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문해교육 시화집 발간

 

8개 기관 5백여 학습자 참여
60~80대 어르신 시와 그림


[고양신문] 고양시 성인문해교육 다섯 번째 시화집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나다』가 발간됐다. 시화집에는 총 73편의 시화 작품과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지난해 고양시에서 문해교육을 시행한 8개 기관에서 500여 명의 문해학습자들이 ‘문해, 지금 나는 봄이다’를 주제로 시화 제작에 참여했다. 높빛희망학교, 덕양행신·문촌7·문촌9·원당·일산·흰돌종합사회복지관, 행주단추 등 8개 문해교육기관에서 선정된 73편의 시화작품은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일산동구청 갤러리 3전시실, 덕양구청 갤러리, 고양시청 갤러리에서 순회전시됐다. 7개 기관별로 1명씩 선정된 학습자의 시 낭송 영상은 고양시청 유튜브 계정에 게시되어 있다.

고양시 문해교육기관은 2017년부터 공동주관으로 시화집 발간, 시낭송의 밤을 개최해왔다. 202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로 인해 2021년부터 시낭송의 밤 행사는 열지 못하고 영상 게재로 대체하고 있다.

시화집에는 60~80대 학습자들이 직접 쓴 시와 서툰 그림으로 완성한 작품이 담겼다. 전문적인 시쓰기 교육을 받지는 못해 서툴고 투박한 글이지만 그 안에는 글을 배우지 못해 겪었던 설움과 경험, 글을 배우고 달라진 모습, 글을 배우는 즐거움과 행복이 오롯이 담겨있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작품과 이야기를 읽다보면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전쟁, 전후 복구 시기를 겪으며 딸이라서, 가난해서 학습의 기회를 박탈당해 ‘한글도 모른다’는 손가락질과 무시를 견디고 살아온 할머니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인천가는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다. /그 많은 버스 중에 어느 버스인 줄 몰랐다. /글을 몰랐다. /내 앞으로 오는 버스에 무작정 올랐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버스는 /나를 전라도 정읍에 내려주었다.’ 

한글을 몰라 엉뚱한 버스를 타고 모르는 길을 가고 있는 두려움과 낯선 곳에 내려서의 막막함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글을 배우고 나니 이제는 글자가 보인다./ 어디든 갈 수 있다. /혼자 여행도 간다. 무섭지 않다.’ 

이 학습자는 이제 넓은 세상을 마음껏 헤쳐나간다. 많은 학습자들이 글을 모를 때는 세상이 무섭고 길을 잃을까 두려워 나서지 못했지만 글을 배우고 나면 ‘혼자서’ 자식 집도 찾아가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집이 가난해 10살에 남의 집에 보내져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던 소녀의 시도 있다. ‘동생도 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고 / 편지를 쓰고 싶어도 글을 몰라 쓸 수가 없었다’는 소녀는 이제 70대가 되어 그리운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그때 쓰지 못한 편지를 지금 써본다. 엄마, 보고 싶은 엄마, 하늘에 잘 계시지요.’

두메산골에 살던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입학통지서를 찢는 모습을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살았다. 

‘나는 살기 바빠서 공부하는 걸 포기하고 살았지./ 항상 공부가 그리웠어./ 나는 팔십이 되어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하는 게 참 좋아요.’

팔십이 넘은 나이에 연필을 꾹꾹 눌러 시화에 마음을 담았다. 한글공부가 때로는 먼저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하고 우울증을 치료해주기도 한다. 

‘어느날 남편이 갑자기 하늘로 떠났다. / 남편 물건을 정리하고 큰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 복지관에 나와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남편 생각이 덜했다.’ 

혼자 남겨져 막막하고 슬프기만 했지만 복지관에 나와 수업에 집중하고 친구도 만나고, 집에 와서도 숙제하고 책을 읽다보면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 학습자들은 ‘다 늙어서 영어를 뭐하러 배우냐’면서도 세상이 바뀌면 따라가야한다고 열심히 알파벳도 배운다. 영어 배우는 재미를 시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A에이는 빨래집게 같고 / B비는 안경같고 / d디는 국자같고 / O오는 탁구공 같습니다’ 

알파벳에서 본인과 친숙한 물건을 떠올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공부는 80세 노인을 소녀로 만들어준다. 

‘내 나이는 팔십 늙은이 / 하지만 내 마음은 소녀 / 나이가 소녀일 때는 학교를 못 간다 / 마음이 소녀일 때는 학교를 간다’

친구들이 교복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담장에 숨어서 보며 눈물 흘렸다는 성인 학습자들은 이제라도 글을 배우고 학력인정기관에 다니며 졸업장을 받으며 인생에 봄이 왔다고 노래한다. 올해 성인문해교육은 3월부터 개학한다. 가까운 교육기관을 찾아가 배움의 기쁨을 함께 하시길 바란다. 

‘엄마로 아내로 열심히 살다보니 나에게도 민들레꽃처럼 봄이 오나보다’
‘새싹이 자라서 푸른 나뭇잎이 되듯이 내 공부도 푸르게 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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