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서 만나는 한국전쟁의 역사]
② 곳곳에 산재한 분단과 냉전의 흔적

휴전선 11㎞ 코앞, 준 전방지역 긴장감  
야산마다 참호 만들고 군부대 들어서고
조심스레 키워온 ‘평화 거점도시’ 희망 
또다시 냉전 회귀하나… 마음 무거워

통일촌 군막사를 리모델링한 '나들라온' 주차장에 서 있는 평화 조형물. 뒤편에 실물 탱크도 전시되어있다. 
통일촌 군막사를 리모델링한 '나들라온' 주차장에 서 있는 평화 조형물. 뒤편에 실물 탱크도 전시되어있다. 

[고양신문]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의 포성은 3년 1개월이 흐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고서야 겨우 멎었다. 하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38선 대신 휴전선이 그어진 채 ‘종료’ 버튼이 아닌 ‘잠시 멈춤’ 버튼이 눌러진 채 70년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전쟁은 분단의 경계를 고양 땅 코앞까지 끌고 내려왔다. 고양에서 38선까지의 직선거리는 30㎞가 넘었지만, 휴전선까지의 최단거리는 불과 11㎞(일산서구 구산동~북한 개풍군)가 됐다. 그만큼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졌다. 한강하구를 통해 북한 땅과 직결되는 준 전방지역이자 수도 서울을 호위하는 서북쪽 방어선. 분단은 고양이라는 지역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큰 상수가 됐고,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공릉천 고양~파주의 경계지점인 지영교 하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대전차방어시설 용치(龍齒). 
공릉천 고양~파주의 경계지점인 지영교 하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대전차방어시설 용치(龍齒). 

고양 땅 남과 북을 가로막은 용치 

고양 땅을 흐르는 가장 큰 물줄기는 한강이고, 두 번째로 큰 물줄기는 공릉천이다. 그런데 한강과 공릉천의 시 경계지점에는 동일한 구조물이 있다. 한강이 서울에서 고양으로 넘어오는 덕은동 대덕생태공원, 그리고 공릉천이 고양에서 파주시로 넘어가는 지영동 지영교 아래를 찾아가면 목도할 수 있는 살풍경한 경관, 바로 용치(龍齒)다.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세워놓은 용치는 유사시 북한군의 탱크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설치한 군사방어시설이다. 

양쪽 용치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상부가 타원형 모양인 지영동 용치는 8줄로 겹겹이 공릉천을 가로지르고 있고, 상부가 육각형으로 생긴 대덕생태공원 용치는 3열로 늘어서서 드넓은 둔치를 지나 자유로 콘크리트 방어벽으로 연결된다. 재래식 전쟁 개념 아래 설치된 용치들이 고양 땅의 가장 북쪽 끝과 가장 남쪽 끝을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은 고양이라는 지역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고양과 서울의 경계지점을 가르는 한강 대덕생태공원의 용치.
고양과 서울의 경계지점을 가르는 한강 대덕생태공원의 용치.

고양누리길에서 마주치는 군사시설들 

고양에는 구석구석을 잇는 15개 코스의 고양누리길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고양누리길은 기대하지 않았던 경험도 선사하곤 한다. 숲길과 이어진 코스에서는 어김없이 분단과 냉전의 흔적들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작은 야산 오솔길을 지날 때면 진지와 참호가 수시로 나타나고, 산마루를 향해 이어지던 능선길은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철망에 가로막히곤 한다. 군사시설의 규모와 형태도 다양하다.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구축한 참호가 있는가 하면, 모래주머니나 폐타이어를 줄지어 쌓아놓은 구조물도 흔하다. 

휴전 이후부터 고양에는 수많은 군부대가 주둔했지만, 구석구석까지 군사시설들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월남전이 발발하며 한껏 높아진 남북의 군사적 긴장은 무장공비 침투와 같은 국지적 충돌로 이어졌고, 수도 방위의 요충지인 고양 땅 전역에 대한 군사기지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고양누리길 2코스 한북누리길에서 만날 수 있는 군사시설. 부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일명 ‘해피밸리 전투’가 벌어졌다.
고양누리길 2코스 한북누리길에서 만날 수 있는 군사시설. 부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일명 ‘해피밸리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이런 시설들을 접해도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지는 않는 듯하다. 수십 년째 같은 모습으로 있어왔고, 이제는 관리의 손길을 놓아버렸는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모습으로 퇴락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병들이 야삽으로 모래주머니를 채우던 시절과는 군사적 긴장의 양상이 달라졌으니 ‘이제는 깔끔하게 정비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한편에서는 ‘하지만 남북의 긴장이 사라진 건 아니잖아?’라고 되묻곤 한다. 한쪽으로 기울려다가도 다른 쪽이 불편한, 좀처럼 정리되기 힘든 양가적 감정이다. 

