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파주 동패동 ‘칼디커피’

숨은 커피 고수가 내려주는 사이펀 커피  
국내에 로스터리 커피 처음 알린 선구자 
세계 각지의 고품질 원두 골라내는 안목
“출판도시에 커피 식물원 만드는 게 꿈”

[고양신문] 에티오피아의 ‘짐마’라는 마을에 양치기 소년 ‘칼디’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목동 칼디는 산양들이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먹은 뒤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궁금하게 여긴 칼디는 그 열매를 먹어 보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열매를 먹자 머리가 맑아지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 열매가 바로 커피였다. ‘커피’라는 이름은 짐마의 옛 지명인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파주시 동패동의 ‘칼디커피(KALDI COFFEE, 대표 서덕식)’에는 커피계의 숨은 고수가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서덕식 대표는 핸드드립 커피 3잔을 동시에 내리고 있었다. 두 손을 맞잡고 신중하게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 은발에 체크무늬 청색 쟈켓을 갖춰 입고 일에 몰입해 있는 모습에서 평생을 커피와 함께 해온 고수의 풍모가 느껴졌다.

칼디커피 실내에서 자라는 커피나무에 초록색 열매가 맺혔다. 
칼디커피 실내에서 자라는 커피나무에 초록색 열매가 맺혔다. 

매장 내부에는 커다란 커피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잎이 무성한 나무에 녹색의 작은  열매들이 달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알이 더 굵어지고 새빨간 커피 체리로 익어갈 것이다. 인테리어는 화이트톤으로 꾸며 전체적으로 깨끗한 느낌이다. 편안한 나무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덕식 대표는 커피 업계에서 사이펀 명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991년에 칼디커피를 설립했고,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코피루왁(사향고양이 배설물로 만든 커피)을 국내에 처음으로 직수입했다. 2010년에는 국제 사이펀 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를 배출했고, 2016년에는 일본 ‘커피사이펀주식회사’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사이펀 커피의 장인 서덕식 대표
사이펀 커피의 장인 서덕식 대표

“제가 커피를 처음 접한 것은 70년대 다방 문화가 한창일 때였어요. 고등학교 시절 방황할 때 다방에서 일한 것이 시작이었지요. 해병대를 제대하고 해태제과에서 과자 영업을 했는데, 회사에 커피 사업부가 생긴 거예요. 일본의 가장 큰 커피 기업인 ‘UCC’와 기술 제휴를 체결했을 당시 일본은 과자와 커피 기술이 우리나라보다 한참 앞서 있었지요.” 

그는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연수를 가서 커피 브루잉과 사이펀 기구 사용법을 배워왔고, 우리나라 호텔 등에 그 기술을 보급하고 커피도 공급했다. 그렇게 커피 교육을 하며 일을 하다가, 홍대 앞에 ‘칼디커피’를 창업하며 독립했다. 당시 그 카페는 국내 최초의 로스터리 카페였는데, 현재는 아들과 서 대표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 동패동에 로스팅 공장을 오픈한지는 6년이 됐다. 처음에는 커피 연구소이자 커피 전문가들을 교육하는 컨설팅 공간이었다. 코로나로 교육이 취소되면서 현재는 카페로 운영 중이다. 전체 규모는 45평으로, 절반은 커피를 볶는 장소이고 절반은 카페다. 

서 대표가 생각하는 커피 철학은 무엇일까.
“소비자들에게는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커피의 기본적인 맛은 바로 쓴맛이에요. 쓴맛 속에서 단맛을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항상 연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식음료의 맛은 원재료에서 나온다. 커피도 원두가 좋아야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 서 대표는 좋은 커피를 선점하기 위해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의 생산지를 찾아다녔다. 오랜 경험을 통해 그리 비싸지 않아도 고품질의 원두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췄다. 생산지와 커피 이름을 들으면, 맛과 장단점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는 어떤 것인지 물어봤다.

“쓴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맞는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향미도 적당한 것이지요. 저희는 단맛 쓴맛 신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원두를 구비해 놓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맛과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싱글과 블랜드를 고루 갖췄지요. 커피는 일단 진하게 내리고, 각자의 취향대로 마실 수 있도록 작은 커피잔과 뜨거운 물을 함께 제공합니다.” 

서덕식 대표는 국내에 로스터리 카페를 처음 소개한 선구자다. 
서덕식 대표는 국내에 로스터리 카페를 처음 소개한 선구자다. 

사이펀 방식의 커피는 물과 불의 성질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맛을 낼 수 있는 과학적인 추출법이다. 알코올 램프로 기구를 가열한 후 원두를 넣고, 분리된 커피를 뽑는다. 온도에 대한 서 대표의 지론이 있다. “커피는 너무 뜨겁지 않을 때가 맛있습니다. 60도 정도가 적당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지요. 또한 좋은 커피는 식어도 맛있습니다.” 

서 대표가 내려준 케냐 커피는 쓴맛이 나면서 쌉쌀한 느낌이 들었다. 참나무 숯으로 로스팅해서인지, 이른바 ‘불맛’이라고 하는 스모그 향이 커피에서 은은하게 배어났다. 물을 넣어 마시니 한결 부드러우면서 맛있었다. 커피 메뉴는 코피 루왁과 게이샤 등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의 원두를 다양하게 갖췄다. 디저트는 쿠키와 머핀 등으로 최소화했다. 달달한 머핀이 쓰디쓴 커피와 조화를 이룬다. 

쌉싸름하면서 구수한 참숯향이 나는 케냐 커피
쌉싸름하면서 구수한 참숯향이 나는 케냐 커피

서 대표는 이곳에 상주하면서 매일 로스팅을 한다. 로스팅 실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로스팅 기계들이 있다. 참숯 로스팅은 국내에서 그가 최초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많은 제자들이 그 방법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로스팅법과 달리 원적외선이 원두 내부까지 침투하여 겉과 속을 균일하게 볶아준다. 잡내를 날려버리고 고유의 독특한 향을 살려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을 다루기가 까다롭다는 어려움이 있다.

서 대표에게는 꿈이 있다. 출판도시 근처에서 커피 식물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커피의 10대 소비국입니다. 커피 공화국 수준이지요. 그리고 세계적으로 훌륭한 바리스타 인재들도 많아요. 언젠가 발리에 간 적이 있는데, 커피 농장 가운데 커피 호텔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커피 나무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야 하므로 호텔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호텔 대신 식물원을 만들고 싶어요.”

커피 나무가 있는 실내 모습
커피 나무가 있는 실내 모습

이날은 마침 서 대표가 로스팅하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커다란 드럼통 아래쪽을 개방하자 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보통의 커피는 로스팅 후 5~7일이 지나면 가장 맛있지만, 이 과정을 거친 커피는 열흘 쯤 경과하였을 때 맛이 제일 안정적이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맛을 유지한다고 한다. 

평생 한 우물을 판 명인의 커피를 동네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는 가난한 커피쟁이로 살아가는 게 행복해요. 이 외진 곳에 저를 알고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이 고맙고요. 만남은 따뜻한 음료가 있을 때 친밀감이 배가 되는데요. 커피와 음악과 함께 좋은 시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주소 : 파주시 숲속노을로 23
문의 : 031-945-7703

참숯으로 로스팅하는 서덕식 대표
참숯으로 로스팅하는 서덕식 대표
사이펀으로 내린 커피와 머핀
사이펀으로 내린 커피와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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