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박성준 서양화가

돌멩이 하나하나마다 수천 번 붓터치
유럽 성당에서 새로운 작품 영감 얻어 
  

사람들이 지닌 간절한 '소원'을 돌탑으로 표현하는 박성준 화가. 
사람들이 지닌 간절한 '소원'을 돌탑으로 표현하는 박성준 화가. 

[고양신문] 누구나 돌탑에 돌멩이를 얹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박성준 화가는 간절한 소원(Wish)을 담은 돌탑을 그림으로 그린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크고 작은 돌멩이들 그림을 마주하면 우리들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소망이 떠오른다. 

최근 백석동에 자리한 함지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진행한 박성준 작가를 만났다. 그는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 참가 경력과,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입상, 산업미술전람회 특선 및 산업자원부 장관상, 월간디자인 선정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10년 차 고양시민이기도 하다. 

박 작가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손이었고, 부친이 완고한 편이라 아들이 그림 그리는 걸 상당히 싫어했다. 당시에는 남자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을 때이기도 했다. 미대 명문인 홍익대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부친의 승낙을 얻어낼 수 있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회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 둘을 병행했죠. 회화과 교수님 작업실에서 문하생처럼 그림을 배웠어요. 10년 전 작고하신 홍대 이두식 학장이 제 은사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상품 광고와 디자인, 뮤직비디오 아트 디렉터 일도 했지요. 디자인 쪽 일을 하면서 회화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어요.”

죽마고우의 명복을 기원하는 '돌탑, wish22'
죽마고우의 명복을 기원하는 '돌탑, wish22'

그는 “회화와 디자인은 장르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디자인은 남을 위한 그림이고, 회화는 자신을 위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은 고객이 우선이지만, 회화는 타인이 아니라 본인이 먼저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디자인은 공감하기 쉬운 반면 회화는 공감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의 예술관은 무얼까. 

“예술은 사람들에게 쇼크를 줘야 돼요. 음악을 듣거나,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볼 때 전율이 느껴지고 소름이 돋기도 하잖아요. 그게 바로 쇼크예요. 뇌에 자극을 받으면 생각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데요, 타인을 이해하게 되지요. 공감은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고요. 예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대학에 몸을 담고 디자인협회 등 여러 곳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정작 회화 작업을 제대로 할 시간이 부족했다. 추상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할 때는, 마감에 쫓겨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작업한 것이 오히려 히트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허무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직업에 회의가 들면서 전업 작가로 전환하게 됐다. 

박성준 화가의 전시가 열렸던 함지갤러리.
박성준 화가의 전시가 열렸던 함지갤러리.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성장해서는 남들처럼 평범한 부자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컷다. 그림을 부친과의 화해 수단으로 삼고 싶었다. 자신이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소원도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추상적인 이미지밖에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우연히 돌탑을 보게 됐어요. 저도 그 위에 돌을 하나 올려놓았지요. 돌이 예뻐 보이고, 돌뿐만 아니라 그 옆의 이미지들까지 함께 보였습니다. 돌이 제 마음속에 들어온 거지요.”

그때부터 돌탑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질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았다. 돌 하나를 그릴 때마다 3000~4000회 정도의 붓 터치가 필요하고,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추상화 작품보다 공감하는 컬렉터도 늘어났다. 그림을 의뢰받게 되면, 그 사람의 소원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70대 노 교수의 의뢰로 작업을 할 때는, 가족, 건강, 말년 등 연세가 드신 분의 소원을 떠올렸다. 안정적인 형태의 돌탑 그림이 완성됐다.

그의 작품에는 세 가지 소원을 의미하는 돌탑, 무모한 소원을 담은 돌탑, 3년 전 하늘나라로 간 죽마고우의 명복을 기원하는 돌탑 등이 있다. 소원에 따라 구도와 색감이 차별화된다. 그의 테마는 ‘소원’이지만, 돌탑만을 그리는 작가로 이미지가 고정되기를 원치 않는다.  

“지금의 테마가 동양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소망이라면, 앞으로는 서양적인 ‘위시(Wish)’를 계획하고 있어요. 6년 전쯤 피렌체에 있는 성당에 다녀왔는데요. 무신론자로 신앙이 없는데도, 성화들을 보니 종교가 생길 것 같더군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소원들이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후미진 구석 자리에서 기원한 소외된 사람들의 소망도 있을 텐데, 그런 걸 그리고 싶습니다.”

그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작품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돌탑을 보고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빌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작품 영역은 돌탑에 머무르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지향하는 예술의 방향성은 앞으로도 진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성준 작가의 추상 작품.
박성준 작가의 추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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