철책 너머 금단의 땅, 한강

고양의 내륙이 방어기지라면, 한강변은 말 그대로 최전방이었다. 최근 정부가 조성한 ‘DMZ평화의길’에 휴전선을 직접 끼고 있는 9개 지자체 틈에 ‘고양코스’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60년대 후반, 북한의 국지적 침투가 이어지자 한강변에는 더욱 견고한 철책이 이중 삼중으로 둘러졌고, 장병들의 삼엄한 경계근무가 이어졌다. 90년대 초 한강하구를 따라 신설된 자유로는 거대한 군사방어벽이기도 했다. 자유로 안쪽으로 행주군막사, 신평군막사, 장항군막사, 통일촌군막사가 만들어졌고, 경계근무에 나서는 장병들만이 하부통로를 통해 자유로 건너편 한강변 순찰로로 접근할 수 있었다. 20㎞에 이르는 넓은 구간을 끼고 있음에도, 고양 사람들에게 한강은 다가갈 수 없는 철책 너머의 땅이었다. 

한강하구를 지키던 초병을 형상화한 조형물. 
한강하구를 지키던 초병을 형상화한 조형물. 

냉전 시대, 한강 경계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사건이 고양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1980년에 터진 무장공비 한강침투 사건이다.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23일 새벽시간, 고양군 송포면 구산리, 이산포 부근의 한강초소를 경계하던 두 명의 초병이 잠수장비를 이용해 한강으로 침투하던 무장공비 3명을 사살한 것이다. 당시 노획한 장비만 470여 점,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 정국이 불안정한 혼란기에 중무장한 북한의 공비들이 서울 타격을 목표로 한강을 거슬러 올랐으니, 만일 경계작전에 실패했더라면 커다란 사태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이날의 전공은 오늘날까지도 ‘3·23 한강하구 완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기려진다. 

한강변 경계초소로 쓰이던 건물 벽에 무장공비들을 막아낸 '3,23 완전작전'을 기리는 글씨가 적혀있다. 
한강변 경계초소로 쓰이던 건물 벽에 무장공비들을 막아낸 '3,23 완전작전'을 기리는 글씨가 적혀있다. 

시민 품으로 돌아온 공간들

살벌했던 냉전의 흔적들은 이제 하나둘 평화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양시는 군 당국과 협의를 통해 2012년부터 한강변 철책을 단계적으로 걷어내고 있다. 가장 먼저 덕양산 아랫자락 행주산성역사공원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어 신평군막사까지 이어진 순찰로의 1차 철책이 제거돼 탁 트인 자전거도로로 변신했고, 행주대교 하류 고양한강공원도 새로운 친수공간으로 정비되고 있다. 

초병들이 생활하던 자유로 안쪽의 군막사도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 먼저 행주군막사가 한강방문자센터로, 신평군막사가 예술창작공간 ‘새들’로 단장된 데 이어 장항군막사에는 높다란 탐조전망대를 갖춘 장항습지방문자센터가, 통일촌군막사에는 DMZ평화의길 방문자센터인 ‘나들라움’이 조성되고 있다. 새로 조성된 쉼터에 잠시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텀블러를 기울이며 땀을 식히는 라이더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탁 트인 자전거도로로 변신한 자유로 건너편 군 순찰로.  
탁 트인 자전거도로로 변신한 자유로 건너편 군 순찰로.  

일산 한가운데 우뚝 솟은 고봉산 능선길 ‘평화의 쉼터’에서도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설명문을 읽어보면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은 물론, 유엔군과 중공군까지 가세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고봉산과 고양 인근지역에서 군 당국이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을 펼쳐 호국용사 35위의 유해와 1000여 점의 전쟁 유물을 찾아냈다고 한다. 

 6.25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을 기록해놓은 고봉산 평화의쉼터.
 6.25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을 기록해놓은 고봉산 평화의쉼터.

어렵사리 이어왔던 평화의 희망

냉전의 족쇄 아래 낙후된 군사접경지역으로 머물던 고양은 1990년대 북방정책 기조를 계기로 신도시가 들어섰고, 자유로가 놓이며 경기북부 중심도시, 평화의 거점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조금씩 진전됐던 화해의 희망은 최근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정세는 신냉전의 기류가 완연하고,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천명했다. 고양시 곳곳에 산재한 전쟁과 분단, 냉전과 대립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에 또다시 묵직한 모래주머니가 채워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한강변 철책 제거 기념공간.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한강변 철책 제거 기념공간.
신평군막사와 한강순찰로를 연결하던 자유로 하부 군사통로. 지금은 자전거길로 변신했다.
신평군막사와 한강순찰로를 연결하던 자유로 하부 군사통로. 지금은 자전거길로 변신했다.
장항군막사 건물에는 높은 탐조전망대를 갖춘 장항습지방문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장항군막사 건물에는 높은 탐조전망대를 갖춘 장항습지방문자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통일촌 군막사를 'DMZ평화의길' 방문자센터로 리모델링한 '나들라온'. 
통일촌 군막사를 'DMZ평화의길' 방문자센터로 리모델링한 '나들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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