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문은희 한국알투루사 여성상담소장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전문가 인터뷰- 문은희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 

어떤 노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떤 경험을 했냐에 달려 있어
신체의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의 나이는 회복할 수 있다

[고양신문] 어느덧 5개월이 지났습니다. 건강넷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획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문은희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장을 만났습니다. 평생 ‘마음의 건강’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해 온 심리교육학자이자, 여성운동가입니다. 문은희 소장은 실천적 기독교 신앙을 지킨 민족지도자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선생의 막내딸이자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펼쳤던 문익환·문동환 목사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박영신 전 연세대 교수의 아내이기도 하지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알투루사 월간지와 계간지에 꼬박꼬박 글을 쓰시고, 상담과 강좌를 즐겁게 이어가고 계십니다. 알투루사는 마음 건강을 통해 이웃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가는 여성단체입니다. 늘 맑고 따듯한 모습으로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주던 문은희 소장께도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다. 2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요. 6개월 정도,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겁니다. 항암을 피하고 싶었던 문 소장은 아직 상담해줄 친구가 남아있고, 가족에게도 좀 더 필요하니까, 이 정도는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중입니다. 2년을 넘게 살고 있고, 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병원의 진단은 이미 무의미해졌습니다. ‘마음 건강’ 전문가로서,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어른으로서, 문은희 소장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문은희 소장은 에릭슨 같은 학자는 ‘노인 시기가 인생이 다 끝나서 이제는 새로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 때문에 슬퍼지는 시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 소장은 암도 걸려보고 치료하면서(물론 아직도 치료 중이지만), 더 절실히 느끼게 됐단다. 병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살아가고 있고, 병을 통해 또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가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은희 소장은 에릭슨 같은 학자는 ‘노인 시기가 인생이 다 끝나서 이제는 새로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 때문에 슬퍼지는 시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문 소장은 암도 걸려보고 치료하면서(물론 아직도 치료 중이지만), 더 절실히 느끼게 됐단다. 병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살아가고 있고, 병을 통해 또 배우는 것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가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고 늘 강조하고 계신데, 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고통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는 모두 같기를 바라는 게 있어요. 평등한 것과 같다는 것은 달라요. 다 다르면서 평등한 것과 그냥 똑같은 것, 균일하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참을성이 부족해요. 다른 것을 축하하고, 다른 것을 기뻐해야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더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그냥 더 균일하게 사는 것을 원하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좀 이상하게 보려고 해요. 그런데 정말 현실이 다르지 않나요. 너는 왜 나하고 달라 하고 불만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은 참 재미없을 거예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 꽃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는 게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요.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가 교육 속에서 다른 것을 축하해줄 수 있고, 좋아해 줄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르기 때문에 더 사랑할 수 있는 문화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의 획일적인 목표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어요.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잖아요. 왜 이렇게 획일적이 되었을까요. 
요새 다들 청년이야기를 해요. 실제로 강남에 집을 살 수 있는 청년들이 몇 퍼센트나 되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마치 목표인 듯이 만들어서 청년들의 입을 더 막게 만들고 더 희망을 잃게 만들고 그래요. 어떻게 다르게 살 거야 하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똑같이 한길로만 가려고 해요. 청문회서 문제되는 사람들 보면 자녀가 원인인 경우가 많아요. 조국 전 장관 부인도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걸 아주 단거리로만 보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닐까요. 내 아이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옆집 아이도 잘하고, 다른 집 아이도 다르게 커갈 수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울까요. 불안한 이유는 뭔가요. 결과를 내가 예측하지 못할 때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결과가 다양할수록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일정한 결과만 기대하니까, 경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내 아이가 이겨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리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경제주의가 사람을 더 타락시킨 거 아닌가 해요. 좀 가난하면 어때요. 다양하게 서로를 봐주고 사랑이 더해지면 남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 살 수 있겠죠. 경제주의는 사랑을 뺏어가기도 하고, 사람을 숨 막히게도 하잖아요. 

