이하 벌금’ 이라는 조항은 또 뭔가요? 아파트 단지와 상가 빌딩 공개 공지 나무도 고양시 녹지 환경에 소중한 부분입니다. 나무가 가린다는 그 간판, 크기나 위치로 볼 때 대부분 법규 위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간판보다는 고객의 평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상가 빌딩이면 분위기도 품위도 한결 높아질 텐데요.

지난 6월 10일부터 <도시숲법(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습니다. 산림청에 물어보니 아파트와 상가 건물 공개 공지 나무도 법에 정한 도시숲 생활숲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도시숲 등’의 ‘등(等)’이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이미 1년 전 법을 공포하면서 ‘가로수 조성-관리 매뉴얼’을 발표했고, 고양시도 법에 맞춰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 조례’를 갖췄네요. 가지치기는 ‘도시숲조성관리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약한 강도’로 해야 한다(15조), ‘도시숲 등이 인위적인 피해를 입었을 경우 원인행위자에게 원상회복 책임을 지게 한다(21조)’고 명시했습니다.

고양시는 두 해 전 ‘나무권리선언’까지 발표했습니다. 규정을 제대로 지켜 주시고, 우리도 고양시민으로 여겨 주십시오. 기후위기 시대, 여러분을 위해 묵묵히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고사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건물)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고사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건물)

 

공개공지 조경 은행나무 12그루. 말뚝 모양 훼손 고사.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 건물)
공개공지 조경 은행나무 12그루. 말뚝 모양 훼손 고사.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 건물)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죽어가는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건물)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죽어가는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로 상가건물)

 

과도한 가지치기로 몽당빗자루 모양으로 변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일산로-강촌로 교차로 교회 건물)
과도한 가지치기로 몽당빗자루 모양으로 변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일산로-강촌로 교차로 교회 건물)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고사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백석2동 중앙로 병원 건물)
말뚝 모양으로 훼손해 고사한 공개공지 은행나무. (일산동구 백석2동 중앙로 병원 건물)

 

나무 위에 전기선이 위에 없는데도 과도한 가지치기로 닭발 모양이 된 양버즘나무 가로수. (일산동구 백석1동 일산로)
나무 위에 전기선이 위에 없는데도 과도한 가지치기로 닭발 모양이 된 양버즘나무 가로수. (일산동구 백석1동 일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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