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범위 두고 실효성 논란
‘전치 4주’ 아니면 혜택 없어
안양·하남·화성은 기준 없애
시 “더 시급한 사람 도와야”

현재 고양시에서는 시민들의 건강한 자전거 생활을 위해, '자전거 보험'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좁은 보상 범위를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본 자료 이미지는 '고양시 자전거 보험'과 무관)
현재 고양시에서는 시민들의 건강한 자전거 생활을 위해, '자전거 보험'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좁은 보상 범위를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본 자료 이미지는 '고양시 자전거 보험'과 무관)

[고양신문] 시민 A(29세)씨는 지난해 대곡역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갑자기 나타난 도로 구멍을 피하다 넘어져 무릎 부위에 찰과상과 찢김 상처를 입었다. 언젠가 지인에게 들은 ‘자전거 보험’을 떠올린 그는 시청에 전화를 걸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아쉬운 답변뿐이었다. “혹시 전치 4주 이상 진단 받으셨나요? 아니라면 지금 당장 받으실 수 있는 보상은 없는 것 같네요.” 1년이 지난 현재 완벽히 아물지 않은 A씨의 상처처럼, ‘고양시 자전거 보험’은 개선 없이 그대로다.

‘자전거 보험’이란 자전거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무료 제공하는 보험으로, 고양시는 2018년 첫 가입 이래 자전거 운전·탑승 중 벌어진 사고뿐만 아니라 자전거로 인한 보행자 사고까지 보상해왔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해당 안전 보험을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바로 까다로운 보상기준으로 소수의 시민만 도움을 받고 나머지의 대다수 시민은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는 것.

 

전치 4주 부상자만 보상? 
2023년 기준 고양시 자전거 보험은 △사망 △후유장해 △진단·입원위로금 △자전거사고 배상 책임 등을 보장하며, 각 항목에 대해 시에서 산정한 일정한도 금액까지 보상한다. 이중 최근 들어 비중 있게 지적된 항목이 바로 ‘진단·입원위로금’이다. 시에서 배포한 안내서에 따르면, 진단위로금은 ‘자전거 교통사고로 4주 이상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진단을 받은 자’가, 입원위로금은 ‘4주 이상의 진단을 받고, 6일 이상 입원 시’ 수령 가능하다.

고양시 자전거사고 부상자는 경상자 수가 중상자 수보다 약 2배 가량 많다. 자료=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고양시 자전거사고 부상자는 경상자 수가 중상자 수보다 약 2배 가량 많다. 자료=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2021년 고양시 자전거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총 346명에 달한다. 이중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은 중상자 수는 110명, 3주 미만의 경상자 수는 194명으로 중상자 수보다 2배가량 많았다. 즉, 자전거 보험의 ‘전치 4주’ 기준 때문에 자전거 사고 부상자 중 약 3분의2 정도의 시민이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실정이다.

그럼 타 지자체는 ‘자전거 보험’을 어떻게 운영 중일까. 경기도 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안양, 하남, 화성 등 6곳이 ‘전치 4주 기준’을 폐지했다. 특히 안양의 경우, 비교적 최근인 3월 23일부터 더 많은 시민의 실질적 혜택을 위해 전치 4주 미만의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을 시작했고, 제주특별자치도도 올해 갱신가입하는 보험을 시작으로 해당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다. 공통적으로 경기도 내외에서 ‘자전거 보험’을 더 큰 범위의 ‘시민안전보험’과 통합 후 4주 진단 기준을 없애 보상자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한정된 예산, 효율인가 공평인가
하지만 ‘보상자 범위 확대’가 오히려 ‘혈세낭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상자에게 집중되어야 할 보험 예산이 ‘4주 진단’ 기준 폐지로 의료자원 필요도가 적은 경부상자들로 분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더불어 ‘4주 진단’ 뿐만 아니라 현행 자전거 보험의 보장 항목 중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고양시 녹색도시담당관은 “‘4주 진단’ 기준은 경상자와 중상자를 차별하는 규정이 아닌 상대적으로 의료지원이 더 시급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며 “경상자의 상처는 자연 치유가 가능하지만, 골절 같은 중상자들의 부상은 회복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기에 환자는 그만큼 더 많은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고양시는 전치 4주 이하의 부상자가 아닌, 4주에서 8주까지의 입원 환자에 대해 차등적으로 진단·입원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양시청에서 계산한 ‘4주 진단’ 기준 폐지 시 필요한 예상비용은 8억6000만원으로, 이는 지난해 보험예산 5억4800만원과 비교해 3억1200만원 더 많은 금액이다. 특별회계 등으로 부족한 금액을 충당하더라도 예상비용 전부를 메꾸기엔 불가능에 가깝고, 예산확보에 대한 정당성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시 관계자는 “기준 폐지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요구가 있어 외부 용역을 통해 그에 따른 임시견적을 받는 등의 여러 시도를 해보았으나, 결론적으로 현재의 시 예산을 고려할 때 기준 폐지는 비현실적이다”라며 “어쩔 수 없이 올해 6월 1일 새롭게 갱신가입하는 보험에도 ‘전치 4주’ 기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4주 진단’ 기준 폐지에 대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보장항목을 줄이자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양시의회 ‘2022년도 환경경제위원회행정사무감사'에서 손동숙 위원장은 “사고나 상해 같은 것에 대한 의료비 지원은 동의하나 개인 실수로 인한 벌금이나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자전거 보험이 보장할 필요가 있냐”며 “올바른 기준 및 보상 대상자를 규정해 세금이 적재적소에 쓰여야 한다”라고, 현 보험 보장 항목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보험사와 ‘수의계약’ 타당한가?
고양시 보험사 선정 방식인 ‘수의계약 방식’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가장 가성비 좋은 업체를 선정할 수 있는 경쟁입찰과 달리 현 수의계약 방식은 시 입장에서 임의로 보험사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다. 이렇다 보니 경쟁이 부족해 가격파괴가 낮아 효과적인 예산 절감이 어렵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보험사의 편의를 고려해 실제 시민들에게 가야 할 몫이 보험사에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주장이다.

고양시 자전거 보험 입찰 및 계약 현황. 자료=나라장터: 국가종합전자조달
고양시 자전거 보험 입찰 및 계약 현황. 자료=나라장터: 국가종합전자조달

제주, 서귀포, 충주의 경우 모두 경쟁입찰을 채택해 올해 예산 대비 최저 50%로 계약했다. 그러나 고양시의 경우, 지난 2020년부터 현재까지 KB, DB, 현대해상, 한화손해, 삼성화재 5개의 보험사가 단독응찰로 유찰해 공동 수급함으로써 절감 없이 예산에 가까운 금액을 취했다. 동일한 5개의 업체가 3년 동안 보험계약을 유찰해 온 만큼, 보험사들이 담합해서 높은 금액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고양시 녹색도시담당관은 “지난해 납입보험금 대비 수혜보험금 지급률이 예상치를 훌쩍 넘은 150%에 달했다. 4주 이상 진단자를 제외한 채 보상금을 지급하였는데도 지급률이 이렇게 높은데, 만약 전치 4주 이하 부상자들까지 보상범위에 포함한다면 지급률은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떤 보험사가 고양시와 함께 계약을 진행하겠느냐”라며 한계를 토로했다. 즉, 경쟁입찰 방식을 선택할 경우 높은 지급률 때문에 예상되는 손해금액이 높아 보험사들의 계약 참여가 저조해 예산 절감을 못하더라도 현행 수의계약 방 식이 ‘보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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