▍나이 들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완고해져서 대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무엇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겸허함을 갖고 계셔서 자꾸 만나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점점 소통이 어려워지는 노인들은 발달단계 어디에선가 콤플렉스가 생긴 거예요. 거기에서 멈춘 사람들이 있어요. 뭔가 문제가 있었겠죠. 어른의 이해를 못 받았거나, 차별을 받았거나, 그럼 거기에서 성장이 멈추는 거예요. 나이는 자꾸 먹어도 심리적으로는 거기에 멈추는 거죠. 사람마다 멈추는 이유가 다른 거죠. 예를 들면 10살에 멈춘 사람들은 사춘기의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요. 멈추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다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이해하고 훨씬 너그러운 노인이 되는데 비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집쟁이가 되고 편협하게 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노인네가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노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체적인 나이는 그 나이 때 자라야 하지만 마음의 나이는 나중에라도 회복할 수 있거든요. 그게 우리 상담하는 사람들의 목적이에요. 언제든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노인들이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해요. 

▍나이 들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일을 정리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요. 반면 열심히 자기 일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분들도 계시고요. 어떤 선택이 좋을까요. 
에릭슨 같은 사람은 노인 시기가 됐을 때, 인생이 다 끝나서 이제는 새로 시작하기 힘들다 하는 것 때문에 슬퍼지는 시기라고 이야기해요. 실망하고 나는 이젠 끝났어 하는 거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더군다나 나는 이번에 암도 걸려보고 치료하면서(물론 아직도 치료 중이지만), 더 절실히 느껴요.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내가 이런 경험을 하면서 또 배우는 것이 있어요.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는거죠. 몸으로는 줄어들지만, 마음으로는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노인 시기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인 시기에 더 영글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는 그런 자세가 필요해요. 아 그냥 편안하게 살아야겠어 하는 마음에는 이제 내가 뭘 할 거야 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편안해서 뭐해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좋은 곳 구경하고 다니고, 노인이면 그런다고 생각하는데, 노인들도 의미 있는 삶을 찾을 수 있잖아요. 일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피곤하지 않은 것 같이 일하면서도 피곤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편안한 게 좋은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분들도 늙는다는 것이 힘들다고 말씀하셔요, 특히 몸이 아플 때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듦과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도 2년 전에 암에 걸렸다고 처음 진단받을 때는 의사가 반년, 또는 기껏해야 1년 살거라고 했어요, 너무 늦게 발견했어요. 나는 힘든 항암치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다는 걸 아니까. 근데 아, 내가 우리 알투루사 회원들한테 해줄 일이 있구나, 집단상담도 해줘야 하고. 아직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젊은이들도 있어서 그 친구들 좀 더 도와주고 싶고요. 남편도 내가 병드니까 너무 기운을 잃는 거예요. 꼼짝도 못하더라고요. 아, 저 사람한테도 아직 내가 필요하구나. 우리 아이들도 내가 좀 더 있어 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삶을 내 삶하고 같이 취급하는 거죠. 그러면 아픔을 좀 더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우리가 같이 사는 삶을 위해서 내가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어머니는 제주도로 피난 갔을 때 부상당한 군인들 모여있다고 하면 가서 목욕시키고 간호하고, 우리 집 일보다는 거기 일을 우선 하셨어요. 뭐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늘 넓혀서 사시니까 생각이 넓어지신 것 같아요. 노인들의 생각이 넓어지게 하는 것을 우리가, 사회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강도는 다르지만, 건강하고 당당하게 사는 분들이라도 외로움의 문제는 다들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외로움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나한테 10년을 반찬을 해주는 알투루사 회원이 있어요. 두 주에 한 번씩 한 보따리를 싸다 주어요. 같이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는 친구들도 있어요. 제 상황을 우리 알투루사 홈페이지에다가 아주 자세히 보고를 해요. 저처럼 같이 공유하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요. 저처럼 단체를 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며느리하고 딸하고 친구하고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측은하게 보면 그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외롭지 않지 않을까요. 누가 자기한테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외로워져요. 콜보 같은 사람은 도덕성 발달을 이야기 할 때 제일 원시적인 것이 이기적인 거라고 했어요. 자기중심적인 거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줄 알기 시작하면 외롭지 않아요. 

▍알트루사를 만들고 무료상담을 시작하신 지 20년이 넘으셨지요. 매일매일 상담하시는 일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상담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이해하려고 하려면 정신차리고 들어야 해요. 내가 상담하면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 그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 보다 실제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더 깨어 있어야 하죠. 피곤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결국은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친구를 사랑했을 수 있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사랑이라는 게 제일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원망이라든지, 자기욕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굉장히 힘들어지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내게 하는 거니까요. 

▍ 선생님의 암 발병에 대해 박영신 교수님께서 더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떠하신지 궁금해요.
내가 죽을 뻔했다가 아직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한참 우울하더니, 요새는 농담도 잘하고 그래요. 이런 여러 가지 맛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내가 병이 안 걸렸으면 그랬겠어요. 병 걸리는 것도 다 깨달음의 과정이에요. 박 선생과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죠. 종교 이야기부터 정치문제, 알투루사 회원들 이야기도 다 터놓고 이야기해요. 언제나 호수를 함께 걸어요. 누군가 죽어도 우리 머릿속에는 기억이 있잖아요, 나는 그래서 그걸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셨지만 다 계신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지금 당장 만나지는 못해도. 

▍건강하게 오래 사는 분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배우고 공부한다는 거였어요. 공부와 배움은 어떤 점에서 중요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배우는 것에 가치를 많이 두어요. 나는 자기 변화가 없는 공부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의 변화를 가져오고, 성숙하게 하고 그런 배움이어야 해요. 중요한 것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 삶을 돌아보고, 반추할 수 없다면 사람다운 것이 아니라고 봐요. 사람답다는 것은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 그런 게 있어야 변화할 수 있어요. 그렇지않으면 고집만 부리게 되지 않을까요. 변화와 성찰을 주는 공부는 나이 들수록 더 중요해지지요. 저도 만 46세에 유학을 갔어요. 우리 어머니만큼만 산다고 하면 내가 46세에 가도 50년을 더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96세에 돌아가셨거든요. 

▍고양에 살기를 잘했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어떤 점이 제일 좋으신가요,
호수요. 매일매일 호수공원을 산책해요. 호수엔 저녁 먹기 전에 가서 해지는 걸 봐요. 구름 상태에 따라 아주 아름답거든요, 전에는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요즘엔 가운이 없어서 반 바퀴 돌아요. 걷는 게 좋아요. 

▍ 나이 든다는 것은 연륜과 경험이 쌓인다는 건데, 노년의 삶은 점점 위축되는 것 같아요. 행복한 노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젊은이들이 그런 것처럼, 노인들에게도 너무 옵션이 없어요. 삶의 다양성이 없으니 위축되기 쉬워요. 다양성이 있다면 끝이 있을까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가장 중요해요. 종착역에 닿았으니 우린 이제 끝이야 이런 건 없다는 거죠. 끝난 것이 아니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자기의 평생을 되돌아보는 것. 언제 어디서 내가 무엇 때문에 걸려있는지 풀어가는 것이 오히려 끝까지 잘 해내는 거 아닐까요. 그게 의미 있게 사는 방식이 아닐까요. 나는 노인들이 젊은이들한테 노인에 대해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이제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와서는 안 돼요. 죽을 때까지 역할이 있는 거고, 삶이 있는 거고. 우리한테 기회는 언제나 있는 거예요. 끝이 없는 거죠. 포기하지 않으면 돼요. 너무 늦은 때는 없어요. 다들 의미 있게 살고 싶지 않은가요. 다만 사람마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다를 뿐이죠. 

이영아 발행인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